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위증 제안에 가짜 차용증'…황당한 건설노조 횡령 재판

전혁수

jhs@kpinews.kr | 2023-06-26 11:02:55

진병준 전 위원장 변호사, 증인에 "유리한 증언 해달라"
노조간부 거절에 "증인 불출석 가능하냐" 요구해 논란
법조계 "변호사 위증·불출석 요구, 변협 징계받을 사안"
진씨 지인도 위증 '가짜 차용증' 들통… 경찰 수사 나서

노조비 8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진병준 전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건설노조) 위원장 재판에서 피고인의 변호사와 지인이 각각 증인에게 위증·불출석을 요구하고 직접 위증하는 등 부적절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진 전 위원장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진 씨 범행이 드러나면서 건설노조는 지난해 7월 한국노총에서 공식 제명됐다.

26일 UPI뉴스 취재 결과, 진 씨는 1심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를 통해 노조 사무처 간부들에게 '노조 운영 권한 이양'을 조건으로 위증·증인 재판 불출석을 제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진씨 횡령을 도왔던 다른 간부는 재판에서 위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간부는 현재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 진병준 전 전국건설산업노조위원장(오른쪽)이 지난해 6월 13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대전지법 천안지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유리한 증언 해주면 노조 운영권 넘겨주겠다" 거래 시도

건설노조는 지난해 6월 사무처 간부들 폭로로 진씨가 구속되면서 혼란에 휩싸였다. 그런데도 진씨는 위원장직을 내려놓지 않았다. 되레 횡령 의혹을 제기한 간부들을 업무에서 배제했고 자신의 아들에게 노조 계좌 통장을 넘겼다. 간부들은 진씨에게 직무대리 선임과 통장 회수를 요구했다. 

양측 갈등 넉달 뒤인 10월 25일 간부들은 진씨 변호를 맡고 있는 A변호사를 만났다. 위원장 직무대행인 윤삼명 수석부위원장 측으로부터 진씨 측이 화해를 원한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그러나 회동 자리에서 A변호사는 화해가 아닌 거래를 시도했다. 간부들이 진씨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주면, 진씨가 노조 운영 권한을 넘기겠다는 게 골자였다. 

핵심 증인인 간부 B씨 증인 출석이 불과 12일 남은 시점이었다. UPI뉴스는 당시 대화가 담긴 녹음파일을 입수했다.

A변호사(진병준 전 위원장 대리인) : 묻고 싶은 건 (유리한 증언이)가능하냐는 거예요.

B씨(노조 간부) : 아니 일을 하나도 안 했는데 어떻게 쉴드(방어)를 치냐고요.


A변호사 : 그러니까 저희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이런 어떠한 항목에서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부분에서 유리한 증언 정도 해주시면 되는 것이지, 이걸 뒤집고 거짓말 해달라 이런 정도는 아닙니다.

B씨 : 거짓말이…. 제가 아는 것과 다르게 (진술하는 것이) 거짓말 아니에요?

B씨는 A변호사 요구를 거절했다. 자신은 수사기관에서 사실대로 말했고 법정에서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자 A변호사는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을 번복해도 판사나 검사가 어쩔 수 없을 것이라며 B씨를 설득했다.

이를 위해 '수사 검사가 아니라 공판 검사'라는 이유를 들었다.

B씨 : (법정에서)얘기 해야죠, 당연히. 제가 이미 진술을 (수사기관에서)한 건데.

A변호사 : 모든 조서를 저희가 부인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 재판의 증거로 하나도 채택이 안 됐어요. 그래서 지금 나와서 법정에서 하시는 말만 판사가 볼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증언을)새로 하면 돼요. 지금 수사기관에서 경찰 6번인가 받으신 것 같은데.

B씨 : 변호사님, 그렇게 하면 검사가 가만히 있겠어요?

(중략)

A변호사 : 지금 얘(검사)는 수사검사가 아니라 공판하는 애잖아요. 새로 다시 수사를 할 수 없는 애에요, 얘가.

▲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뉴시스]

거짓 증언 요구 거절하자 "증인 불출석 가능하냐" 제안


B씨가 완강하자 A변호사는 위증 대신 재판 불출석을 제안했다.

진씨는 지난해 6월 13일 구속됐다. B씨 증인 출석 예정일은 그해 11월 7일이었다.

B씨가 증인 출석을 미룰 경우 진씨는 구속기간 만료로 불구속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A변호사 : 그러면 불출석은요? 불출석 가능하신가요? 혹시 한 두어 번 안 오시기.
(중략)

A변호사 : 한두 분(간부들) 지금 어차피 곧 (재판에)나오셔야 되는데 시간은 다 괜찮으세요? 그날 오시는 거 상관없으세요?

B씨 : 네

A변호사 : 11월에는 어차피 지금 증인 신문이 예정돼 있긴 한데요. 한두 번만 어디 좀 바쁘시면 안 돼요?


A변호사는 진씨 지시를 받고 간부들에게 거래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B씨가 "위원장이 변호사님 잘 구했다"고 하자 A변호사는 "그냥 이 분(진씨)의 말씀을 전한 것뿐"이라고 했다.

간부들은 지난해 10월 A변호사와 나눈 대화 녹음파일을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진씨)은 사건이 터지자 허위 증빙 서류를 제출하고 증인 회유 또는 불출석을 종용하는 등 죄책이 매우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A변호사 행동은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징계사유에 해당된다는 게 법조계 해석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위증교사죄는 예비음모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 법적 처벌은 불가능하다"면서도 "하지만 형사 처벌과 별도로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변협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서초동 변호사도 "위증교사죄는 실제 위증이 이뤄지지 않아 성립되지 않는다"면서도 "형사상 처벌받을 행위인지 여부를 떠나 변호사로서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기 때문에 변협에 민원을 넣으면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A변호사는 증인에게 위증·불출석을 제안했다는 의혹에 대한 반론을 UPI뉴스 취재진이 요청하자 재판부에 낸 의견서를 보내왔다. 그는 의견서에서 "위 관련자들(간부들)은 적법한 직무대행(윤삼명)의 자택을 수소문해서 가족들이 있는 문 앞까지 찾아와 사퇴할 것을 종용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게재한 집회를 계속 이어가자 직무대행은 본 변호인에게 분쟁 해결을 요청했다"며 "변호인이 먼저 재판 증인을 수소문한 것이 아니라 내홍이 심화된 분쟁 상황 중에 적법한 대표자(직무대행)의 요청으로 중재를 위해 만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즉, 위 만남의 목적은 건설산업노동조합의 모든 분쟁 해결을 위한 것"이라며 "대화 중 이 사건 재판 내용도 있었지만, 본인이 알고 있는 유리하나 사실 또는 수사 당시 화가 나서 과장하여 진술한 사실을 지적해달라는 것이고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진병준 지인도 위증…들통난 '가짜 차용증'

재판 과정에서 진씨의 지인 C씨가 위증한 정황도 확인됐다. C씨는 전국섬유유통노련 모 지역 본부장으로 건설노조 지도위원이었다.

진씨는 2020년 5월 29일 건설노조 회계부장을 시켜 노조 통장에서 C씨에게 4600만 원을 송금했다. C씨는 4일 후인 2020년 6월 2일 진씨 아들에게 4600만 원을 보냈다. 노조 공금이 C씨를 통해 아무런 이유 없이 진씨 가족에게 전달된 것이다. 사실이라면 공금 횡령이다.

C씨는 지난해 9월 재판에서 노조 돈을 송금받은 것에 대해 "빌려준 돈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9년 2월 18일 C씨가 건설노조에 6240만 원을 빌려줬다는 내용이 담긴 차용증이 증거로 제출됐다.

그러나 차용증은 가짜였다. 2009년도 작성된 차용증에 기재된 C씨의 휴대전화 번호가 C씨가 2015년 1월 가입한 번호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21일 1심 선고에서 진씨가 C씨에게 전달한 것을 '차입금 반환 명목 횡령'이라고 판단했다. C씨가 법정에서 위증했다는 것이다.

▲ 진병준 전 전국건설산업노조위원장과 그의 지인 C씨 사이에 채무관계가 있다고 적혀있는 2009년 2월 18일자 차용증서. 그러나 빨간 네모 부분의 전화번호는 C씨가 2015년 1월부터 사용한 전화번호였다. [건설노조 제공]

경찰은 C씨의 위증 혐의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C씨는 법정 위증에 대한 UPI뉴스 취재진 질문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즉답을 피했다.

KPI뉴스 / 탐사보도부 전혁수 기자 jhs@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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