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청천 외손 "독립운동사 지우고 싶으면 헌법부터 바꿔라"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3-09-27 15:57:59

[인터뷰] 외조부 명예 졸업장 반납한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독립 전쟁과 국군 역사는 무관하다'고 하는 나라 거의 없다"
독립운동 모독·부정? "그런 사람들이 반헌법·반국가 세력"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심해…역사 쿠데타 실패할 것"

임시정부 국무령 이상룡, 신흥무관학교 교장 윤기섭,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독립운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들에게 육사가 5년 전 수여한 명예 졸업증을 후손들이 지난 15일 반납했다. 육사가 교정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다섯 명(이회영, 홍범도, 지청천, 김좌진, 이범석)의 흉상을 철거·이전하기로 결정한 걸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UPI뉴스는 27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지청천 장군 외손이자 일제 강점기 연구자인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을 만나 육사·육군의 뿌리,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의 정체성 등 역사 문제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다음은 이 전 관장과의 일문일답.

 

▲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UPI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ㅡ명예 졸업증을 반납할 때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육군에 '국군의 뿌리가 독립운동에 있고 광복군을 계승했다'고 공언해달라는 요구를 오랫동안 했다. 육군은 이를 거부했다. 광복군과 국군은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2018년 3월 육사가 독립운동가 다섯 분의 흉상을 예치하고 서른 분 정도에게 명예 졸업증을 수여했다. 사실상 육사가 독립군·광복군에서 활동한 모든 분께 드리는 것이라고 여기고 기쁘게 받았다.

흉상 철거 소식을 듣고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명예 졸업증을 돌려주려 찾아갔지만, 육사 관계자가 접수하러 나오지도 않아 교문 앞에 두고 왔다. 육사에서 그걸 1시간 동안 방치하다가 뒤늦게 가져갔다더라. 정말 독립운동가에 대한 모욕이 끝이 없구나 싶었다."

ㅡ육군 뿌리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육사 교장만 하더라도 정기 육사의 시작으로 불리는 1951년까지 9명 중 5명이 광복군 출신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광복군과 상관없이 육사가 생겼다고 할 수 있나. 또 초대 국방부 장관이 광복군 출신 이범석 장군 아닌가. 국방부는 심각한 자기부정을 하고 있다.

논란이 되자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육사의 정신적 뿌리는 신흥무관학교가 아니라 국방경비사관학교라고 말했다. 그런데 명예 졸업증을 반납하겠다고 하자, 육사는 '정신적 연원임은 인정하지만 제도적으로는 연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일관성도 없다."

ㅡ식민지를 경험한 다른 나라는 어떤가.

"미국 육사는 19세기에 문을 열었지만,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18세기에 독립 전쟁을 할 때 육사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얘기한다. 독립 전쟁의 정신을 계승했으니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도 독립 전쟁에서 국군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정리하는 게 마땅하다.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들은 일반적으로 독립 전쟁에서 군의 뿌리를 찾는다. 우리처럼 '독립 전쟁과 국군의 역사는 무관하다'라고 얘기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ㅡ특히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홍범도 장군 한 사람만이 아니라 사실은 독립운동가 상당수, 독립운동 전체를 표적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한 사람은 1962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다. 노태우·김영삼 정부 때는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려고 했다. 잠수함에 홍범도함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박근혜 정부 때다. 다 보수 정부였고, 장군의 소련공산당 가입 사실을 알면서도 독립운동가로 인정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마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것처럼 이념 문제를 거론하면서 매도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독립운동가가 독립을 위한 방편으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공산당에 가입했으니 이 사람은 평생 공산주의자였다'고 규정하는 건 잘못이다. 특히 홍범도 장군은 소련공산당 가입 이전이나 이후에도 공산주의자로 활동했다는 자료가 없다."

ㅡ독립운동가 상당수가 표적이라면 좌우 합작을 추진한 민족주의자도 대상이라는 건가.

"뉴라이트로 불리는 친일 극우 세력이 약 20년 전부터 독립운동을 사실상 부정하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왔는데, 그걸 이 정부가 받아들였다. 초기에 뉴라이트의 주요 공격 대상이 김구 선생이었다. 하나는 김구 선생이 임정 경무국장일 때 밀정 처단 활동을 벌였는데 그게 테러라는 주장이었다. 또 하나는 1948년 평양에 가서 남북협상을 한 것을 가지고 '김일성에게 놀아난 사실상 빨갱이다', 이런 논리로 공격했다.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면, '사회주의자와 손잡으려 한 사람들도 빨갱이다'라는 식으로 공격이 확대될 것이다. 뉴라이트가 오랫동안 주장한 게 '친일파가 대한민국의 뿌리이고 그들 덕분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다'라는 거다. 그 친일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독립운동의 역사를 지우려는 것이다." 

 

▲ 독립운동가 이상룡·윤기섭·지청천의 후손들이 지난 15일 서울 노원구 육사 정문 앞에서 육사 내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이전 결정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명예 졸업증을 반납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ㅡ헌법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돼 있다. 독립운동과 민주 항쟁이 대한민국 정체성의 기본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는데.

"그런데도 독립운동을 모독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이른바 반헌법 세력이다. 윤석열 대통령 논법대로 하면 반국가 세력이다. 헌법 부정은 대한민국 부정이다. 헌법을 부정하면서 어떻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얘기하나. 정 독립운동의 역사를 지워버리고 싶으면 헌법부터 바꾸고 헌법 전문에서 그 구절을 빼야 하는 것 아닌가. 독립운동 역사를 지우면 대한민국은 없다는 것이 헌법 정신인데, 그걸 부정하는 것이다. 기막힌 일이다."

ㅡ요즘 상황을 보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이명박 정부도, 박근혜 정부도 역사 왜곡을 시도했다. 이명박 정부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 했지만, 여론이 좋지 않자 시도를 접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교학사 교과서, 국정 교과서를 통해 장기전을 구상했으나 독립운동의 역사를 뒤집으려는 시도를 본격적으로 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현 정부는 단칼에 잘라버리려 시도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정도가 훨씬 심하다. 하지만 시민 다수의 역사관을 권력의 힘으로 하루아침에 바꾸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역사 쿠데타는 실패할 것이다."

 

KPI뉴스 / 탐사보도부 김덕련 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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