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소환된 '삼성의 굴욕'…"더 일하고도 SK에 기술 뒤져"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2025-05-20 16:06:17
삼성전자, 1년 10개월간 43만시간 연장근무
SK하이닉스는 '0'..."4.5일제로 지금의 최대 성과"
기업·정부 "기술 경쟁 이기려면 노동시간 늘려야"
"SK하이닉스는 주 43시간 이상을 일하지 않는다. 지금 삼성전자에는 문제가 생겼다. 기술력에서 SK하이닉스가 훨씬 앞서 있다."
지난 18일 첫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가 한 말이다. 노동시간이 대선의 주요 이슈 중 하나로 떠오르면서 삼성전자의 위기가 다시금 거론되는 것이다.
삼성의 노동시간이 더 긴데도 기술력에서 뒤졌으니 반도체특별법의 주 52시간 예외 적용이 온당치 않다는 주장이었다.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이 고용노동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가 그 근거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말까지 3개월 단위로 15차례에 걸쳐 1658명의 연구개발 인원을 대상으로 주 12시간씩, 모두 23만8752시간의 특별연장근로를 실시했다. 2023년에는 7회, 19만5552시간이었다. 1년 10개월간 43만4304시간의 연장근무를 한 셈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삼성전자 외 반도체 기업의 특별연장근로 승인은 비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는 LX세미콘이 유일했다.
SK하이닉스는 지금까지 한 차례도 특별연장근로를 실시하지 않아 대조를 보였다. 이 회사는 2주 또는 4주 간격으로 노동자들이 업무 시작 및 종료 시각을 결정하는 선택근로시간제를 시행 중이다. 특정 기간에 주 52시간 이상 일할 수 있지만, 기간 내 총 노동시간은 늘지 않는다.
황용준 SK하이닉스 이천노동조합 위원장은 지난 2월 월간 '노동법률'과 인터뷰에서 "SK하이닉스는 오히려 주 4.5일제를 도입해 지금의 최대 성과를 만들어 냈다"면서 "반도체 산업에는 더 많은 근로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근무환경과 수평적인 기업 문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영문 화섬식품노조 SK하이닉스기술사무직지회 수석부지회장도 "SK하이닉스는 구성원의 워라밸을 챙겨주는 기업 문화로 바뀌었다"며 "지금도 평균 주 43시간을 근무하고 있다"고 전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의 연장 근로시간이 8시간을 넘으면 금요일에는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회사에서도 주말, 휴일에 근무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반면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조 위원장은 "연구개발 부서는 부서장이 퇴근을 안 하면 눈치를 보고 퇴근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8시간 안에 끝낼 일을 10시간, 12시간 동안 한다. 회사에 오래 있어야 인사고과도 좋고 승진을 잘하는 분위기다 보니 근로시간만 늘어나고 능률은 떨어지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영계와 정부는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노동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3월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 경제단체 등과 간담회를 가진 바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반도체 전쟁'은 '기술 전쟁'이고 기술 전쟁은 결국 '시간 싸움'"이라며 "우리 반도체 업계만 근로시간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현실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반도체 기업들도 근로시간 규제로 인해 연구개발 성과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부서 간 협업 저해, 근로시간 최대 한도를 채운 경우 강제 휴가 등 연구에 몰입하는 문화가 약화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민주당은 반도체 산업 지원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이나 주 52시간 예외 적용에는 거리를 두고 있다. 입법을 하지 않더라도 현행 제도 하에서도 충분히 연장근로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8일 토론회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노동부장관으로 있을 때 '3개월 단위 유연(근무)제를 6개월로 늘려주면 충분하다. 총 노동시간을 줄이지 않고 노동시간 변형에 따른 수당을 모두 지급하면 기존 제도를 활용하는 것보다 좋은 제도가 아니라서 필요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김 후보는 "연봉이 상당히 높고 건강권이 보장되면 (주 52시간제의) 예외로 해달라는 것"이라며 "이것도 안 해주면서 어떻게 기술 개발하고 다른 나라와 경쟁하겠느냐"고 반박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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