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동네 언덕에서 미끄럼을 타고 있었어, 진짜 신나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6-05-15 17:53:06

'5·18' 어린 희생자 위무하는 '광주 연작' 출간 이경혜
청소년·아동이라고 어른과 다른 내용으로 차별하지 않아
체험 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전하는 잊혀지는 기억 환기
"광주 가짜뉴스 믿는 사람들에게 바늘구멍이라도 냈으면"

다시 '5·18'이다. 46년 전 국가가 민주시민들을 학살했던 끔찍한 폭력의 기억이다. 이미 명백하게 참상의 진실이 밝혀졌고 법으로도 심판을 받았지만, 그 비극이 드리운 그늘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점차 기억은 희미해지는데, 집요하게 그날의 진실을 왜곡하는 무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 광주민주화항쟁에서 희생된 어린 영령들을 기리는 연작 소설을 펴낸 작가 이경혜. 그는 "제사를 지내는 심정으로 그분들을 그렸다"고 말한다. [작가 제공]

 

그날의 항쟁은 소설 영화 다큐 논픽션, 전 예술 장르에 걸쳐 생산됐다. 그렇게 기억된 힘이, 그날 희생당한 죽은 이들이 산 자들을 국회 앞으로 보내 12·3 비상계엄을 막아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잊지 않는 일은 그만큼 중요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기억의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소설가 이경혜가 광주에서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어린 영령들을 호명하며, 청소년 세대에게 연작소설 형태로 그날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배경이다.

올해 펴낸 '두 아이'(바람의 아이들)는 지난해 나온 '명령' '그는 오지 않았다'에 이은 세 번째 '광주 연작'이다. 이 연작들은 실제 희생자의 사망 경위를 뼈대로 삼되, 나머지는 허구를 가미해 그들을 위무하고 독자들과 그날의 비극을 공유하는 형식이다.

첫 연작 '명령'의 주인공 박기훈(본명 박기현)은 당시 동신중학교 3학년 14살이었고, 헌책방을 나서 자전거를 끌고 가다 계엄군에 맞아서 사망했다. 나중에 이장하기 위해 관을 열었을 때 두개골이 보이지 않았거니와, 심하게 머리를 구타당해 무수한 균열로 인해 사라진 경우였다. 인부 하나가 혀를 차며 말했다. "해골이 다 부서져서 가루가 되었어야. 원체 금이 잔뜩 간 게벼." 그 말에 어머니는 통곡을 터뜨렸다.

두 번째 연작 '그는 오지 않았다'의 박인호(본명 박인배)는 자개공으로, 수예점에서 일하는 순미에게 은방울꽃 디자인으로 만든 자개 거울을 들고 프러포즈하러 가는 길에 사망했다. 총상으로 사망한 사실은 맞지만, 열여덟 살 인호의 사랑 이야기는 작가가 만들어 위무했다. 첫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사망한 사실이 안타까워 소설에서는 월급도 받아 주었다. 자개 기술을 가르쳐주었던 '홍장인'이 총에 맞아 기어가는 현장으로 뛰어들었다가 저격병들에게 조준당했다. 그는 순미에게 가지 못했다.

올해 출간된 '두 아이'는 미끄럼을 타다가 계엄군의 총에 죽은 11살짜리 전재봉(본명 전재수)을 기린다. 이 작품은 구름나라에서 오래 전 스페인내전에서 먼저 사망한 아이 마르코가 재봉을 맞아, 두 어린 영혼들이 적군이 아닌 내부의 폭력으로 사망한 공통점을 상기시키며 광주항쟁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비극을 환기하되 환상적인 설정 속에서 전개되는 흡인력 넘치는 이야기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동화를 먼저 쓰다가 신춘문예(문화일보 단편소설 부문 1992)에 당선돼 소설가로 나선 이경혜는 청소년소설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던 초기에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2004)를 펴내 50쇄를 넘겼고, 프랑스 대만 태국 베트남어로 번역돼 해외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어린이 단행본 부문 한국백상출판문화상('마지막 박쥐 공주 미가야')을 받으며 그림책부터 일반 소설 '저녁의 편도나무' 등 다양한 글을 써왔다.

 

 


-'죽음'을 말하는 작품들이 많다.
"죽음이나 성 문제까지도 아이들에게 숨기려는 생각은 없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못 할 얘기는 없다. 다만 어른들끼리 하듯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내용은 그대로 두고 표현만 바꾸는 정도다. 내용은 같은데 외국인과 대화할 때 천천히, 쉬운 한국말을 골라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말하지 않나.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범위의 표현으로 이야기하지만 내용을 바꾸지는 않는다. 죽음에 관심이 많은 데다, '광주'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여서 조금도 꺼리지 않았다."

-성장기 아이들이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아야 되는 이유는?
"역사를 실용적으로 생각하자면 어른들도 기억을 해야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아이들도 똑같이 당한다. 죽음 앞에서는 예외가 없었다. 광주를 공유한 세대는 점점 노쇠해가지만, 젊은이들은 우리 세대가 6·25전쟁 떠올리듯 먼 일로 받아들이는 현실이다. 직접 경험한 세대가 들려주는 얘기는 설득력이 다를 수 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두개골이 다 부서지도록 맞았는지는 미처 몰랐다. …박살이 난 머리뼈는 머리 가죽이 감싸고 있어서 간신히 지탱되었는데 머리 가죽이 썩어서 사라지자 금이 잔뜩 간 두개골이 부서져 나갔고, 마침내 가루가 된 거였다. 도대체 그 어린아이를 얼마나 두들겨 팼으면 해골이 가루가 되었을까? 도대체 왜?'_ '명령'

-12·3비상계엄 당시 '명령'을 거부한 군인도 나타났지만 명령을 면죄부 삼는 이들도 여전했다. 광주항쟁 관련 가짜뉴스를 고집하는 세력도 소멸되지 않았다.
"명령을 따랐다는 말로 인간의 양심에 따라 하기 어려운 모든 일들이 기계적으로 다 가벼워진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가짜뉴스를 믿는 이들은 사실 안타깝다. 자신들이 접하는 환경과 정보로만 판단을 한다. 다른 환경에서 매일 잘못된 정보만 듣고 살면 믿을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도 그렇게 갈리는 경우가 많다. 이 연작이 그들의 생각에 '바늘구멍'이라도 내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두 아이'에서는 '광주'가 '스페인 내전'과 만난다. 어떤 공통점인가?
"둘 다 적군과 싸운 게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난 살육이었다. 스페인 내전은 이념과도 결부된 6.25전쟁과 비슷하다면, 광주는 그야말로 국가폭력이었다. 둘을 비교한 건 전혀 아니고, 어이없이 국가폭력에 학살당한 아이들을 주목했을 따름이다. 어떤 전쟁이든 아이들은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그냥 죽어나간다. 이 소설을 집필할 때 마침 스페인 레지던시 중이었는데,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고 온 직후이기도 해서 그 비극이 광주와 합쳐진 것 같다." 

 

'아, 생각났다! 나, 동네 언덕에서 미끄럼을 타고 있었어. 진짜 신나게! 우리 동네엔 놀이터가 따로 없거든. 그래서 그냥 뒷산 언덕에 올라가서 풀밭을 주르르 타고 내려오면서 놀아, 오르락내리락! 근데 그것도 엄청 재밌어. 나, 정말 신나게 놀고 있었어! 그러다 죽었네, 내가!' _ '두 아이' 

 

▲ 이경혜의 광주 연작 '명령'과 '두 아이'의 실제 인물, 14살 박기현과 11살 전재수 영정. [위키미디어]

 

-많은 '광주' 작품들 속에서 이 연작은 어떤 위치일까.
"광주는 이를테면 산을 찍는 사진작가들에겐 백두산 같은 존재다. 너무 크고 아름다운데 함부로 찍을 수도 없고, 이미 많은 분들이 찍어서 정말 다르게 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대상이다. 이미 5·18에 대해서는 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써왔고, 노벨문학상도 받았다. 단지 저는 5·18이라는 산의 작은 계곡에 흐르는 시냇물에 해당하겠지만, 어린 넋들의 이름이라도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산을 올라가는 방법은 많으니, 잊혀가는 5·18을 지겹지 않게 환기시키는 길목의 한 지점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일반 소설과 청소년·아동 대상 작품을 쓸 때의 태도는 어떻게 다른가.
"일반 소설을 대할 때는 정말 좋은 문학작품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쓸 때는 그런 마음이 없다. 오해의 여지가 있어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그리고자 하는 존재를 생생하게 살려내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이번 연작들을 두고 편집자가 '제사'를 지내는 것 같다고 했는데, 살아있는 존재를 대하듯 이분들이 간절하게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소설 속에서라도 아이들이 즐거웠으면 했고 위로받기를 바랐다. 어린이 책을 쓸 때는 문학적 허영과 싸우는 편이다. "

대학 2학년 때 광주항쟁의 진실을 접하게 되면서 인생의 향방이 바뀌었다는 이경혜는, 노동운동에 투신한 지 10여 년 만에 억제해 두었던 글쓰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작가로 나섰다. 그는 4편을 더 써낼 예정인 광주 연작을 빼고는 더이상 청소년소설은 쓰지 않고, 동화와 일반 소설에만 전념할 계획이다.

'이후경'이라는 이름으로 등단한 34년차 작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일반 소설은 과작인 편이지만, 쓰고 싶은 이야기는 넘친다고 했다. 올 11월에는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를 소재로 삼은 연작도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인간의 마음이 제일 신비롭다"면서 "도스토예프스키처럼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경의 말.

모든 유정하고 무정한 것들에게 깊이 말을 건네어보고 싶었다. …소설은 내게 닻이었고, 돛이었다. _ '저녁은 어떻게 오는가'(2006) 후기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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