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원식의 국방부, 유사사례 있는데도 이 일병 순직등급 변경 기각했다

정현환

dondevoy@kpinews.kr | 2024-04-24 09:52:48

군사망위 2022년말 "순직등급 Ⅱ형에서 Ⅰ형으로 변경" 요청
신원식 장관 취임뒤 국방부 전공상위 "판단근거 없다"며 기각
K-9 자주포 폭발사건 사망자 3명은 모두 순직 Ⅰ형으로 결정
"K-9 사건, 왜 검토 안했나" 묻자 한 심사위원 "비판받아 마땅"

이 일병은 죽어서도 편치 않다.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다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걸맞은 평가는 없었다. 39년이 훌쩍 지나도록 사망 원인을 두고 조작과 왜곡 의심이 여전한데, 순직에 대한 예우 역시 부실하기 짝이 없다.

 

▲ 지난해 10월10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신원식 국방부 장관. 입을 앙다문 모습이 인상적이다. [뉴시스]

 

이 일병 사망 원인을 '박격포 오폭 사고'로 결론 낸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군사망위)는 2022년 말 국방부에 이 일병 순직 등급 변경을 요청했다. '9항(현재 순직 Ⅱ형)'에서 '8항(순직 Ⅰ형)'으로 바꾸라는 법적 권고였다. 군사망위는 "망인(이 일병)은 부대단위 공지합동훈련 중 사고에 의해 사망한 것이므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쓴 직무수행 중 사망한 사람에 해당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군인재해보상법(39조)에 따르면 특수직무순직인 순직 Ⅰ형에 해당하면 사망보상금으로 공무원 전체의 기준소득월액 평균액의 45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유족이 받을 수 있다. 순직 Ⅱ형은 절반(24배) 정도에 그친다. 또 순직 Ⅰ형으로 결정되면 대개 별도 심사 없이 '국가유공자'가 된다. 국가유공자가 되면 고인의 자녀 등에게 다양한 혜택과 예우가 보장된다.

 

그러나 국방부는 순직 등급 변경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0개월 뒤(지난해 10월20일)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전공상위)는 위원 9명 전원 의견으로 군사망위 요청을 기각했다. '타의 귀감이 되는 능동적 활동을 하다 사망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거였다.

 

▲ 지난해 10월 20일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 회의록. ⑦번이 신 모 심의위원(변호사) ⑨번은 나 모 심의위원(변호사) 의견이다. [이 일병 동료였던 조평훈 씨 제공]

 

KPI뉴스가 입수한 회의록에 따르면, 신 모 심의위원(변호사)은 "공지합동훈련이 '타의 귀감이 되는 고도의 위험을 무릅쓴 직무수행'에는 해당하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나 모 위원(변호사)도 "타의 귀감이 되는 능동적인 활동을 하다 사망한 경우에만 Ⅰ형으로 볼 수 있다"며 "타인이 쏜 박격포에 맞았다는 것은 능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수동적인 행위"라고 밝혔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책임연구원 출신 심사위원장은 "현재 법령에 의거 순직 Ⅰ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했다. 

 

법령상 국방부 전공상위의 기각 결정 자체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현재 군인사법에서는 '순직Ⅰ형(2-1-17)' 대상을 "타의 귀감이 되는 고도의 위험을 무릅쓴 직무 수행 중 사망한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기각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다. 전공상위는 비슷한 전례조차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모 일병의 죽음과 유사한 사례인데 순직 Ⅰ형을 받은 전례가 엄연히 있건만 전공상위는 이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전례조차 확인하지 않은 '부실 심사'였던 거다.

 

전례란 2017년 8월 발생한 'K-9 자주포 폭발 사고'인데, 당시 군은 '타의 귀감이 되는 경우'(순직 2-1-17)로 판단했다. 사망자 3명에게 순직 Ⅰ형 결정을 내렸다. KPI뉴스는 이러한 사실을 국방부 정보공개청구로 확인했다.

 

"왜 K-9 자주포 사고를 참고하지 않았느냐"는 KPI뉴스의 질문에 이 회의에 참석한 A 위원은 "(전례를 참고하지 않은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대답했다. '부실 심사'를 인정한 셈이다. 

 

부실 심사 정황이 이 것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심사는 사건의 실체에 대한 결론도 없이 진행됐다. 이 일병이 '불발탄 사고'(당시 군 결론)로 숨졌는지, '박격포 오폭'(군사망위 재조사 결론)으로 숨졌는지 결론 내지 않은 상황에서 어정쩡하게 진행됐다. 엄연히 군사망위 결론이 있는데도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군사망사고진상규명법)은 "위원회(군사망위)가 조사한 결과에 대해 국방부 장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요청에 따라야 한다"(29조)고 명시하고 있다. 

 

▲ 군사망사고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군사망사고진상규명법)은 "위원회(군사망위)가 조사한 결과에 대해 국방부 장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요청에 따라야 한다"(29조)고 명시하고 있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당시 위원장은 "사망의 원인에 대한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늘 결정해야 한다면 망인이 (순직)Ⅰ형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어정쩡한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위원장은 "'타의 귀감이 되는 고도의 위험을 무릅쓴 직무 수행'의 범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논의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명시해 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 모 심의위원(변호사)은 "우리 위원회에서는 사실 관계를 어느 쪽으로 확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유족 측에서 다른 방법으로 사실관계를 증명해 내거나"라고도 했다. 39년 전 군 훈련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국가 공식기구인 군사망위에서 이미 재조사 끝에 '박격포 오폭 사고'로 결론도 지은 터다. 거기에 더해 유족이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사실관계를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 작년 10월 20일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에서 ⑤번인 현직 변호사 박 모 심의위원은 "목격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발언했다. [조평훈 씨 제공]

 

당시 회의에선 '박격포탄 오발'로 보는 의견도 나왔다. 박 모 심사위원(의사)은 "목격자(동료 부대원으로 이 일병이 박격포탄 오발로 사망했다는 진술)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공상위의 기각 결정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 취임 이후 내려진 것이다. 신 장관은 여전히 "불발탄 사고"를 주장하고 있다. 신 장관은 사고 당시 이 일병이 속한 중대 지휘관(중대장)이었다. 전공상위 심사 결과는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차관-장관 순으로 결재가 이뤄진다. 이번 이 일병 사망 심사의 경우 신 장관이 최종 결재권자다. 

KPI뉴스는 국방부에 결재 과정과 결재권자가 누구인지 등을 정보공개청구로 여러 차례 문의했다. 전공상위 관계자는 "이 일병 사건의 경우 장관이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결재를 안 했다. 차관이 대신 결재했다"고 설명했다.

 

KPI뉴스 / 정현환 기자 dondev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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