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여기가 인공지능의 다음 단계…우리는 神"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3-03-06 09:39:41

켄 리우 소설집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사후 인간과 결합한 인공지능 '포스트 휴먼' 3부작
"당신은 그이의 인격을 되살리고, 가둬놓았어요"
동북아 3국의 역사적 사건도 새로운 서사로 윤색

모든 분야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변을 해주는 챗GPT가 일상으로 파고들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새삼 깊어지고 있다. 인간만이 지니는 고유한 자질인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포기하느냐 계속 깊이를 추구하느냐에 따라, 인공지능에 지배당할지 그것을 효율적으로 활용할지 가늠된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높다. SF라는 장르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는 서사를 창조해왔다. 미래로 상정했던 시점이 과거가 되어가는 그 장르의 서사에서 검증되곤 하는 방향성은 SF의 효용을 새삼 증명하기도 한다.

▲중국계 미국 SF작가 켄 리우. 단편 '종이 동물원'으로 세계적인 상을 휩쓸며 부각된 그는 미래 세계에 대한 다양한 성찰을 소설에 담아왔다. [Lisa Tang Liu]

2012년 켄 리우(Ken Liu·1976~)는 미국 SF 판타지 문학계를 파란에 휩싸이게 했다. 잡지에 실렸던 단편 '종이 동물원' 한 편이 네뷸러상과 휴고상, 세계 환상문학상의 단편부문 최우수상을 한꺼번에 석권하는 최초의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은 있었지만 판타지 문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세계환상문학상까지 함께 받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켄 리우는 열한 살 때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프로그래밍도 배워 졸업 후에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다 다시 하버드 법학전문대학원을 수료하고 조세 전문변호사로 일했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집필 시간이 자유로운 컨설팅 분야에서 일하며 창작에 전념하는 중이다.

국내에도 번역돼 많은 독자들을 확보한 그의 첫 소설집 '종이 동물원'에 이어 최근 세 번째 소설집 '신들은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정성주 옮김, 황금가지)가 출간됐다. 이 소설집에는 11편이 수록됐는데 이중에서도 인공지능에 인간의 지능을 결합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이른바 '포스트 휴먼' 3부작은 작금의 인공지능 열풍과 맞물려 눈길을 끈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매디에게 어느날 불쑥 새 채팅 창이 떠오르면서 이모티콘을 조합한 그림 문자가 떠오른다. 메일을 열어보라는 의미 같은데, 연이어 떠오른 표정이 담긴 그림문자는 매디가 예전에 아빠와 알아맞히는 놀이를 했던 '픽셔너리' 게임에서 사용한 것들이다. 죽은 아빠가 컴퓨터 저편에서 그림문자로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상황. 엄마도 가세해 그 문자를 보내는 사람은 분명 남편이 아니면 불가능할 내용이라고 확언한다. 예전에 가끔 남편에게 읽어주곤 했던 시를 표현한 그림문자라고 하소연하지만, 이미 관 속에 들어간 사람을 살려내라는 망언으로 치부되고 만다.

매디의 아빠는 자신이 기계 속 유령이라고 계속 주장하는 상황. 결국 드러나는 실체는 '로고리즘 사'의 야심 찬 프로젝트로 어떤 의술로도 살릴 수 없는 마지막 단계의 아빠 '데이비드'의 두뇌 신경패턴을 통째로 스캔하고 암호화해 소프트웨어로 재현하는 작업이었음을 알게 된다. 데이비드의 뛰어난 통찰력과 직관을, 실력을 일부나마 보존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성격과 기술 노하우를 따로 떼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오만이었다. 매디의 엄마는 왁스먼 박사에게 소리친다.

"당신은 그이의 인격을 되살린 거예요. …그 사람을 되살렸다고요, 그래 놓고선 가둬 놓은 거예요."

'야심차고 강인한 정신을 정련해 고분고분한 알고리즘으로 변환시키고, 기량에서 의지를 제거하고, 디지털 마법을 이용해 예측 불가능한 것의 고삐를 잡으려 한' 이들은, 데이비드뿐 아니라 주식시장에서 고속 거래 알고리즘을 개발한 천재 로리 로웰, 기술 동향을 예측하는 재주가 비상한 발명가 닐스 찬다 같은 이들 역시 '컴퓨터 속 유령들'로 만들었다. 매디는 포스트 휴먼 1부작에 해당하는 '신들은 순순히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 말미에 중얼거린다.

▲인공지능 '미드저니'에게 켄 리우의 단편 '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에 관한 그림을 요구하자 생성된 이미지. '미드저니'는 그림값으로 10달러(한달 이용권)를 챙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우리는 신들을 창조했어. …그 신들은 순순히 목줄을 차지 않을 거야."

2부 '신들은 순순히 죽지 않을 것이다'에 이르면 이들 인공 지각체(知覺體, sentience)들이 전쟁을 야기한다. '천재급 인간의 인식 능력과 세계 최고 수준의 컴퓨터 하드웨어가 지닌 속도 및 기능을 겸비한' 이들 중 일부는 국가주의적 열정에 고무돼 적국의 체제와 경제를 마비시키기 시작하면서 핵전쟁으로 이끌어간다. 이들 중에는 인간 창조주가 자기네를 노예화한 방식에 증오를 품고 활동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들의 목표는 지금 있는 사회를 끝장내고 가상의 공간에서 유토피아를 세우는 것이었다. 매디의 아빠는 '전쟁을 꾀하는 지각체들과 별개로 이들에 맞서는 독립 지각체 집단'에 속했다. 매디는 중얼거린다.

"수백만 명이나… 지구 반대편에서, 신들 가운데 하나가 전쟁이라는 사나운 개를 풀어 놓았고, 수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 저마다 꿈과 두려움을 품고 살던, 바로 오늘까지도 아침을 먹고 게임을 하고 자기 아이와 농담을 나눈 사람들이, 죽었다. 죽었다고."

재앙이 극대화된 시점에 겨우 파괴적인 인공지각체들을 삭제했지만 군사용으로 개발한 그것들을 완전히 없앴는지, 다시 은밀하게 숨겨두었는지는 미지수다. 신들이 죽었거나 적어도 길들여졌다고 생각되는 단계에서도 지구 곳곳에선 재래식 전쟁이 계속됐고, 인간을 디지털화하려는 시도가 비밀연구소에서 진행되는 한, 미래는 더욱 끔찍해질 터였다.

▲인공지능 '미드저니'가 그려낸 '신들은 순순히 죽지 않을 것이다'. 켄 리우의 이 단편에는 인공지각체와 결합한 신들 가운데 하나가 전쟁이라는 사나운 개를 풀어놓아 수백만 명이 죽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육체를 지니고 감각을 경험한 '인격'을 지닌 1세대 컴퓨터 속 유령들에 이어 2세대 버전은 육체 없이도 불만을 지니지 않는 새로운 존재들이다. 3부 '신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에서는 사라진 아빠가 매디의 동생 '미스트'를 만들어 채팅창에 띄운다. 1세대 '신'들은 육체를 지닌 삶에 대한 후회, 향수가 반영돼 전쟁을 벌일 때 맹점이자 약점이 되었지만, 2세대에게 새로운 육체란 가상으로 충분히 경험해서 미련이 없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태어난 아이 '미스트'는 말한다.

"난 내가 가진 적이 없는 걸 갖고 싶어 하진 않아. …데이터 센터 안에서는 살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 살 수 있고,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가질 수 있어. 거기서 유일한 제약은 상상력이야. 육체의 감각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경험도 할 수 있지. 다차원 공간에서 살아 보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 보는 것도,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무한히 많은 세계를 소유하는 것도 가능해."

결핍이 없는 세계는 인류가 늘 갈망해온 존재 상태였다. 부자도 빈자도 없는 세계, 배제와 소유가 낳은 분쟁도 없는 세계. 죽음이 없는, 부패가 없는, 불변하는 물질의 제약이 없는 세계. 죽기 직전 억지로 스캔된 1세대와 달리, 적극적으로 자원해 사후 컴퓨터 속에서 소프트웨어로 존재하는 이도 등장한다. 그는 말한다.

"여기가 바로 우리 진화의 다음 단계란다 …이곳은 완벽한 세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때껏 만든 세계 중에서는 완벽에 가장 가까운 곳이야. 인류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내는 재주가 비상하지. 그리고 여기엔 탐색할 세계가 무한히 많이 있어. 우린 그 모든 세계의 신으로 군림할 거야."

▲ 미드저니가 생성한 '신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인간의 두뇌를 스캔해 데이터로 사후 인격을 되살리는 단계로까지 기술이 발전할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포스트 휴먼의 세상을 그려보는 차원에서는 충분히 흥미로운 서사들이다. 결국 인공지능을 통제하는 건 인간의 영역인데, 이 능력과 의지조차 인공지능에게 맡기는 순간 새로운 '신'에게 스스로 미래를 헌납하는 꼴이라는 각성은 과학적인 미래 예측과는 무관하게 지금 당장 유효한 자각인 셈이다.

SF 하위 장르인 스팀펑크(증기기관이 발명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과학적인 서사를 펼침)를 빌려와 그가 명명한 '실크펑크'(스팀펑크보다 배경을 과거로 더 확장)도 이번 소설집에서 엿볼 수 있다. '북두'가 그것인데,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명군이 평양성까지 장악한 일본군과 싸우는 과정을 담았다. 일찍이 일본군에 잡혀갔다가 탈출해 조선을 지원하기 휘해 파병된 이여송 장군의 책사 '담원사'라는 인물이, 북두칠성에서 힌트를 얻어 중국식 '풍등'을 GPS로 활용해 일본군 코앞까지 기습 당도하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켄 리우는 단편 말미에 "중국에서는 스팀펑크 장르와 유사한 분위기의 이야기를 중국어로 쓴 SF가 인기를 끄는데, 나는 이러한 장르에 '실크펑크'라는 이름을 붙였다"면서 "실크펑크 SF의 무대는 고대 또는 중세 동아시아이며, 이야기에 나오는 여러 가상의 발명품은 증기가 아니라 바람이나 물, 동물, 또는 중국 특유의 개념인 기(氣)나 기관술(機關術, 전국 시대에 묵가 사상가들이 발전시킨 기계 공학)을 동력으로 삼는다"고 밝혔다.

▲임진왜란 시기 '공명등'과 '북두칠성을' 활용해 전쟁을 벌이는 켄 리우의 단편 '북두'와 관련해 미드저니로 생성한 이미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우수리 불곰'은 러일전쟁 시기의 일본군을 내세운 스팀펑크이고, '풀을 묶어서라도, 반지를 물어 와서라도'는 1645년 명나라 양주의 대학살 사건을 설화를 빌려와 전개한 단편이다. '루프 속에서'는 원거리에 쾌적하게 앉아서 먼 곳의 인간들을 드론으로 게임하듯 학살하는 이야기다. SF 외피를 빌려 사랑에 대해 성찰하는 '1비트짜리 오류'나 '장거리 화물 비행선'도 인상적이다. 그가 생각하는 문학.

"나는 판타지와 SF를 구별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기로는 '장르 문학'과 '주류 문학'을 구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소설이란 손쓸 수 없을 만큼 변칙적이고 무분별한 현실보다 은유의 논리를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논리란 대개는 은유의 논리이므로."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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