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잭슨홀 미팅과 여백의 정책

UPI뉴스

go@kpinews.kr | 2023-08-29 10:51:08

제롬 파월의 잭슨홀 미팅 발언, 격변기 지나 여백의 정책 시사하나
통화정책 프레임워크 성찰과 지적 모델·제도 업데이트·재충전 시점
인식·지식의 한계는 숙명···과다확신보다 필요덕목 역량 제고해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의 8월 25일 잭슨홀 미팅 발언은 이전 두 해 잭슨홀 발언에 비해 신중하고 여백이 있어 보인다. 인플레이션이 아직 높은 가운데 통화정책이 너무 적거나 너무 많게 긴축으로 갈 경우의 양방향 리스크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경계했다. 

1년 전 잭슨홀에서 한쪽 방향으로 쏠린 예상을 넘는 강력한 통화긴축 메시지를 던져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동요했던 기억에 비해 확연한 차이가 있다. 2년 전 잭슨홀에서는 이와 정반대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일시적일 뿐이라고 단언했던 모습과도 크게 대비된다. 

지난 2년 간 양극단을 오갔다가 균형을 찾아가는 듯한 발언은 통화정책이 그만큼 격변기를 지나왔음을 말해준다. 아울러 정책결정자들이 본연적으로 직면하는 인식·지식의 한계도 말해주는 듯하다. 

정책결정자들은 임박한 정책을 알리는 시그널을 줄 수도 있고 즉각적인 정책을 명확히 시사하기보다 경제상황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방법으로 시그널을 줄 수도 있다. 파월 의장의 금번 잭슨홀 발언이 후자에 가까운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이전 두 차례의 발언은 전자에 가까운 커뮤니케이션이었다고 하겠다. 

1년 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에 수반할 것으로 강조했던 고통은 견실한 성장과 높은 고용을 보여주는 총량지표 측면에서 실현되지 않았고 2년 전 일시적이라고 단언했던 인플레이션은 이후 상당 기간 크게 치솟았다. 두 차례에 걸친 전자의 커뮤니케이션이 과다확신 오류(hubris bias)의 반향을 보인 것이라면 후자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취한 금번 잭슨홀 발언은 인식·지식의 한계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함께 여백의 정책을 시사하고 있는 것인가.

브라운대 가우티 에거슨과 브루킹스연구소 도널드 콘(연준 부의장 역임)이 때마침 발표한 연구논문(The Inflation Surge of the 2020s: The Role of Monetary Policy)은 연준의 통화정책 전략에 대한 시의성 있는 평가와 제언을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연준은 3년 전인 2020년 8월 새로이 도입한 통화정책 프레임워크로 정책을 운영해 왔다. 이 프레임워크는 2012년 제정 이후 유지된 종전 프레임워크에서 물가 다음에 있던 고용목표를 순서를 바꾸어 맨 앞으로 위치시켰다. 그리고 완전고용이 광범위하고 포용적인 목표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정책결정을 위한 평가기준을 종전 완전고용으로부터의 편차(deviations)에서 부족(shortfalls)으로 변경했다. 이는 완전고용을 넘어서더라도 지나친 물가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긴축적 정책대응을 자제할 것을 시사한 것이다. 

또 기존의 대칭적 물가목표제에서 유연한 형태의 신축적 평균물가목표제(Flexible Average Inflation Targeting)로 변경했다. 저자들은 논문에서 이 프레임워크가 인플레이션 상승 편향을 유발하여 이후 인플레이션 급등기에 연준의 정책대응을 지연시키는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았다. 물가목표수준을 하회하는 저물가 시대에 유효한 프레임워크의 정책대응이 2020년 이후 전개된 경제 상황에는 부적합했다고 판단했다. 

설상가상으로 최대고용 수준이 달성될 때까지 금리를 제로수준에서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연준의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 즉 사전적 정책방향 제시는 이 프레임워크에 내재된 인플레이션 편향을 증폭시켰다고 보았다. 연준이 좀더 빨리 움직였다면 인플레이션이 그렇게 크게 높아지지 않았을 것이고 이후 금리를 보다 점진적으로 인상할 수 있었을 것으로 평가했다. 

향후 통화정책 프레임워크는 인플레이션 경로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 검토, 비대칭적 정책대응에 따른 비용·편익 분석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포워드 가이던스가 금리 기대의 유효성을 다소 떨어뜨리더라도 좋은 정책 결정에 필수적인 민첩성과 신축성을 높일 것을 권고했다.

잭슨홀 미팅과 브라운대·브루킹스연구소 논문이 함축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통화정책 프레임워크와 근본적으로 그 기저에 흐르는 지적, 경험적 접근방법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기에 와 있다는 점일 것이다. 지적 모델을 돌아보며 통화정책 프레임워크를 업데이트하고 재충전할 때가 된 것이다. 

거시경제 전망은 백미러를 통해 보면서 앞으로 달리는 것에 비유되기도 한다. 과거가 미래에 대한 신뢰할만한 가이드가 되는 경향이 있으나 경제가 구조적 변동을 겪을 때는 경제동학이 바뀔 수 있고 전망 실패가 초래될 수 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통화이론·정책 부문에서 일하는 중앙은행 이코노미스트들이 집합적으로 기술적 모델링과 데이터 수집 기술 등에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불확실성과 추측 작업이 아직 연준에서의 의사결정을 특징짓는다고 토로한 바 있다.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불확실성은 비상한 시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안정기(great moderation)를 포함한 평온한 시기에도 상존한다고 말했다. 

제롬 파월 의장은 좋은 결정은 좋은 데이터를 요구하지만 갖고 있는 데이터는 원하는 만큼 좋지 않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의 성찰은 정책결정과정, 정책 프레임워크와 목표 설정, 정책결정기구 구성원의 인식 다양성(cognitive diversity) 문제 등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통화정책의 유례없는 역사를 쓰면서도 중앙은행의 제도적 토대에 관한 근본적 질문들을 간과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이에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단독으로 또는 그룹으로 취약한 결정을 하게 되지 않도록 어떤 제도가 인식·지식의 한계 문제에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021~2022년중 16회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행사된 총 174개 표결권 중 반대표는 2개에 불과했다. 갑작스런 정책 선회 등으로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정책 유효성을 흔든 경험 등은 집단사고의 위험을 깨닫게 한다. 과도한 컨센서스를 유도하는 의사결정과정이 다수의견에 효과적으로 이의제기할 수 있는 충분한 여백을 허용하는지 여부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책 재량과 정책 판단의 폭이 큰 제도적 환경일수록 필요한 덕목은 과다확신보다 역량 제고가 되어야 한다. 다가올 수년, 수십년의 불가피하게 복잡하고 진화하는 도전들에 대응해 나가는 노력과 개혁,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넓은 시야를 지닌 여백의 정책을 더 준비할 시점이다.

▲ 조홍균 논설위원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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