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자택 찾은 박근혜에게 "큰일 하실 거 같다"
류순열 기자
| 2018-12-21 14:48:56
2002년엔 "무리한 욕심, 대권의지 접으라"
잘 꾸며진 정원에 매미소리가 우렁찼다. 저택안에선 '거물들'의 밀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2004년 8월 어느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서울 연희동 자택 풍경이다. 밀담의 주인공은 집주인인 전 전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다.
비공개 면담을 하고 염창동 당사로 돌아온 박 대표는 화가 나 임태희 대변인을 호출했다. "○○○ 부대변인 자르세요." 임 대변인은 몇몇 기자와 저녁을 함께 하며 폭음했다. 느닷없는 박 대표의 지시에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자르란다"면서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해고 통보를 받은 그 부대변인은 전 전 대통령 면담에 배석했던 인물이다. 속절없이 그는 백수가 됐다.
사후에 알려진 해고 사유는 '면담 내용 비공개 지시 위반' 혐의였다. 전 전 대통령은 "나중에 큰일 하실 거 같다. 도와드리겠다"며 덕담을 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이 일부 언론에 소개되자 그 책임을 다짜고짜 부대변인에게 물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시를 따랐다. 단순히 면담 사실만을 전하는 보도자료 한 장을 냈을 뿐 내용엔 함구했다.
배석자는 전 전 대통령 측 인사를 포함해 세 명이 더 있었다. 당시 잘린 부대변인은 공교롭게도 박근혜 정부 시절 유승민 의원을 돕던 조해진 의원이었다. 당시 유 의원도 박 대통령에 의해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친박 울타리 바깥으로 내처졌다. 잘린 순서로는 조 전 의원이 '선배'다.
당시 사건을 계기로 임 대변인도 박 대표에게서 멀어졌다. "나는 당 대변인이지, 대표의 대변인이 아니다." 폭음하던 날 그의 외침은 절절하고 단호했다. 임 대변인의 빈 자리는 또 다른 대변인인 전여옥 의원이 채우며 최측근 실세로 부상했다.
하지만 그도 결국 친박 울타리를 벗어났다. 그냥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반(反)박근혜의 선봉이 됐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3년을 최측근으로 지내면서 실망감이 확신으로 굳어진 듯했다. "신문기사를 깊이 있게 이해 못한다", "늘 짧게 답하는데 베이비토크와 다르지 않다", "클럽에 갈 때도 왕관을 쓰고 갈 것 같다"…. 그는 정치인 박근혜의 지적 능력을 의심했고, '공주스러움'을 개탄했다.
전 전 대통령의 자택이 공매 처분된다는 소식에 박 대표를 따라 연희동 전씨의 집을 방문했던 옛 기억을 소환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지난 19일 전씨의 집을 온비드 사이트에 공매물건으로 등록했다. 공매 신청기관은 서울지검.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해 매각 절차를 밟는 것이다. 감정가가 102억3286만원이다.
2004년 그날 전씨의 집은 위압적이었다. 경호원들의 표정과 말투부터 그랬다. 하다못해 매미조차 우렁차게 울지 않던가.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들은 기자들의 상의 가슴께 스티커 한장씩을 붙여줬다. 돌아갈 땐 떼서 반납해달라면서. 기자들끼리 그랬다. "뭐야, 단체 뷔페식당에 온 것도 아니고, 진짜 웃긴다."
2002년엔 "대권의지 접으라"고 한 전두환
2002년 2월 당시 박근혜 의원은 이회창 총재가 이끌던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3개월 뒤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고 대권 도전을 시사하며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지원을 부탁한다.
전 전 대통령은 "박근혜 의원은 내게 사람들을 보내 자신의 대권 의지를 내비치며 힘을 보태줄 것을 요청해왔다"면서 "나는 생각 끝에 완곡하게 그런 뜻을 접으라는 말을 전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박 의원이 지닌 여건과 능력으로는 무리한 욕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면서 "박 의원이 대통령이 되는 데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봤고, 실패했을 경우 '아버지를 욕보이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전하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전두환 회고록'에서 그는 이렇게 밝혔다.
KPI뉴스 / 류순열 기자 ryoos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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