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작가는 많이 읽은 독자, 독자는 아직 쓰지 않은 작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5-07-25 17:49:10

세기의 작가들 소재 연작소설집 '순수한 모순' 펴낸 김솔
카프카, 보르헤스, 고골, 쿤데라 바탕 사실 허구 뒤섞어
실제 작가와 작품 다시 살펴볼 계기 만드는 또하나의 작품
"결국 읽기의 완성은 재해석과 쓰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오로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어 삶과 화해하고 위무하게 될 때까지 다리를 붙잡고 호수 바닥으로 빠져드는 물귀신이 되는 꿈'. 소설가 김솔이 2012년 등단하면서 평소 일기장에 적어놓은 생각을 발췌해 발표한 다짐이다. 이 포부는 이후 실제로 쉼없이 발표해온 소설들에 꾸준히 적용됐거니와, 전통 형식을 깨고 여러 텍스트들을 가져와 자신만의 새로운 쓰기로 실천한 그 작품들은 한국 소설 작단에 새로운 변종으로 눈길을 끌었다. 

 

▲ 실존 거장들의 전기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해 새로운 읽기 경험을 제공한 소설가 김솔. [문학실험실 제공]

 

이를테면 첫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2014)에서부터 카프카, 보르헤스, 미시마 유키오 등을 붙들어 한국 상황을 변형시켜 투영했고, 이후에도 '유럽식 독서법'(2020)처럼 유럽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깨면서 다양한 신화나 종교적 소재와 연결시키는 작법을 선보여 왔다. 이러한 스타일은 그가 최근 발표한 연작소설집 '순수한 모순'(문학실험실)에 보다 선명하게 집약돼 있다.

이 소설집은 프란츠 카프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밀란 쿤데라 등 세기의 작가들을 원재료로 삼은 중편 4개로 구성했다. 각각 '편지' '신작' '장미' '롱괴르'를 표제로 내세우며 작가의 전기적 사실을 허구와 뒤섞어 독자들에게 그 경계를 스스로 파악하도록 참여시키는 방식이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란, 글쓰기란 무엇인지 곱씹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세기의 작가들에 대한 궁금증을 적극적으로 풀어나가게 만드는, 이미 그들 작품을 읽은 독자들에게는 재독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연작이다.

-실제했던 작가들을 소재로 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배경은?
"제 글의 원재료 중 하나가 책이라는 걸 밝히고 싶었다. 이 과정을 통해 다시 읽기가 다시 쓰기가 되는, 그런 쪽으로 연결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제대로 그 책을 이해하려면, 재해석해야 한다. 결국 독서는 작품으로 발현된다는 생각이다. 이 책 한 권이 두세 권을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작가가 아닌 독자들에게도 '결국 읽기의 완성은 쓰기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말이 해당될까.
"독자와 작가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미 많이 읽은 독자일 것이고, 독자는 아직 작품을 쓰지 않는 작가이다. 그 작품이 일기나 편지 혹은 문자메시지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발현되는 게 사실은 제대로 된 읽기이고 쓰기라는 생각이다."

-이 작가들을 선택한 이유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들의 유산을 활용하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존경을 표시하고 싶었다. 막상 한국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자면 머뭇거릴 수 있지만 이번에 소개한 작가들은 이미 모든 이들이 존경하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분들이다. 혹시라도 누가 되지 않을까 조금 걱정은 되지만, 이들을 읽지 않는 세태를 대비해 기록을 해놓자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다. 다른 작가들에 대해서도 더 써볼 생각이다. "

-이들을 관통하는 생각은?
"처음 글을 쓸 때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책 한 권 남긴다면, 그 책이 있으면 세상이 바뀔지 모른다는 망상을 한 적 있다. 그런 망상을 갖게 했던 작가들이다. 돌아보면 그들에게는 작품만 있었던 건 아니고 삶도 녹록하지는 않았다. 그분들이 썼던 작품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큰 가르침이 됐는데, 다시 보니 이번에는 작품보다 그 뒤에 있었던 사람이 보였다. 이제 작품에 대한 이야기 말고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첫머리에 내세운 '편지'의 부제는 [프란츠 카프카, 1883년 7월 3일~1924년 6월 3일]이다. 이 중편에서는 실제로 카프카와 약혼과 파혼을 반복했던 독일 유태인 여성 펠리체 바우어(Felice Bauer)를 'FB'라는 흑인 여성으로 설정한다. 그녀에게 카프카 역할을 맡기고 연인으로 '나'를 설정해 둘 사이에 오고간 편지 유고를 둘러싼 소동을, 반전을 동원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유고를 모두 불태우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친구 막스 브로트의 '배신'으로 사후 정전으로 떠오른 사연에서부터, 결혼하지 않고 끝내 독신으로 살다간 카프카의 실제 이면을 소설과 비교하며 주체적으로 찾아볼 수밖에 없다.

혹시 그녀는 누군가의 그림자로 변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상상해보세요. 그건 주인을 구분할 수 없고 언제든 모습을 바꾸다가 뒤섞이고 분리되죠. 그리고 그림자를 만드는 실체는 자유롭거나 아름답지 않아요. FB는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조건만을 수용한 채 나머지 인생은 타인과 사회를 관찰하고 고발하는 데 모조리 쏟아부으려 했던 것 같아요. _ '편지'

유고를 둘러싼 소동은 이어지는 보르헤스의 '신작'에서도 반복된다. 실제로는 보르헤스가 죽기 6개월 전 그를 오래 돌본 비서와 결혼을 하고 그녀에게 모든 저작권을 위임했지만, 소설에서는 권력자의 딸로 설정한 두 번째 부인이 끼어들어 진위를 판별하기 힘든 보르헤스 유고를 둘러싸고 다툼이 진행되는 형식이다. 생전의 보르헤스는 칠레의 군부독재자 피노체트가 주는 상을 받고도 한편으로는 노벨문학상을 갈망했던 사실, 맹인으로 살아야 했던 그의 현실과 어머니의 역할을 바탕으로 허구를 가미한다.

'장미'는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1809~1852)의 환상 기법 '코'의 형식을 빌려 작금의 시대를 배경으로 판타지를 새롭게 창작해 사실과 허구의 변증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경우이다. 고골의 소설에서는 코가 갑자기 떨어져 나가 사람 행세를 하는 판타지인데, 김솔의 '장미'에서는 여자가 자신에게 접붙인 남자의 성기 '장미라고 불리는 그녀'가 '코'처럼 몸에서 떨어져나와 복잡한 소동을 일으킨다. 퀴어의 존재론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맥락으로 읽히기도 하고, 남성 위주 세상의 폐해를 파고드는 독법도 가능하다.

나는 더 이상 몸 속에 장미를 지니고 다니면서 세상과 불화하고 싶지 않다. 가부장제의 폭력이나 일부일처제의 약점 따위를 들먹이지도 않겠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들여다볼 수 없는 시공간에서 남자나 여자, 미혼 또는 기혼, 심지어 인간이든 가축이든 상관없이 그저 나 스스로 나라고 정의하는 생명체로 존재하면서 죽음까지 걸어가고 싶을 따름이다. 그러니 추억이나 희망으로 나를 더 이상 억압하지 말라. _ '장미'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 편이다.
"많이 노력하는데 아직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지금 유행하는 것들을 빨리 간파해서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독자들과 소통이 쉬워질 텐데, 그것보다는 제가 읽지 못한 고전들이 너무 많아서 거기에 대한 주석을 달고 싶은 생각이 크다. 여기 내세운 4명의 작가들이 과연 지금도 읽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맞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저라도 무언가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인데, 저로서는 글밖에는 달리 소통 방법이 없으니 계속 노력해야 할 것 같다."

 

▲ 김솔의 소설로 재탄생해 새로운 독서 욕구를 자극하는 거장들. 왼쪽부터 프란츠 카프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밀란 쿤데라.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마지막 연작 '롱괴르'는 밀란 쿤데라(1929~2023)의 번역에 대한 '강박'을 다룬 중편이다. 쿤데라가 자신의 소설을 중역한 세계 번역자들을 워크숍으로 초대해 '시대착오적 위선'을 보였다는 가상의 스토리를 가미해 AI시대의 번역을 더불어 생각하게 만드는 흐름이다. 쿤데라는 "카프카의 작품을 막스 브로트가 (친구의 유언대로 불태우지 않은 건 현명했으나) 자의대로 편집하고, 심지어 수정까지 했다는 사실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면서 "브로트는 집배원의 역할로 만족해야 했다"고 '작가의 말'에서도 그의 강박증을 드러낸다. 물론 이 말도 김솔이 지어낸 허구인데, 생이 겹치지도 않았던 고골은 쿤데라를 두고 "번역의 문제로 인생을 소진하는 건 반대"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솔은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낮에는 대기업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소설에 집중하는 패턴을 여전히 이어가는 중이다. 신춘문예로 등단할 무렵 벨기에 주재원으로 나가서 원 없이 읽고 쓰는 생활을 통해 그곳의 문화와 역사와 인물에 대입한 이방인의 글쓰기를 해왔고, 등단 13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끊임없이 쓰고 '투고하는' 패턴을 이어가고 있다.

등단 무렵 "벌거벗은 자아와 부조리한 세상이 종이날 위에서 진검승부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했던 그는 "적어도 회사에서는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제 작품에서 만큼은 그렇게 살기 위해 조건을 만들어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삶의 모순을 순수하게 껴안으려는 그가 표제로 삼은 릴케의 시구.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_ R. M. 릴케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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