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윤 조각가, 실로 '권력과 욕망' 봉인하다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2024-06-13 13:43:58

美 유명가수 킴 칸즈(Kim Carnes)가 사랑한 조각가
회화, 도예 거쳐 '권력과 욕망' 주제로 한 '검 시리즈'로 화제
"예술은 언어...관객과 소통 가능한 작품은 인고의 세월 필요"

남자는 하늘로 높게 뻗은 검(劍) 위에 실을 한올 한올 감는다. 몽글몽글 이마엔 구슬땀이 맺힌다. 그래도 작업은 멈추지 않는다.

 

최정윤 조각가는 십여 년째 인간사 '권력이나 욕망'의 상징인 검을 자신의 실로 '봉인'하고 있다.
 

▲ 마이애미 골든비치 킴 칸스 별장에 설치된 최정윤 작가의 작품. [SayArt(세이아트)]

 

최정윤 작가의 검(劍) 시리즈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받아 왔다.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레코드상(1981)에 빛나는, 세계인 누구나 들으면 아는 글로벌 메가히트곡인 '베티 데이비스 아이즈(Bette Davis Eyes)'를 부른 킴 칸즈(Kim Carnes)가 그의 작품(The flesh of passage)을 단박에 알아봐 컬렉터가 됐다. 뉴욕 유명건축가도 홀렸다. 그의 집에 세워진 최 작가의 검은 나중에 '뉴욕타임스'에 실리며 세간의 화제가 됐다. 재미난 점은 정작 최 작가는 그들의 명성이나 배경을 전혀 모른다.


그는 왜 이런 권력의 상징인 '검'을 실로 봉인하기 시작했을까. 자기를 위한 수행의 시간이었는지, 질곡의 인간사에 예술가가 던지는 화두였는지 삼자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몸 사위에 흘러내리는 '무욕함'은 그가 이 작업을 오랜 시간 이어온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1999년 '서경갤러리', 2002년 '금산갤러리'에서 도예전을 열며 '도예가'로 세상에 자기를 알렸다. "처음엔 회화로 시작했죠. 한 도예가를 알게 돼 도예 쪽으로 눈을 돌렸어요. 대학원 시절 박물관을 이 잡듯 뒤지며 도자에 탐닉했죠."
 

▲ 최정윤 작, 삼족기 1999년 [작가 제공]

 

당시 그는 '삼족기(三足器)' 같은 도자기를 세상에 내놨다. 작품은 고대 동양 삼국 사람들이 태양 속에 산다며 추앙받던 세발 까마귀인 삼족오(三足烏)가 모티브였을 터다. 천(天)·지(地)·인(人) 같은 '삼신일체사상(三神一體思想)'을 품은 고조선 시대 제기 삼족정(三足鼎)도 선이 같다. 삼족기는 이런 인문학적 모티브를 현대에 새로운 해석으로 내놓는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청동검 시리즈를 통해 '권력 무상'을 말하기도 했다. 특히 그의 삼족기와 청동검 시리즈는 현재 국립현대미술에 각각 11점과 1점이 영구 보존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최정윤 검시리즈 [현대국립미술관 제공]

 

그는 '검(劍)' 제작의 뜻을 품고 실과 소금, 세라믹이라는 재료를 사용해 10년이라는 세월을 탐구했다. 이런 류의 작품은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작가가 온전히 손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작가의 정기가 그대로 배어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그나마 세라믹 검의 경우 나중에 거푸집 자체를 깨버렸다. 여러 곳에서 작품 요청이 쇄도하자 아예 작품의 그릇을 소멸했다. 작가도 생활인이니 슬쩍 몇 점 더 찍어내도 무방할 텐데 그의 가슴 속 검(劍)은 그런 욕망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아예 욕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작업실 한편 빼곡히 쌓아 놓은 작품 재료 흑단(고가의 수입 검은 나무)은 그 끝내 내치지 못하는 욕망 덩어리다.
 

▲ 최정윤 작가의 이천 작업실 [SayArt(세이아트)]

 

"이곳에 10여 전 자리를 잡았죠. 넓은 공간이지만 이제 좁게 느껴지네요. 작품이 하나둘 공간을 차지해 더러 헛된 욕망을 꿈꾸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요."

도예가 최정윤은 왜 '개념미술'을 기치로 걸며 조각 세계로 발길을 돌렸을까. "2006년쯤 되니 도자의 표현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죠. 다양한 매체에 대한 고민이 생겼죠. 당시 해외 유수의 전시회를 보며 해외 조각가들이 선보인 작품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죠. 그동안 쌓인 답답함과 갈증이 한순간 폭발했죠."

그는 이때부터 다양한 재료에 대한 실험에 들어갔다. 나중에 실은 중요한 작품의 매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검과 꽃이 상하로 연결돼 형상화된 'The flesh of passage(시간의 살)'는 실을 주요 재료로 삼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 시리즈다. 이 작품들은 대개 긴 시간이 필요하다. 험준하고 높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숨이 턱에 차는 작업이다. 하지만 쉴 수는 없다. 여러 전문가가 그의 작품을 두고 "노동집약적인 예술"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 최정윤 작가가 K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SayArt(세이아트)]

 

그래도 그는 태연하다. "모든 것은 연결되고 쌓여가는 거죠. 매체를 바꿔 더 많은 시간과 공력이 필요하지만, 도자기를 할 때 배운 끈기가 사실 이 작업의 밑천이 됐죠"라며 웃는다.

이 시리즈는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 중독성이 있다. 상단의 검은 끝없이 이어지는 실이 촘촘히 단계적 색상을 만들며 동여 매어졌고 하단의 꽃은 여러 색의 실타래가 서로 엉키며 하나의 형태를 띤다. 권력을 상징하는 '검', 욕망을 상징하는 '꽃'의 결합은 오히려 현상세계 인간이 좇는 그 무엇에 대한 '무상함'을 이야기한다. 작품의 방점은 오방색 같은 실의 강력한 색상이다. 이런 강렬함은 관객의 시야를 단숨에 홀린다. "색채학 이론이 딱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여러 실험을 거치며 여기까지 왔어요." '인내는 쓰지만 결과는 달다'는 얘기다.

▲ 최정윤 작가의 작업실 [SayArt(세이아트)]

 

그는 작가에겐 깊은 인문학적 식견이 필요하다고 했다. 후학들에겐 귀담아 들을 경구로 들린다. 남들이 어떻게 해석하든지 작가로서 자기 작품이 품는 형이상학적 실존 의미나 가치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독서클럽에 가입해 꽤 긴 시간 책에 매달렸어요. 책 읽는 것은 하나의 습관이죠. 독서는 예술가의 기초 체력을 키우는 하나의 운동이죠."

그는 '돈오(頓悟·단박에 깨우침)는 없다'는 입장인 듯했다. 모든 일엔 된장을 삭히듯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십 년쯤 한 시리즈에 매달리니 문리(文理·세상의 이치를 앎)가 틔었어요. 서서히 차고 올랐다고 표현해야 하죠. 이젠 '속기(速技)'로 할 수 있으니 여러 면에서 유리해요. 속기는 즉흥적인 영감을 작품에 고스란히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죠. 시간이 지나니 색상도 눈에 들어왔어요. 명도와 대비 차이를 크게 줘 다양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었죠. 사실 색뿐만 아니라 조형미도 대가들의 것은 세월을 극복하는 마력이 있죠"라며 세월이 필요한 자신의 예술 방향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는 매일 차로 한 시간여를 달려 작업실 문을 연다. 매일 열 시간 이상 이어지는 고된 작업은 '중노동' 같다. 하지만 그는 가끔 자신의 작품들을 해체하는 데도 짬을 낸다. "더러 아깝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 욕심이죠." 그의 이런 행동은 불 꺼진 가마를 막 열어 도기를 부수는 도예가의 심정과 흡사하겠다.

▲ 최정윤, The flesh of passage, gallery we 2020 개관전 [작가 제공]

 

'삼족기, 각종 검시리즈' 등 그가 해온 작업의 주제는 덧없는 '권력과 욕망의 덧없음'을 경계하라는 일종의 경구다. 그는 이런 관객과의 대화는 조각의 형상 말고도 재료가 가진 속성의 역할이 크다고 한다. "언어성 있는 재료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죠. 꽃을 형상화한 실타래는 주술적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죠. 이어진 실이란 점에서 너와 내가 분리될 게 없으니 누군가의 권력이나 욕망도 큰 시야에서 보면 덧없다고 말할 수 있죠. 재미난 점은 가끔 작업 중에 생명의 DNA를 본다고 착각할 때가 있어요. 어떤 때는 혈관을 이어 생명을 만든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죠. 하지만 결국 관객과의 대화의 몫은 제가 아니라 작품 자체이죠."

그는 그동안 개인전 15차례, 단체전 250회 등 해외 유수의 아트페어에 존재감을 과시한 국제적 작가다. 그래도 그는 언제나 새로운 전시준비엔 긴장한다고 한다. 최근엔 올 7월 예정된 종합 전시회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있다고 한다.

앞으로 할 작업 이야기도 들려줬다. 출입구 밖 한편에도 쌓인 욕망 덩어리가 재료란다. 생명을 다하고 산더미처럼 웅크린 채 곰삭고 있는 포도나무다. 햇빛을 쐬고 비를 맞으며 온전한 재료가 되기 위해 건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역할을 다한 포도나무지만, 새 생명을 불어넣고 싶어요. 그냥 실을 감는 건 의미 없죠. 포도나무를 눕혀보면 세상에 없는 생명으로 보이죠. 벽이나 천장에 매달아 보면 다른 생명이 될 수도 있죠."

▲ 최정윤 'The flesh of passage' [GALLERY PALZO Daegu]

 

그는 최근 평면작업도 시작했다. 애초 회화로 미술계에 들어섰으니 어쩌면 남은 미련을 채우는 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 사정을 떠나 그의 평면작업은 조각 같은 강한 중독성이 있다. 평면이지만 색상이 주는 강렬함은 마치 그의 '트레이드 마크' 인양 그의 기존 작품 시리즈와 궤를 같이 한다. 한 번이라도 그의 작품을 본 경험이 있다면 단박에 평면 작품들이 그의 식솔들이란 걸 눈치챌 수 있다. 형태는 달라도 '씨'는 같은 셈이다.

돌연 예술은 뭐냐는 질문을 던지자, "언어다. 작품은 일종의 소통 수단이다. 아이가 '옹알이'를 시작해 말문이 터지듯 작업도 모두 이어진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작업이 쌓이면 형태를 띤 조형은 하나의 말이나 문장, 언어가 돼 관객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예술은 익어야 제맛이 난다고 했다. "시리즈 하나라도 십 년은 해야 형식이나 완성도를 갖출 수 있죠. 사람들이 좋은 작품을 왜 해체하느냐고 하지만, 부족하다면 해체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생명의 실타래를 풀어 버리는 데 왜 저라고 속이 상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오히려 실을 하나씩 풀면 막혔던 혈도 풀리고 뚫리는 느낌을 받죠. 그래야 온전한 새 생명을 낳을 수 있어요."

그는 자신은 재주가 부족하다며 낮췄다. 중학교 육상부 시절 운동이 힘들어 갈등하던 차에 "미술부에 들어오면 그림 그리러 좋은 구경도 다닌다"고 던진 친구의 얘기에 단박에 미술부원이 됐다며 애초 소질은 없다며 웃었다. 또 그는 정작 자신을 꾀어낸 친구는 미대를 졸업했지만 다른 살길을 찾았고 재주 없는 자신만 수십 년째 이 길을 걷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뼛속까지 작가다. 송경란 커미셔너는 "세계적으로 꽤 실력을 인정받은 작가지만 손에 얼마라도 생기면 좋은 재료 살 궁리에 어린 아이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예술에 입문하는 청년작가들도 그처럼 긴세월 익어가길 바란다"고 했다.

▲ 최정윤 작가의 작업실 [SayArt(세이아트)]

 

그는 경주고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 도자전공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수십 년째 국제무대를 누비고 있다. 특히 볼타쇼 바젤, 아트파리, 비엔나아트페어, 아트스테이지 싱가포르 등 중량감 있는 국제주요아트페어에서 미술비평가와 콜렉터들로부터 호평받았다.

그는 영화배우 '베티 데이비스' 같은 큰 눈을 가졌다. 앞으로 그의 눈 속엔 어떤 세상이 비칠까. 그는 그런 세상을 어떻게 다시 빚어 세상에 내어놓을까. 그는 또 어떻게 세월을 이기며 익어갈까.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