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들이여, 차라리 노래를 부르자

오다인

| 2019-08-09 15:21:10

낮에는 전문경영인, 밤에는 작곡하는 유용창 씨의 ‘이중생활’

“나는 ‘모든 말은 거짓이고 노래는 진실이다’는 문학적 수사를 사랑한다. 이는 얼핏 노래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말의 절망, 말의 무력함과 한계에 대한 탄식이다. 말은 발화자의 육체성과 무관하다. 성대의 울림을 통해서 나오는 말, 즉 노래만이 진실을 담보할 수 있다. 아니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무언가를 전하고 공감을 구하며 기다리는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유용창(53) 씨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대학 시절 은사(恩師)의 글이 떠올랐다.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쓴 이 글은 언론의 어법에 관한 비평이었지만, 말이 아닌 노래로써 진실한 무언가를 전하겠다는 유 씨를 설명하기에도 적절한 듯 했다.


유 씨는 인터뷰 동안 ‘솔직함’과 ‘진솔함’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멋있게 보이는 것보다 솔직한 노래를 만드는 데 신경을 쓴다”고 했다.


유 씨는 낮 동안에는 회사를 경영한다. 회사 경영을 위임받은, 전문경영인이다. 먹고 사는 문제는 이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해결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노래를 만든다. 완성된 노래는 자신이 직접 부르기도 하고 딸 수현(22), 아들 찬우(18)와 함께 부르기도 한다. 수현 씨가 가수로 데뷔하기 전까지는 ‘유스퀘어’라는 가족밴드로 활동했지만, 이후엔 ‘탱글K’라는 예명으로 독립해 대부분 혼자 작업하고 있다.


‘탱글K’는 고대사에 밝은 그의 학문적 가치관을 반영한 작명으로, 탱글을 한자로 음차(音借)한 이름이 바로 단군(檀君)이며, K는 코리아의 영문 이니셜이다. 유 씨는 “단군은 역사에 실재했던 인물로, 유라시아 대륙의 리더였다”며 “단군의 후예로서 자긍심과 대한민국이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국가를 지향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다”고 말했다.


▲ 기업 전문경영인 유용창(53) 씨는 '가수'이기도 하다. '탱글K'라는 예명으로, 유튜브 방송 '막송막 부르는 노래'를 통해 자작곡을 잇달아 발표 중이다. 유 씨는 UPI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홍익인간'을 강조했다. 노래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예명 '탱글'은 단군의 옛 이름이다. [권라영 기자]


“내가 부장이었을 땐”…노래로 고백하는 ‘꼰대 정신’ 


유 씨가 부르는 노래는 좀 특이하다. 멋있게 보이려는 욕심은 버린 게 확실하다. 주제부터 색다르다. 꼰대, 갑질사회(직장상사 편과 직장후배 편으로 나뉜다), 반려견, 스마트폰 중독 등이다. 이 가운데 꼰대를 주제로 한 노래는 ‘이게 뭐여’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가사 중 일부. ‘내가 부장이었을 땐/ 주말에도 임원이 부르면 당장 달려나갔네/ 이제 내가 임원이 되고 나니/ 주말엔 문자만 보내도 욕을 얻어먹네/ 아이 진짜, 정말, 이게 뭐여∼’



유 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음악을 했다. 1993년에는 음반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20년 넘게 ‘음악적 공백기’를 가졌다. IMF를 비롯한 경제적인 상황, 직장에서의 적응 등으로 취미로도 음악을 하는 건 어려웠다.


 그러다 중학생, 초등학생 자녀들과 소통을 위해 다시 시작했다. 처음엔 “제2의 이박사 같다”고 질색하던 아이들도 나중엔 마음을 열고 아빠의 반주에 노래를 불렀다. 앞서 언급한 ‘유스퀘어’는 이렇게 탄생했다. ‘유스퀘어’는 2013년 유튜브에서 주목받은 후 수차례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최근 유 씨는 ‘막송막 부르는 노래’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자신이 만든 노래를 올리고 있다. 딸 수현 씨는 가수로 공식 데뷔했고, 아들 찬우 군은 고2가 돼 “음악적으로 외톨이가 됐기 때문”이다. 유 씨는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혼자라도 해봐야겠다 싶어 개인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유 씨는 과거 자신이 만든 노래들이 ‘거짓’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처음에 가족밴드를 시작할 때 예전에 녹음해둔 노래 중 몇 곡을 뽑아서 다시 들어봤다. 나조차 공감하기 어려웠다. 멋있게 보이려고 쓴 가사였다. 애인과 헤어졌으면 화가 났을 텐데 아름답게 표현했더라. 영원한 안녕을 기원하고. 그런 곡이 많이 있었다. 그걸 깨닫고 솔직한 노래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만들고 있는 노래들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채널명조차 ‘막송’이지 않나.”


▲ '탱글K'라는 예명으로, 유튜브 방송 '막송막 부르는 노래'를 통해 자작곡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 유용창 씨. UPI뉴스와의 인터뷰중 반려견을 기리는 자작곡 'Warm Heart'를 부르고 있다. [권라영 기자]


반려견을 보고 ‘출필곡 반필면’을 생각하다


유 씨는 곡을 쓰는 과정에 관해 “누군가에게서 특정한 주제로 써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바로 쓴다”고 답했다. 2015년 모교인 고려대에서 ‘홈커밍데이’에 적합한 곡을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고 곡을 만든 적이 있지만, 이 때조차 교정 산책 후 30분 안에 완성했다.


어느 날 술 마시고 자정 넘어 귀가한 집에서 반려견의 ‘반김’을 받고 갑자기 만든 ‘반려견 예찬 송’도 있다. 제목은 ‘웜 하트(Warm Heart)’. ‘모두 잠든 자정도 넘은 시간에/불들도 꺼져있는 아파트 현관을 열고/들어가네 귀가 어찌나 밝은지/벌써 나를 알아채네 꼬리를 흔드네/문앞에서 춤을 추네∼’



“사람은 누구나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밤늦게 집에 들어가면 다 자고 있다. 하지만 강아지는 반겨준다. 위로받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다. 샤워하고 나와도 강아지가 문 앞에서 반갑다고 춤을 춘다. 반려견 천만 시대라는데, 사람은 어떤가 돌아봐야 한다. 사람이 집을 들고 날 때 서로 얼굴을 보고 말을 나누는 기본적인 예의와 예절이 사라져서 안타깝다.”


출필곡 반필면(出必告 反必面 · 나갈 때는 반드시 부모님께 아뢰어 허락을 받고, 돌아오면 반드시 얼굴을 뵙는다는 뜻으로 자식이 부모에게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함)의 예절을 논하는 자세가 가히 꼰대 작곡가답다.


10대 자녀들은 절대 동의할 것 같지 않지만, 50대 남성들은 크게 공감하고 있다. 인터뷰 즈음해서 유 씨의 동년배인 기자 두 사람은 ‘웜 하트’를 들으며 깊은 공감의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꼰대의 정의에 관해 유 씨는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피라미드 안에 쓰여있는 글자들도 고고학자들이 해석을 해보니 ‘요즘 애들은 참 버릇이 없더라’는 뜻이었다고 하지 않느냐”면서 “꼰대는 고대에서부터 이어져 왔고 오늘의 나를 꼰대라고 부르는 아들은 20년 뒤 자기 아들로부터 꼰대라고 불릴 것”이라고 했다. 다만 꼰대들은 과거를 소환하고 그때 그 젊은 날을 지금 이 자리에서 회상하려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유튜브에 곡을 발표하면서 청취자로부터 감동적인 소감을 전해 받기도 했다. “‘설애’는 내 동기를 모티브로 만든 노래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 가서 고생한 친구다. 이 노래를 듣고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내준 사람이 꽤 됐다. 큰 위안을 받았다는 거다. 굉장히 어려운 상황인데 하루에서 열댓 번씩 들으면서 좌절을 극복하고 있다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노래를 하고 싶은데, 이런 분들이 생길 때마다 ‘다행이다’, ‘잘 됐다’는 생각을 한다.”


유 씨에게 ‘나이가 든다’는 건 ‘입체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젊을 때는 우물 안에서 세상을 본다. 나이가 들면 우물 안에서 나오게 된다. 50쯤 되면 세상을 넓게 보고 사고도 입체적으로 변한다.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걸 노래로 표현하고 싶다. 평상시에 보고 느끼는 것을 노래를 통해 진솔하게 전달하려고 한다.”


KPI뉴스 / 오다인 기자 odi@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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