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중국 심양(瀋陽)군구 위성정보 지원받아 천안함 폭침"

김당

| 2018-08-03 07:32:44

['공작' 비화] ‘흑금성 공작원’ 박채서의 증언①…장성택 사후에 지어냈다?

 

▲ 김당 기자가 펴낸 <공작2>(이룸나무 출판사)

기자가 최근에 펴낸 〈공작〉과 〈공작2〉(이룸나무)에 실린 천안함 폭침과 관련된 ‘흑금성 공작원’ 박채서씨의 증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장성택 전 북한 노동당 행정부장으로부터 들었다는 박채서씨의 증언이 장성택 사후에 지어낸 것 아니냐는 의혹이 그것이다. 

 

기자는 책에 이렇게 썼다.

“박 선생,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 잠수함이 천안함이 어디 있는지 어케 알고 어뢰 한 방으로 폭침시킨단 말이요? 중국 심양(瀋陽) 군구의 정보 지원 없이 우리 해군의 전력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공작2〉, 456쪽)

인용문의 박 선생은 박채서씨이고, 박 선생에게 이 말을 한 사람은 장성택이다.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여 뒤인 2010년 5월 3~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기간에 장성택이 베이징의 ‘중국대반점’에서 박채서에게 들려준 말이다. 장성택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지도까지 그려가며 박채서씨에게 이렇게 상황을 설명했다.

“박 선생, 천안함이 피격을 받은 시각이 밤 9시 22분경이에요. 천안함은 그때 칠흑 같이 어두운 시각에 백령도 부근 1.8km 지점에 정박중이었어요. 그런데 우리 해군의 능력으로는 백령도 뒤편에 바짝 붙어서 은폐하고 있는 선박을 야간에 공격할 방법이 없어요.
내래 물어보니 잠수함도 지휘본부의 유도없이 야간에 물체를 식별해 공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잠수함 작전을 하려면 군사첩보위성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박 선생도 알다시피 우리가 남조선처럼 정보 수집기가 있습니까, 첩보위성이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오래 전부터 중국 군부로부터 위성정보를 제공받아 군사 작전계획에 활용하고 있습니다.”(〈공작2〉, 457쪽)


박채서씨는 동명의 논픽션과 영화로 동시에 선보인 〈공작〉의 실제 모델이다. 박씨는 1990년대 국군 정보사 대북공작단 공작관(육군 소령)과 국가안전기획부 특수공작원(정보서기관) 시절에 북한에 침투할 수 있는 접촉점을 만들기 위해 중국산 농산물을 북한산으로 ‘포대갈이’해 수입하는 사업을 통해 공작 여건을 조성했다.

8일에 개봉되는 영화 〈공작〉에도 나오지만, 박씨는 당시 북한 정권의 실세인 장성택의 조카이자 장씨의 친형인 장성우의 아들인 장현철과 접촉점을 만들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안전보위성)에 침투했다. 이후 국정원에서 해직되어 공작원을 그만둔 뒤에도 박채서는 장성택과 비밀 채널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북한 군부에 영향력이 큰 장씨 형제의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북한 내 온건파는 이명박 정부 출범후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대화 채널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후 2009년 10월 임태희 노동부장관–김양건 노동당 통전부장 간에 싱가폴 비밀회담이 성사되었으나, 남측이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자 온건파의 입지가 축소되고 강경파가 목소리가 커지는 구실만 제공했다. 이를 계기로 북한 내부에서는 대남 온건파들의 숙청이 시작되었고, 한국 언론에서도 북한 내부의 숙청 움직임에 대해 비중 있게 보도하기 시작했다.

위기 의식을 느낀 장성택은 2010년 초에 박채서씨의 오랜 북측 파트너였던 리철(가명 리호남, 리철운)과 자신의 비서를 박씨에게 보내 남북한 정세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자 당시 베이징과 서울집을 오가며 사업을 하던 박채서씨는 그해 1월 10일과 2월의 설 연휴에 귀국했을 때 기자와 만나 세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전했다.

천안함 사건이 터진 뒤에 기자는 북한 군부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한 그의 메시지가 현실로 나타났음을 직감했다. 기자는 2010년 10~11월 “'흑금성' 박채서는 간첩인가”라는 제목의 탐사보도를 통해 그가 전했던 메시지를 뒤늦게 보도했다.

 

▲ 국가안전기획부 대북공작국(203실) 소속 특수공작원(암호명 흑금성) 시절에 비밀방북한 박채서씨 [사진=박채서 제공]



“세 번째 메시지는 당(통전부) 우선이었던 대남 공작라인이 군부 중심으로 재편되 어 호전적인 군부가 전면에 나서게 된 바람에 한반도의 전쟁 위험지수가 높아졌다는 우려였다. 즉, 노동당 소속이었던 작전부와 35호실, 그리고 인민무력부 소속의 정찰국을 통합해 정찰총국으로 확대 개편되어 김영철 상장이 '인민군 정찰총국 총국장'에 임명됨으로써 대남공작의 전면에 군부가 나설 것을 우려했다. 김영철은 2008년 12월 개성공단 입주업체 대표 150명을 불러모아 공단 폐쇄를 위협했던 인물이다



기존의 대남 공작활동은 노동당과 군부로 분리돼 있었다. 당 작전부는 공작원 기본 교육훈련과 침투 호송 및 안내 등을 맡아왔다. 노동당 35호실은 대남 정보 수집을 담당하면서 남한 및 해외에서의 테러 공작을 감행하기도 했다. 군 총참모부 소속 대남기구인 정찰국은 간첩 양성과 남파를 임무로 하면서 요인 납치 및 암살과 전략시설 정찰 등을 수행했다. 그런데 이 셋을 통합해 대남 공작활동 전면에 군부를 내세워 단선적 대남공작 지휘체계를 수립한 것은 그만큼 신속 강력하면서도 보안이 유지되는 대남공작이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사관학교 졸업후 국군 정보사 대북공작관으로 근무하다가 소령으로 예편한 뒤에 직접 국가정보기관의 공작원으로 북한에 침투해 활동한 그로서는 직감적으로 도발징후를 느꼈음 직했다. 그는 우리 정부와 군의 고위층에게도 북한 군부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천안함 침몰 사건'(3월 26일)이 발생했다.” ('흑금성' 박채서는 간첩인가②, 〈오마이뉴스〉 2010. 11. 2)


박채서씨는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고 두 달여 뒤인 6월 1일 새벽 국정원 안보수사국 수사관들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긴급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기자도 당시 박채서씨의 국가보안법 위반혐의와 관련해 국정원 안보수사국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기자는 이후 구치소에 수감중인 박씨를 직접 면회하거나 가족의 면회를 통해 몇 가지 사실을 추가 확인해 앞서의 탐사보도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것이다.

8년 전 기사를 새삼 인용한 까닭은 장성택으로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들은 박씨가 기자에게 북한 군부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한 시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2010년 당시는 장성택 부장이 북한 정권의 실세로 건재할 때였다. 장성택은 2013년 12월 '국가전복 음모'라는 명목상의 죄목으로 총살형에 처해졌다. 장성택이 죽은 뒤에 박씨가 장성택의 천안함 관련 발언을 지어냈을 것이라는 의심은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계속해서 ‘흑금성 공작원’ 박채서의 증언②…장성택과의 관계 편이 이어집니다)

 

KPI뉴스 / 김당 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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