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의 장외투쟁, 독일까 약일까…5·18이 고비
남궁소정
| 2019-05-14 14:04:07
선명성 내세워 보수층 결집…내년 총선승리 위한 '묘약'
도 넘은 '국정 발목잡기'…'한국당 심판론' 역풍 불 수도
"두드려 맞으면서 죽을 각오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시장경제와 국민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피 흘리겠다."
지난 2일 서울을 출발해 이틀 만에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전주를 돌고 서울로 돌아온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4일 3차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장외집회에서 여섯 번이나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하겠다"고 외쳤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정국 이후 2일 청와대 앞에서 개최한 규탄대회를 시발로 집단 삭발하면서 본격적인 장외 대여투쟁 시작했다. 황교안 대표는 한달 장외투쟁을 예고한 바 있다. 이에 중반전에 돌입한 한국당 장외투쟁의 손익계산서에 관심이 쏠린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과 고소·고발전을 벌였고 이후 국회를 박차고 나가 서울·대전·대구·부산·광주·전주에서 정부 규탄대회를 가졌다. 7일부터는 부산 자갈치 시장을 시작으로 민생 투어에 나섰다. 일부 의원들은 국회에서 '삭발식'까지 감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한국당이 이번 기회로 '기득권·수구·웰빙' 정당 이미지를 탈피하고 '애국투사'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한국당 입장에서 보수층을 결집시켜 내년 총선의 지지기반을 확실하게 다질 수 있는 '묘약'이다.
한편, 한국당이 민생과 경제현안을 도외시하고 장외투쟁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자칫 '국정 발목잡기'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는 '한국당 심판론'이라는 역풍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패스트트랙 정국 이후 한국당 장외집회의 득과 실을 분석하고, 한국당 장외 투쟁의 역사를 살펴봤다.
한국당의 장외투쟁은 남는 장사?
한국당이 이번 장외투쟁으로 얻은 것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국정농단, 탄핵정국에서 한국당에 등 돌렸던 보수층의 지지다.
지난 13일 리얼미터 여론조사(7~10일 전국 유권자 2020명, 오차범위 95% 신뢰 수준 ±2.2%p)에 따르면, 한국당의 지지율은 34.3%으로 4주 연속 상승했다. 이는 20대 국회의원 총선 1주일 전 2016년 4월 1주 차에 전신인 새누리당이 기록한 지지율(34.8%) 이후 약 3년 1개월 기간에 가장 높은 수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는 4.4%p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소 격차를 보인 가운데 오차범위 내로 좁혀졌다.
한국당의 강경투쟁으로 존재감이 높아지면서, 보수 유권자들이 제1 야당으로 결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한국당이 지속적인 대여투쟁을 통해 이미지 변신을 꾀한 덕이다. 이번 투쟁은 '단식 릴레이 농성' 등 이전의 흐지부지됐던 농성들과는 달랐다. 합의 직후 결성된 24시간 농성은 5일 연속 진행됐고, 광화문 집회는 11일까지 4주 연속 이어지며 지속성을 가졌다.
구체적인 목표 제시로 당 단합을 도모했다는 점도 득(得)이다.
과거 한국당의 고질적인 계파 갈등은 대여 투쟁력의 한계로 지적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패스트트랙 3법 저지' 등의 목표로 장외에서 똘똘 뭉치며 친박·비박 간 갈등이 누그러졌다는 말이 나온다.
한국당 김영우 의원은 UPI뉴스와의 통화에서 "당내 결속력이 다져지고 단합된 측면이 있다. 패스트트랙 이후 우리 당이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내 분위기는 상당히 고조돼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지도자의 리더십이 안정국면에 진입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앞서 추경호 의원은 UPI뉴스에 "황대표의 리더십이 당내에서 굉장히 안착을 하고 있고 추동력을 많이 얻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정치력을 공격할 수 있다는 점도 한국당의 득(得)이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부터 '협치'를 강조했지만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은 정부가 추진하는 협치와 적폐청산의 이율배반적 상황을 보여줬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 이후 처음 열린 광화문 집회에서 "문 대통령이 원로회의에서 '선(先)청산·후(後)협치'라고 했는데 제 귀엔 '선궤멸·후독재'로 들렸다"고 날을 세운 이유다.
이후 한국당은 대통령의 '협치' 발언을 계속 공격중이다. 지난 8일 정진석 의원은 "야당을 국정운영 동반자로 삼겠다던 대통령 취임사 약속은 지켜진 게 없다"며 비판했다.
외연확장 기회 잃고, 당력 소모…'한국당 심판론' 역풍 불수도
장외집회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로 당력이 소모된다는 점은 한국당에겐 실(失)이다.
한선교 사무총장의 욕설 파문이 대표적이다. 한 사무총장의 발언은 한국당의 장외투쟁 장기화와 무관치 않다. 한 사무총장의 발언은 황교안 대표가 자갈치 시장이 휴무일인지 모르고 방문해 그곳에서 출정식을 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왔다. 중앙당이 지역 사정을 모른 채 일을 추진해 이 같은 사달이 났다고 전해진다. 이 밖에도 한국당의 장외투쟁이 한 달 가까이 지속돼 집회를 위해 서울을 오가는 지역당원들이 피로감을 호소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지층만 결집시켰을 뿐 외연확장의 기회를 잃고 있는 것도 실(失)이다.
보수 결집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격화' '우경화'가 중도층 이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정치 컨설턴트인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이념적이고 진영논리에 너무 빠지게 되면 중도층들이 돌아가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에서 문 정부의 실책을 부각시킬 기회를 놓치는 것도 한국당 입장에선 아쉬운 면이다. 장외투쟁으로 각종 정부 실정에 대해 정부 기관을 상대로 한 추궁 기회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당 장외투쟁이 자칫 '문 정부 심판론'이 아닌 '한국당 심판론'이라는 역풍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국회 공전을 야기한 한국당이 각종 민생법안과 추경 예산안의 처리가 안되는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7일 "제1야당이 일으킨 폭력사태를 전 국민이 지켜본 상황에서 (한국당의 장외투쟁은) 길어질수록 역풍이 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반전에 돌입한 한국당 장외투쟁의 고비는 18일로 예정된 광주 5·18 기념식 참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5·18망언 의원들에 대한 징계절차를 손놓은 가운데 황 대표가 5·18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은 '두드려 맞으면서 보수를 결집시키는 순교자 코스프레'로 비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당의 장외투쟁 역사
여당이었던 한국당이 처음 야당이 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고서부터이다. 1999년 당시 한나라당은 수시로 거리를 뛰쳐나갔다. '안기부의 정치사찰', '정부조직법 강행처리', '언론대책 문건' 등에 반발해 부산·대구를 오가며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여론은 좋지 않았다. "장외집회가 너무 잦다" "지역감정만 조장한다" 등의 비판이 제기되며 역풍이 일었다. 2000년 7월 여당의 '국회법 날치기'에 반발해 열린 장외집회 역시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당시 박근혜 부총재와 비주류 중진들이 '장외투쟁 중단'을 요구하며 당은 내분에 휩싸였다.
한국당이 강력한 장외투쟁으로 승리를 맛본 건 2005년이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던 사학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장외집회를 4개월간 벌였고, 결국 입법을 무산시켰다.
패스트트랙 정국 이후 이제 막 시작한 한국당의 장외투쟁의 미래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내년 총선의 키는 결국 어느 진영이 얼마나 더 개혁·쇄신을 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한국당 김영우 의원은 UPI뉴스에 "우리에게도 숙제가 남아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중도층의 신뢰, 지지를 받기 위해 우리 당도 새로워져야 한다. 정책이든, 이미지든 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KPI뉴스 / 남궁소정 기자 ngsj@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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