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의정원 100주년 기념식…홍진 선생 흉상 제막
국회의 모태 '임시의정원 미래를 품다' 특별전 개막
문희상 "국회의 정통성 확인하는 계기 되길"
국회는 3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임시의정원 미래를 품다' 제하의 특별전시회 개막식을 열고 대한민국 국회의 헌정사적 의의를 재조명했다.
▲ 국회는 3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특별전 '임시의정원 미래를 품다' 개막식을 열었다. [임혜련]
이날 오전 10시 국회의사당 중앙홀과 국회도서관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현 국회의 모태인 임시의정원은 독립 염원을 표출한 3·1운동 정신을 계승하여 1919년 4월 10일 상해에서 개원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임시의정원은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입법기관으로 우리 민족 최초의 미주공화제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했다.
기념식은 국회도서관에서 진행되는 '홍진 선생 흉상 제막식'으로 막을 올렸다.
임시의정원 마지막 의장인 홍진 선생은 해방 후 환국할 당시 '임시의정원 문서'를 가지고 들어왔다. 이를 보관하고 있다가 국회도서관에 기증한 그의 손자인 홍석주 씨는 이날 행사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에 임시의정원 관인(官印) 등 홍진 선생의 유품을 전달했다.
이어 국회의사당 중앙홀에서 열린 특별전 '임시의정원 미래를 품다' 개막식에서 문희상 국회의장, 정세균 전 국회의장,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등이 테이프 커팅식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문 의장은 '100주년 기념 특별전' 개최를 축하하며 "임시의정원의 역사적 위상을 알리고 이를 계승한 국회의 정통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문희상 국회의장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임시의정원 미래를 품다' 특별전 개막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 [뉴시스] 문 의장은 "임시의정원은 상해 임시정부를 통합했고 좌우의 통합의회를 구성했고 100년이 지난 지금도 국회가 나아갈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국회는 의회주의 구현과 협치를 통해 국민통합의 길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임시의정원은 첫 회의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고 민주공화제에 입각한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했다"며 "임시의정원 첫 회의는 제국의 백성을 공화국 주인으로 바꾸며 의회주의 역사에 초석을 다진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행사에는 문희상 의장을 포함한 국무총리,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5부요인, 정당 대표 및 원내대표, 국회의원, 전직 국회의장 등 입법·사법·행정부 주요 인사, 주한외교사절, 유관단체 관계자, 독립유공자 후손 등 약 500명이 참석했다.
임시의정원 관련 기록물 및 사료 특별 전시회인 '임시의정원, 미래를 품다'는 헌정기념관 지하 1층 기획전시실에 열린다.
전시는 임시의정원이 활동한 중국 상해와 중경 등의 도시를 중심으로 27년간 임시의정원 활동의 전체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다음은 임시의정원의 활동상을 담은 주요 사진을 갈무리한 것이다.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3·1 독립선언을 통해 천명한 '독립국'을 세우기 위해 1919년 4월 10일 중국 상해에서 개원한 대한민국의 입법부이다. 임시의정원은 제 1차 회의에서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정하며 국민이 주인인 나라 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임시의정원 제1회 회의에서 결정한 민주공화제 이념은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임혜련]
▲ 미국 대한인국민회의에서 발행한 독립선언서.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민족대표가 발표한 독립선언서 전문과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1회 회의에서 결의한 대한민국임시헌장 선포문과 10개조의 임시헌장이 수록돼있다. [임혜련]
▲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은 우리 민족 최초의 민주공화제 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선포했다.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을 명시해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선언했다. [임혜련]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6회 기념촬영.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으나 연해주와 국내에서도 각각 대한국민의회, 한성정부가 설립되어 모든 민족의 대표자를 자처하였다. 이에 임시의정원은 임시헌장을 개문하고 투표를 통해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등 정부 각원을 결정했다. 이로써 연해주와 대한국민의회,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내 한성정부를 중심으로 통합을 이뤄 새로운 임시정부가 탄생했다. [임혜련]
▲ 임시의정원은 상해를 떠나 중경에 정착할 때까지 임시정부와 함께 중국대륙을 옮겨 다녀야 했다. 그럼에도 임시의정원은 임시장소에서 회의를 열고, 상임위원회를 통해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됐다. 임시의정원의 회의는 임시정부와 함께 이동하며 진행됐지만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임혜련]
▲ 임시의정원 제34회 회의 중 1942년 10월 26일, 의원 37명이 참여한 가운데 실시한 임시의원장 의장 선거에 홍진 의원이 33표를 얻어 선출됐다. 홍진은 대한제국 법관양성소 출신으로 변호사 활동을 하다가 3·1운동 직후 1919년 한성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상해로 망명한 후엔 임시의정원 의장과 임시정부 수반인 국무령 등을 맡았고, 민족유일당 운동을 주도했다. [임혜련]
▲ 일제의 항복소식을 접한 임시정부는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27년간 우리가 대행하던 임시정권을 국민에게 봉환하며, 봉환을 위해 조속히 귀국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때 중국은 임시정부가 조국으로 돌아가 정부를 수립할 수 있도록 비행기 2대와 자금을 지원했지만, 미국은 임시정부가 '정부'가 아닌 '개인'으로 귀국할 것을 요구했다. 임시정부는 미국에 '개인 자격의 귀국'을 서약하고 나서야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1945년 김구 주석을 비롯한 제1진이 김포비행장에 도착했으나 미국이 귀국을 극비리로 진행해 국민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같은 해 12월 1일 귀국한 제2진도 마찬가지였다. [임혜련]
▲ 환국 이후 미군정은 임시정부의 과도정권 수립을 저지하고 방해했으나 임시정부는 회의를 이어갔다. 1948년 5월 31일에는 제헌국회가 개원했고 임시의장 이승만은 개회사를 통해 제헌국회에서 수립할 대한민국정부가 기미년 3·1운동으로 건설된 임시정부를 계승하며, "이 날이 민국의 부활임을 공포한다"고 했다. 제헌국회 의원들은 1948년 7월 17일 헌법을 공포하고 경축하는 기념행사를 열었다. [임혜련]
▲ 1948년 7월 17일 공포한 대한민국헌법은 전문에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며"와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로써 3·1운동으로 건립한 대한민국의 독립정신을 계승한 민주독립국가임을 밝히고 있다. [임혜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