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 또 사법 리스크?

김기성

bigpen@kpinews.kr | 2023-04-19 14:17:00

시민단체, 골프회원권 강매 관련 배임 혐의 검찰 고발
황제 보석, 김치·와인 강매 이어 끊이지 않는 논란
독단적 의사결정 폐해…창업주의 정도경영 이어가야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이 꾸는 대표적인 악몽이 다시 징집되는 꿈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한 악몽이 있다. 바로 감방에 갔다 온 전력이 있는 재벌 총수가 다시 구속되는 꿈일 것이다. 그런 악몽에 시달릴 사람이 생겼다. 바로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이다.

이번에는 자신이 실소유주인 골프장 회원권을 계열사 협력업체에 강매하고 그 대가로 장기계약과 독점 공급 등의 이익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금융정의연대와 경제민주화시민연대 등 8개 시민단체가 이 전 회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 참여연대,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회원들이 지난 17일 서울중앙지검에서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 등 일가 배임혐의 검찰 고발 노동시민사회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고발장을 제출하기 위해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시민단체 "협력사에 계약 보장하고 골프장 회원권 강매"

문제가 된 골프장은 2011년 개장한 27홀짜리 회원제 골프장인 휘슬링락CC다. 전체 252개 회원권 계좌 가운데 79개(31.35%), 금액으로는 1011억 원어치가 태광그룹 계열사와 관계를 맺고 있는 협력업체들이 가입한 것이라고 시민단체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흥국생명을 포함해 태광그룹 계열사 9곳에 가구와 컴퓨터 등의 물품을 공급하거나 여행이나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로 밝혀졌다. 

문제는 회원권을 매입한 대가로 장기간 계약을 보장하는 업무협약서를 체결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가구업체의 경우 연평균 15억 원 규모로 물품을 발주하고 6년간 독점 공급을 보장하며 부족하면 보전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됐다고 한다.

시민단체들은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골프장 회원권을 구매한 대가로 상당한 이익을 보전해 주고 손해를 감수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전 회장 일가에게 사익편취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며, 배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광그룹 "강매한 적 없고, 이 전 회장과는 무관한 사안"

이에 대해 태광그룹은 시민단체의 주장이 악의적 제보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계열사와 협력사 간의 업무협약은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또 회원권 입회금은 일종의 보증금이라서 탈퇴하면 그대로 반환되는 금액이기 때문에 강매하고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만약 부당한 업무협약이라면 협력사가 골프장 회원에서 탈퇴하면 계약을 취소하는 등의 부당한 대우를 했겠지만, 그런 경우가 없다고 강변했다.

더구나 이 전 회장은 2012년 2월 그룹 내 모든 직위에서 물러난 이후 현재까지 그룹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면서 골프장 회원권은 이 전 회장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발인들이 계열사들에 손해를 입혔다면서 업무상 배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고, 이 전 회장과 그룹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태광그룹, 끊이지 않는 논란에 편한 날 없어

시민단체들이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검찰에 고발했으니 시시비비는 검찰 수사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 재벌 그룹들은 대부분 골프장 한두 개는 보유하고 있고 일부 골프장의 회원 모집과정에 그룹의 계열사가 동원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유독 태광그룹의 골프장이 문제가 되는 것은 휘슬링락CC가 이 전 회장의 개인 소유라는 점, 그리고 이 전 회장과 관련한 여러 잡음이 대중의 기억에 깊게 각인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황제 보석 논란이다. 이 전 회장은 2019년 6월 배임 횡령에 징역 3년, 조세포탈에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최초 구속된 이후 8년간 이어진 재판 과정에서 황제 보석 논란이 불거졌다. 간암에 걸려 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보석 상태가 됐는데, 보석 중인 이 전 회장이 술집을 다니는 등의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폭로가 정치권과 언론에서 제기된 것이다.

이 전 회장은 결국 병보석이 취소돼 재수감돼 2021년 10월 만기 출소했다. 황제 보석 사건은 국회에서 병보석 기준을 강화하는 '이호진 방지법'이 발의될 정도로 파문을 일으켰다.

태광그룹을 둘러싼 각종 비리 논란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자주 불거졌다. 황제 보석 논란이 뜨거웠던 2018년 당시 정관계 고위직에 대해 골프 접대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2019년에는 이 전 회장을 비롯한 일가가 소유한 회사가 계열사에 김치와 와인을 강매했다는 공정위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이 사건은 지난달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이 전 회장이 강매에 개입한 것으로 판명됐다.

이밖에도 계열사 티브로드의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20년 가까이 이어졌고 작년에는 흥국생명이 영구채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자금시장을 경색시키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주요 포털에는 태광그룹의 논란과 사건 사고가 따로 분류될 정도다. 

논란 만들어내는 독단적 의사결정 구조

재계에서는 태광그룹이 각종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 대해 의사결정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일반적인 회사 조직이라면 문제가 된 사안들이 실무진의 검토과정에서 걸러졌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김치나 와인, 골프장 회원권 강매 같은 것들은 조금의 법률적 지식만 있어도 제재 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재벌인 태광그룹에서 실행됐다는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따라서 이 전 회장이나 아니면 그룹의 실세 누군가가 그룹의 주요 사안을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실무진이나 주변 사람들은 의견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분위기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태광그룹의 창업주 고 이임용 회장은 재계에서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만큼이나 근검절약하고 소탈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당시 야당 정치인인 이기택 의원이 처남이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 세무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정도경영으로 위기를 돌파한 것은 유명한 얘기다.

태광그룹이 창업주 정신을 되살려 정도경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태광그룹 전반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에 이호진 전 회장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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