반도체 '반쪽' 강국 韓, 팹리스 점유율 1%대…"경제안보 문제"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2025-11-06 17:08:59
비메모리가 메모리 시장 3배…"첨단산업 동력 잃을 수도"
스타트업이 핵심…"150조 펀드로 'K엔비디아' 키워야"
"중국의 급부상, 미·중 기술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반도체는 단순한 산업 문제가 아닌 경제안보의 문제로 변화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이 최근 '시스템반도체 분야 차세대 혁신 기술 조사⸱분석 연구'를 발주하면서 적시한 진단이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지만 메모리 분야에 편중돼 있어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받기 위해 세계 각국이 줄을 서는 것에서 보듯 미래 첨단 산업의 향배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6일 산업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국내 관련 기업의 점유율은 2023년 기준 2.3%에 그친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온디바이스 AI(통신 연결 없이 자체적으로 구동), 피지컬 AI 등의 연산 가속을 위한 신경망처리장치(NPU) 같은 첨단 시스템반도체 개발을 위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
시스템반도체 분야 글로벌 상위 30개 기업의 특허 동향을 분석하고 미국, 유럽, 중국, 대만 등 주요 국가들의 기술 개발 로드맵을 파악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차세대 혁신 기술 품목의 구체화를 위한 전문가 위원회도 구성하려 한다.
메모리 반도체가 '기억용'이라면, 비메모리는 생각하고 계산하는 용도여서 AI 시대를 맞아 더욱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엔비디아처럼 생산 공장 없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은 전날 'K-팹리스 일병 구하기'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반쪽뿐인 반도체 강국이라는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 비메모리 체질 보강의 필요성이 줄곧 강조돼 왔다"고 전했다. 이어 "비메모리 밸류체인을 구성하는 양대 축인 파운드리(위탁생산)와 팹리스 중에서도 특히 팹리스에 주목해야 한다"며 "글로벌 팹리스 업계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약 1%대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엔비디아, 퀄컴, 브로드컴 등 다수 기업들이 업계를 선도하는 미국뿐 아니라 미디어텍, 리얼텍 등이 포진한 대만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반쪽'도 되지 않는다. 연구원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매출액 기준으로 비메모리 비중이 메모리의 3배에 달하고 2028년에는 8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올해 1~9월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 중 메모리 비중은 66%로 과거 5년 평균(60%)보다 6%포인트 더 높아졌다.
연구원은 "(비메모리 시장 확대와) 반도체 수출액 추이를 비교해 보면 한국이 시장 흐름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면서 "더 큰 시장을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엔비디아는 대표적 사례다. 게임 그래픽 업체가 생성형 AI 등장 이후 GPU 기반 AI 가속기로 단숨에 반도체 업계뿐 아니라 글로벌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네이버의 GPU 투자 규모는 올해 6000억 원, 내년에는 1조 원에 이를 정도다.
앞으로 자율주행차, 휴머노이드 로봇, 양자컴퓨터 등 새로운 기술이 상용화되면 또 다시 각 분야에 맞는 시스템반도체 설계 수요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연구원은 "팹리스 업계 부진은 장차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입지를 축소할 뿐 아니라 반도체에 기반한 첨단 산업의 성장동력마저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해외 팹리스에 의존할 게 아니라 국내 팹리스 육성으로 직접 개발하려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팹리스는 대형 생산 공정을 필요로 하지 않고 응용 분야가 다양하므로 스타트업에 적합하다. 그에 맞는 투자 환경 활성화가 절실하다는 조언이다. 정부 국정과제에는 2030년까지 연간 벤처 투자 규모를 40조 원으로 늘리는 목표가 담겨 있다. 지난해 12조 원의 3배가 넘는 수치다.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조성도 핵심이다. 연구원은 "국민성장펀드가 유망한 팹리스 벤처와 스타트업을 장기간 지원해 'K 엔비디아'를 발굴하는 마중물이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했다.
이 밖에도 △삼성전자 같은 파운드리 업체들과 팹리스의 협력 확대 △국가AI컴퓨팅센터 등 국책 사업에 국내 팹리스 반도체 시범 도입 △민간 도입 기업에 보조금과 세제, 금융 등 인센티브 제공 △국내 또는 해외 기업 인수합병(M&A) 등을 활성화 방안으로 제시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도 지난 7월 팹리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은 대기업 위주의 성장을 이어왔으나 최근 AI 수요 증대 및 다품종 소량 생산 흐름에 따라 팹리스 스타트업 기회가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은 민간 주도, 중국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으나 국내 팹리스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는 아직 초기 단계"라며 "정부 주도의 적극적인 산업 생태계 강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산재된 예산을 통합·조정해 재정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고 반도체 펀드 내 팹리스 분야 쿼터를 명확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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