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하는 '호반건설'식 편법승계

김기성

bigpen@kpinews.kr | 2023-08-09 13:31:23

호반건설, 아들 회사 키워 합병 통해 승계…증여세 한푼 안내 
KPX그룹, 일감몰아주기로 성장한 아들 회사가 父 지분 매입
한국카본, 합병으로 아들 2대주주 등극 예정…편법승계 구도

호반건설이 지난 6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60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을 때,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과징금 규모도 관심을 끌었지만 그것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13조 원이 넘는 호반건설을 증여세 한 푼 물지 않고 아들에게 승계한 것이었다. 

김상열 호반건설 창업주는 벌떼입찰이라는 편법적인 방법으로 공공택지를 낙찰 받아 장남 김대헌의 호반주택건설에 넘겼고 김대헌 사장은 이 땅을 바탕으로 돈을 벌었다. 그리고는 아버지 회사인 호반건설과 합병을 통해 호반건설의 지분 54.7%를 보유하는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 서울 서초구 호반건설 본사. [뉴시스] 

아들 회사가 돈을 벌게 해줬다는 점에서 일감몰아주기와 비슷하지만 공공택지를 넘겨받아 아파트 등을 지어 돈을 버는 과정에 아들 김대헌 사장의 경영능력과 운(運)도 따랐다는 점에서 일감몰아주기와는 다르다고 항변할 만하다. 그러나 일반인 눈에 보기에는 법에 정한 정당한 세금을 물지 않고 승계가 이뤄졌으니 편법상속임이 분명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아들 회사가 일감몰아주기 등으로 돈을 벌게 한 뒤 아버지 회사를 합병하거나 아버지 회사의 지분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증여세나 상속세를 피해가는 편법 승계가 확산하고 있다.

KPX그룹, 창업주 지분 매각으로 최대주주 변경

우리나라 중견화학 그룹으로 KPX그룹이 있다. 1980년 대 공중 분해된 국제그룹의 계열사였던 진양화학이 그룹의 모태가 되는 회사다. 고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의 동생인 양규모 회장이 1974년 국제그룹에서 독립해 지금의 KPX그룹으로 키웠다. 그런데 최근 양규모 창업회장이 KPX그룹의 지주사인 KPX홀딩스의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편법승계의 문제가 불거졌다. 

양규모 창업주는 KPX홀딩스의 지분 16.62%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그런데 지난 4월과 5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보유지분을 블록딜 방식으로 씨케이엔터프라이즈라는 회사로 넘겼다. 4월 13일 12만7000주, 5월 26일 31만8906주, 5월 31일 8만5294주를 시간외거래를 통해 씨케이엔터프라이즈에게 넘긴 것이다. 이에 따라 양규모 회장의 지분은 4.04%로 떨어졌고 씨케이엔터프라이즈의 지분은 기존 11.2%에서 23.86%로 단숨에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KPX그룹의 새 최대주주는 '아들 회사', 일감몰아주기로 성장

문제는 씨케이엔터프라이즈가 양규모 창업주의 장남인 KPX그룹 양준영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개인회사라는 데 있다. 양규모 창업주는 지분을 씨케이엔터프라즈라는 회사에 팔았지만 실제로는 아들인 양준영 회장에게 회사를 승계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씨케이엔터프라이즈가 KPX홀딩스의 지분을 사들인 자금이 일감몰아주기로 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편법승계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부동산 임대업으로 시작한 씨케이엔터프라이즈는 2011년만 하더라도 매출이 3억 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이후 KPX그룹 계열사인 진양산업과 KPX케미칼로부터 일감을 집중적으로 수주해 회사를 키웠다. 단순한 일감몰아주기에서 한술 더 떠, 원재료에 막대한 이윤을 붙여 계열사에 넘기는 일종의 통행세 방식으로 몸집을 키운 것이다.

이러한 불공정행위는 공정위에 적발돼 지난 2021년 진양산업은 13억6200만 원, 씨케이엔터프라이즈는 2억73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그러나 이렇게 번 돈으로 KPX홀딩스의 지분을 인수해 승계를 마무리 지었으니, 양 회장 일가로 봐서는 상속세나 증여세보다 '싸게 치인 셈'이다.

한국카본, 합병 통해 아들이 2대 주주로 등극 예정

비슷한 편법승계의 사례는 친환경 복합소재 기업인 한국 카본에서도 연출되고 있다. 한국카본은 조문수 회장이 지분 17.94%로 최대주주이다. 그런데 지난달 14일 유리섬유 등을 만드는 한국신소재를 합병한다고 발표했다. 합병기준일은 9월 30일이고 한국신소재 주주는 40주당 한국카본 주식 1주를 배정받게 된다. 

그런데 한국신소재는 조문수 회장의 이들인 조연호 한국카본 실장이 지분 70%를 보유한 가족회사다. 합병이 마무리되면 조문수 회장의 지분은 15.19%로 낮아지고 아들 조연호 실장은 13.86%를 보유한 압도적 2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승계의 틀을 다지게 된다.

더구나 한국신소재도 매출의 50%정도를 한국카본에 의존하고 있어서 일감몰아주기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카본의 주요 제품인 LNG선의 보냉재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한국신소재가 만드는 유리섬유 직물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 회사(한국카본)가 만들 수 있는 품목(유리섬유 직물)을 아들 회사(한국신소재)가 만들게 해서 돈을 벌게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아들 회사의 덩치를 키워 아버지 화사와 합병해 승계의 구도를 짜는 것은 편법승계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상속세 경감방안과는 별개로 편법승계는 철저히 차단해야

가업승계와 관련한 우리나라의 상속세가 너무 과중하다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경영권이 수반되는 상속에는 최대 60%라는 세금이 부과돼 2대만 내려가면 가업 승계가 불가능하다는 산술적 계산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상속을 앞둔 중견 기업 주변에는 편법적인 방법으로 세금을 줄여주겠다는 자칭 전문가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상속세가 과중하다는 것과 편법 승계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가업승계에 대한 세금 경감은 사회적 차원에서 시급히 논의돼야 하겠지만 편법승계는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곧이곧대로 세금을 내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바보 취급받는 것은 결코 공정하거나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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