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1·2·3차 피고발 의원 100명 넘어
의원의 1/3 고발장 실은 '패스트트랙 열차' 출발
대화·타협 실종된 '정치 사법화' 가속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 선거제·사법제도 개혁 법안이 우여곡절 끝에 각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가운데 그 과정에서 여야가 서로 고소·고발한 의원이 100명(중복고발 제외하면 99명)을 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0대 국회의원 정수의 1/3이다. '검찰발 정계개편설'이 나오는 배경이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패스트트랙 대치 이후 1, 2, 3차에 걸쳐 여야가 서로 고발한 의원은 총 99명. 이를 두고 일각에선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후 첫 무더기 고발인 만큼 엄격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정치적 사건을 사법부에 보내 해결하려는 습관성 고소·고발이 '정치의 사법화'를 부추긴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본지는 20대 국회 개원 이후 발생한 고소·고발의 내용과 특징을 분석했다. 크게 '패스트트랙 정국' '19대 대선 정국' '장외 설전'으로 나눌 수 있다.
▲ 선거제·검찰개혁법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놓고 육탄전을 벌인 여야 국회의원들이 26일 오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과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뉴시스]
패스트트랙 정국…피고발 의원 100명 넘어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여야가 서로 고발한 의원은 확인된 것만 총 99명. 민주당과 정의당이 고발한 한국당 의원 56명(중복고발 제외)에 한국당이 고발한 43명이다. 한국당 소속 의원 114명 중 절반가량이 고발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검찰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전체 국회의원의 3분의 1 가량을 '합법적'으로 조사할 수 있게 됐다. '검찰발 정계개편설'이 나오는 배경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한국당 의원들을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여야 합의로 개정된 국회법 제165조와 제166조다. 폭력행위 등을 통해 국회 회의를 방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단체로 위력을 보이는 경우 등은 7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더욱 무거운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또 공직선거법은 국회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경우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규정도 두고 있기 때문에 향후 출마도 제한된다.
이번 민주당의 고발로 실제 처벌받는 사람이 나온다면 국회선진화법 도입 후 첫 적용 사례가 된다. 일부 정치인의 경우 내년 총선을 앞두고 피선거권 박탈에 이르는 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국회선진화법이 내년 총선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한국당은 민주당 의원들과 여영국 정의당 의원 등을 한국당 의원들에게 상해를 가했다는 이유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또 문희상 국회의장과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를 오신환 의원 사·보임 문제의 책임이 있다며 형법상 직권남용죄 혐의로 고발했다.
한편, 한국당 임이자 의원은 지난달 26일 문희상 국회의장을 자신의 복부와 양 볼을 만졌다는 이유로 고소했다. 현직 국회의장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한 것은 헌정 사상 최초다.
19대 대선 고소·고발…선거 끝나면 없던 일?
대선 정국에서 고소·고발은 주로 네거티브 공방에서 나타난다. 이슈가 생기면 일단 고소를 한다. 그 자체가 뉴스가 되기 때문이다. 증거가 부족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렇게 요란하게 말싸움을 벌이다가 선거가 끝나고 승자가 먼저 '대승적 차원에서' 취하하면, 패자도 마지못해 물러선다.
2017년 5·9 대선에서도 그랬다. 후보 지지율이 1, 2위를 달렸던 민주당과 국민의당 간에 고소·고발 난타전이 벌어졌다. 국민의당은 문재인 후보 지지자 13명이 실시간 검색어나 안철수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을 단 혐의가 있다며 고발했고, 이에 맞서 민주당은 문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여론조작을 시도한 혐의로 안철수 후보 팬카페 관리자 및 운영자 19명을 고발키로 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대선 4개월여 후인 2017년 9월 하순께, 이들에 대한 고발을 포함해 총 9건의 사건에 대한 고소·고발을 취하했다. 같은 시기에 민주당이 국민의당 의원·당직자를 고소·고발한 사건 7건을 취하한 것과 맞교환 형식이었다. 당시 시기는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 처리 직전이었고, 쌍방의 고소·고발 취하는 야당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민주당 지도부의 정치적 결정으로 해석됐다.
이밖에도 문 대통령 측이 '문재인 후보 아들 특혜취업 의혹'을 제기한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과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을 '허위사실 공표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며 두 사람이 맞고소 방침을 밝힌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 모두 검찰에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 더불어민주당 법률위원장인 송기헌 의원과 이재정 대변인 등 민주당 관계자들이 29일 나경원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 19명에 대한 국회법 위반 및 특수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뉴시스]
관심끌기 '정치쇼'…'정치의 사법화' 가속화
한편 고소하겠다고 요란하게 으름장만 놓고 실제로는 고소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고소하겠다는 엄포 자체가 뉴스가 되고 경우에 따라선 상대방의 잘못이 인정된 것처럼 공세를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벌어진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과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의 설전이 대표적이다. 하 최고위원은 홍 수석대변인이 한국의 젊은 세대의 보수화를 말하며 유럽의 '신(新)나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홍 의원은 해당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하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반드시 고소하겠다는 뜻을 거듭 내비친 바 있지만 고소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밖에도 정치적 양보와 타협 대신 서로의 흠결을 찾아내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경우는 많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정부·여당과 야당이 서로 고소고발을 주고받은 사례는 파악된 것만 13건이고, 이중 7건이 지난해 12월부터 최근 사이에 이뤄졌다. 총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형준 교수(명지대 인문교양학부·계량정치학 박사)는 UPI뉴스와의 통화에서 “올해는 정치 사법화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라며 "정치 사법화 현상이 나오는 것은 정치력의 부재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얼마든지 대화하고 타협하고 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데 극단과 배제의 정치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여야는 쉽게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선거제·사법제도 개혁 법안의 패스트트랙 추진 과정에서 여야의 고소·고발이 과연 합당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장영수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는 UPI뉴스에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이 일방적으로 잘못했다고 봐야 하느냐, 아니면 여야 4당도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하는가, 그 과정에서 정치적인 타협의 가능성은 없는가를 다 고민했어야 한다"며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잘못한 것이 아니라면 정치적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