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이상 김민정의 수다였습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6-01-09 17:34:20

산문집 '역지사지' '말이나 말지' 동시 펴낸 김민정 시인
한국사회 미시사, 솔직하고 리듬감 넘치는 생활 속 막춤
'없어진' 아빠 찾고, 글 '근육'도 키우는 흥미로운 수다
"모든 책은 한 편의 시, 고수하고 싶은 편집자의 마음"

아빠가 있었는데 아빠가 없다. 지난해 12월 25일까지 아빠가 있었는데 26일부터 아빠가 없다. …79세의 아빠가 있었는데 80세의 아빠가 없다. 아빠가 없다는 걸 나날이 알아가는 하루하루로 나는 지금 있다. 나의 있음으로 아빠의 없음을 매일매일 조금씩 확인해가는 그날그날로 나는 지금 쓴다. _ '모르니까 안다' 

 

▲ 산문집 2권을 동시에 펴낸 김민정 시인. 그는 "순간순간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펄쩍 뛰고 또 뛴 기록"이라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시인이자 편집자, 출판사 난다의 대표인 김민정 시인이 산문집 2권을 동시에 출간했다. 첫 산문집 '각설하고,'(2013) 이후 그가 축적해온 글들을 모은 결과물이다. 2009년부터 2025년까지의 한국 사회 미시사가 담긴 '역지사지'와 날마다 신문에 연재한 짧은 이야기 '말이나 말지'는 '시인 김민정'의 솔직하고 리듬감 넘치는 '막춤'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10여 년 전 연재 기록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너만이 해야 할 일, 세상 속에서 만들어나갈 너만의 질서가 있다"면서 출판을 제안했던 죽은 선배의 유언 같은 메일을 접한 덕분이었다. 기록을 모아보니 2024년 말 '없어진' 아빠의 흔적이 도처에 스며 있었다. '브라보 젊은 아빠', 중년의 아빠, 병상에서 만난 아빠들이 생생해 그 아빠를 글로 살리고 싶었다. 연말에 서둘러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두 권을 밀어내듯 펴냈다.

'역지사지'는 2009년부터 2025년까지 약 16년간 여러 매체에 발표한 산문을 연도별로 정리한 책이다. 시인은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는 '역지사지'를 평생의 화두로 삼으면서도, 여전히 실천이 안 되어 붙들고 사는 말이라고 고백한다. 나이를 먹어도 타고난 기질은 변하지 않음을 인정하며 "애초에 타고남이 종지이니 잘하면 사발이 될 거란 기대 자체를 아예 버리겠다"면서 종지 속에서도 깊고 검은 간장 같은 통찰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거침없는 글쓰기로 보여준다.

'말이나 말지'는 2012년 한국일보 '길 위의 이야기'에 연재했던 266편의 글을 묶은 것이다. 이 글들은 컴퓨터 앞이 아니라 달리는 택시 안이나 식당 등 길 위에서 휴대전화 블랙베리 자판을 두드려 작성된 '말에 가까운' 680자 기록이다. 김민정은 이 글을 '생활 속의 막춤'이라 부르며, 순간순간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뒤통수에도 눈을 달고' 관찰하고 사유한 기록이라고 정의한다.

내 이름 석 자 검색해 지난 열 달가량 내가 쓴 글의 제목들을 찬찬히 보는데 뭐랄까, 좀 아팠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우리들 길 위에 더 짙은 그늘로 드리웠음의 증거렸다. 삶의 반대말이 죽음이 아니라 포기라는 격려가 흔해빠졌다 한들 위로가 되지 못할 법은 아니지 않는가. …이상 김민정의 수다였습니다! _ '말이나 말지'

-한 호흡에 읽히는 흥미로운 산문들이다.
"시도 그렇지만 산문도 저만의 스타일이 있다. 산문을 쓸 때는 우리 엄마 아빠가 읽었을 때 무슨 이야기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제가 잘 쓸 수 있는 산문은 생활 속에 있다. 각주와 남의 글 인용을 싫어한다. 오늘 벌어지고 있는 이 순간의 이야기가 산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일기와는 차이가 있다. 일기는 누구에게 오픈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거리감 없이 무너져 있는 상태라면, 산문은 짧아도 방점 하나가 있어야 한다. 그냥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가 아니고 '그래서 어쩌라고'가 뒤에 한 줄씩은 있어야 한다. 저에게는 저잣거리의 이야기가 산문이다."  

- 작가의 말처럼 '생활 속의 춤'이고 '리듬 속의 막춤'인 건가.
"발레도 있고 탈춤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멋있는 춤을 산문으로 출 줄 모른다. 막춤이 나쁜 거냐고 따지면, 아주 자연스러운 거라는 생각이다. 왜 자연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좋아할까. 자연처럼 위대한 게 없는데 인간의 자연은 그 '막'에 있다고 본다. 막, 막, 막, 저절로…. 저는 남의 얘기에 귀를 잘 기울인다. 그의 목소리를 실을 때는 최대한 그 사람의 말투를 살리려고 노력한다."

-저잣거리 '막춤'을 추는 산문은 시보다 소설에 가깝다.
"제가 원래 소설을 전공하려고 대학(중앙대 문예창작과)에 갔고, 이문구 선생님을 따라다니면서 사인도 받았다. 저는 소설이 논리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그물이 촘촘하게 펼쳐진 상황에서 어획을 하는 셈인데, 그런 면에 약하다. 성격이 급하고 참을성이 모자라 의자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

-산문과 시의 경계는?
"시는 저하고만 대화하는 것이다. 제 시는 누구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정말 '꼴리는 대로' 쓰는 거다. 시는 직진을 하지만 산문을 쓸 때는 우회한다. 시를 쓸 때는 저하고 대화하니까 완전 직진형이어서 낭떠러지로 그냥 떨어진다. 산문을 쓸 때는 돌아본다. 산문이라는 장르 안에는 남의 이야기도 많다. 그것 때문에 누가 상처받을까, 혹은 누군가를 편협한 시선으로 그려 균형을 잘 못 맞출까, 기우뚱거리면서 흔들린다. 시를 쓸 때는 흔들리지 않지만, 산문을 쓸 때는 시소 타는 것처럼 흔들린다."

-낭떠러지로 직진하면서도 시를 쓰는 이유는?
"사실 책상을 정리하는 의미로 이번 산문집도 엮어냈다. 올해부터는 시 쓰기에 집중하고 싶다. 시 안에는 새로운 게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개인의 밑바닥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탄광처럼 동굴을 파고 들어가는지,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데, 그게 제 안이니까 계속 가보는 거다. 그 안에서 무엇을 건지든, 그 길을 가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끝까지 가서 만지는 게 동물의 뼈 하나라고 하더라도 그걸 집어오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한 마케터가 회의 중에 내게 물었다. 시집, 꼭 그렇게 하셔야겠어요? 재고 때문에 창고가 난리예요. 대체 팔리지도 않는 걸 왜 이렇게 내는지 원. 꼿꼿했던 허리가 풀어지면서 일순 내 하이힐이 비칠, 했다. 모든 책은 다 한 편의 시거든요. 참나, 먹고살기도 힘든 마당에 시는 무슨 시요, 돈도 없어 죽겠는데. 존댓말을 유지하던 평정심이 무너지면서 순간 내 입에서 반말이 가래처럼 튀어나갔다. 야, 너 어차피 죽을 건데 살긴 왜 살아. _ '실은 우리 매일같이 시를 산다'

-'모든 책은 다 한 편의 시'?
"처음 원고를 책으로 내려고 생각하면서 썼던 사람들의 그 첫 마음을 생각한다. 그냥 명예롭고 싶어서 책을 내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처음 글을 쓸 때는 다들 뭔가 보였을 것이다. 그 초발심은 애기 같은 백설기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의도치 않게 잘 나가는 사람들은 오해 받기도 하지만, 저는 늘 그 사람이 울었던 그 첫 자리를 생각한다. 그 씨앗의 마음이 진짜 시이다. 그 마음을 잘 지켜주는 것이 편집자의 역할이라고 본다."

-살가웠던 아빠의 '없음'은 어떤 느낌인가.
"아빠가 없으니까 (병실 생활) 5년 동안 잡고 있던 축이 없어졌다. 밥을 먹는데 죄책감이 들고 몸뚱이가 안 아픈 게, 고통스럽지 않은 게 너무 미안했다. 밥도 못 먹고 몸무게가 많이 빠졌다. 지금도 늘 대화를 나누고, 그냥 아빠를 업고 산다. 산문 원고를 정리하다 보니 죽은 아빠의 젊은 시절이 다 거기 있었다. 그 아빠를 이 책 안에 살려놓고 싶었다. 아빠가 없는데 책 속에 아빠가 있다."

 

▲ 김민정은 "시와는 다르게 산문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시소를 타듯 흔들리면서 썼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김민정은 시인들의 산문집 '시의적절' 시리즈를 2024년 1월부터 지금까지 달마다 한 권씩, 현재 25권째 펴내고 있다. 그의 말처럼 "진짜 답이 안 나오기 때문에 계산기를 두드리면 이 일을 못한다"는데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김용택 시인이 이 시리즈야말로 '꺼트리지 말아야 할' 소중한 기획이라고 상찬했다고 전한다. 시인들의 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참고서' 역할을 해내는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민정은 흰머리에 핀을 꽂고도 편집자 일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그의 '역지사지'는 모든 필자들을 공평하게 대하려는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들의 섭섭함을 그들 입장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자신이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가 '역지사지'를 한밤중에 오래된 맷돌을 돌리는 행위에 빗댄 배경이다.

작심하고 책 제목으로 삼으니 큼지막한 맷돌 하나를 꼭 사야겠다 싶은 욕심이 일었다. …돌과 돌 사이 무엇을 넣고 갈 것인가 하면 콩도 좋고 원두도 좋겠지만 물을 넣고 마음을 갈아보는 일에 있어 한밤 맷손을 돌리는 손의 주인이 되어봄이 꽤 시적일 것도 같았다. _ '역지사지' 작가의 말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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