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유럽 잇는 교량국가로 '아나톨리안 단층대'가 원인
카라만마라슈 등 10개주와 시리아 합쳐 사망 8천명 육박
앙숙 그리스·스웨덴도 지원…일본·인도, 신속·시스템 지원튀르키예(Türkiye) 공화국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량 국가'이다.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아나톨리아(Anatolia) 지역이 국토 면적의 대부분이지만, 국토 면적의 3%인 트레이스(Trace) 지역은 유럽에 속해 있다.
▲ 지각판은 지구의 지각을 천천히 움직이는 12개의 '판'으로 나눈다. 지진은 이러한 판 경계를 따라 집중되는데, 튀르키예는 4개의 판이 만나는 '아나톨리안 단층대'에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 누리집] 한반도의 3.5배 크기인 국토의 북쪽은 흑해, 동쪽은 조지아·아르메니아, 남쪽은 이라크-시리아 및 지중해, 서쪽 유럽 부분 영토는 그리스 및 불가리아와 접경해 있다. 그중에서도 그리스와는 역사적으로 전쟁을 여러 번 치른 앙숙 관계이다.
동서양을 잇는 교량 국가인 튀르키예는 접경국이 많을 뿐만 아니라 지진을 일으키는 지각판(tectonic plates)도 몰려 있다. 지각을 구성하는 12개의 판 중 유라시아판, 아프리카판, 아라비아판, 인도판 등 4개가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만난다. 이른바 '아나톨리안 단층대'이다.
판의 가장자리인 판 경계(plate boundaries)는 많은 단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 세계 대부분의 지진은 이러한 단층에서 발생한다. 이 단층대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매년 약 2.5cm씩 움직이며 다른 단층대와 충돌해 지진이 발생한다. 아나톨리안 단층대는 환태평양 지진대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가장 지진이 많은 지역이다.
튀르키예+시리아 사망자 8000명 육박…WHO "최악 2만명까지"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6일(현지시간) 새벽 4시17분 튀르키예 남부 가지안테프에서 약 33㎞ 떨어진 내륙에서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했다. 규모 7.8은 21세기 들어 역대 최강이다. 이로 인해 가지안테프 주의 피해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 튀르키예 재난위기관리청(AFAD)에 따르면, 6일(현지시간) 새벽 4시17분 카라만마라슈(Kahramanmaraş) 주의 파자르치크(Pazarcık, 사진)에서 규모 7.7의 지진이 발생했다. [NTV 캡처] 튀르키예 재난위기관리청(AFAD)의 공식 발표는 달랐다. AFAD에 따르면, 같은 시각 카라만마라슈(Kahramanmaraş) 주의 파자르치크(Pazarcık, 인구 2만5000명)에서 규모 7.7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어 추가로 규모 7.6 지진이 당일 오후 1시24분에 엘비스탄(Elbistan, 인구 15만 명)을 강타했다. 유누스 세제르 AFAD 책임자는 7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첫 지진 이후 규모 7.6 등의 지진이 총 312회 발생했으며 그 중 가장 큰 지진은 엘비스탄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튀르키예 재난구호조정센터(SAKOM)의 초기 재난정보에 따르면, 카라만마라슈, 가지안테프, 샨리우르파, 디야르바크르, 아다나, 아디야먄, 오스마니예, 하타이, 킬리스, 말라티야 등 10개 주에서 1121명이 목숨을 잃었고 7634명이 부상당했다. 건물은 총 2834개가 파괴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여진으로 인한 붕괴 위험과 매몰된 인원의 중가로 사망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아나돌루 통신에 따르면, 푸앗 옥타이 부통령은 AFAD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구조 이틀째인 7일(현지시간) 현재 5894명이 목숨을 잃었고 3만4810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붕괴된 건물 5775개에서 구조한 인원은 8000명이다. 사망자는 하루 사이에 4800명이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지진의 진원인 카라만마라슈 주와 인접한 시리아는 현재 정부군과 반군이 10년째 내전 중이어서 국가 행정이 마비된 상태이다. 아사드 정권의 국영통신 사나(SANA)에 따르면 알레포, 라타키아, 하마, 타르투스 지방의 정부 통제 하에 있는 지역에서 812명이 사망했고 1449명이 부상당했다.
하지만 시리아 북부의 반군 통제 지역에서 더 많은 건물이 파괴된 것으로 알려져 시리아 역시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아나돌루 통신은 시리아 인권 네트워크(SNHR), '하얀 헬멧', 현지 특파원 수집 정보를 종합해 7일 현재 시리아의 사망자가 1782명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 7일(현지시간) 밤 튀르키예 아다나 주에서 구조대가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으로 지금까지 사망자가 8000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으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지진 피해가 큰 10개 주에 3개월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AP 뉴시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합치면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7일 현재 7676명에 이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금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골든 타임이 흐를수록 생존자를 구조할 가능성이 줄어 최악의 경우 사망자가 최대 2만 명에 이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과 인도의 신속하고 체계적인 긴급구조 대응
옥타이 부통령은 "외국 수색구조대 3251명을 포함해 1만6139명의 수색 구조대가 전속력으로 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다"면서 "전 군(軍)에서 6만218명의 병력을 동원해 현장에서 밤낮없이 24시간 계속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에서 추가로 2400명의 수색구조대원이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7일 강진 피해를 입은 10개 주에 석 달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튀르키예는 앞서 강진 발생일부터 1주일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하고 전국 학교에 휴교령을 내린 상태다.
국제 사회는 튀르키예의 고통을 공유해 일제히 지원에 나섰다. 튀르키예 외무부에 따르면, 현재 65개 국가와 13개 국제기구가 애도를 표하고 지원에 나섰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유럽연합, 중국은 물론,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튀르키예와 앙숙 관계인 그리스와 스웨덴 등도 지원 의사를 밝혔다.
앙카라 주재 그리스대사관은 지진 발생 당일 곧바로 트위터에 터키 국민과 그리스 국민의 악수 사진과 함께 위로와 연대를 표시했다. 튀르키예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훼방으로 불편한 관계인 스웨덴의 빌스트롬 외무장관도 이날 트위터에 위로와 지원 의사를 표시했다.
▲ 인도 외무부는 탐색구조대와 구조견 등 국가재난대응군(NDRFHQ) 1차 선발대를 태운 수송기의 출발·도착부터 야전병원 의료팀을 실은 네번째 수송기 출발까지 자이상카르 외교부장관과 박치 외교부 대변인의 트위터를 통해 시시각각 전했다. [인도 외무부장관·대변인 트위터] 튀르키예 지진 발생 이후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가장 먼저 올라온 것은 일본의 신속한 긴급 구호대 파견 소식이었다. 일본 외무성은 6일 밤 도쿄 소방청 수색구조대 70여 명을 급파했다. 7일 지진 관련 타임라인에는 사진과 함께 이런 메시지가 떴다. "오랜 우정의 역사. 이번에는 일본에서 도와드리겠다. 도쿄 소방청의 재해 대응 전문가와 장비가 어젯밤(6일) 도쿄에서 날아왔다."
인도는 지진 발생 이후 체계적으로 네 차례나 수송기를 띄웠다. 먼저 일본과 비슷한 시각 50명 이상의 국가재난대응군(NDRFHQ) 선발대를 태운 C17 수송기가 튀르키예 아다나에 도착했고, 두 번째 비행기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알렸다. NDRFHQ는 재난 대응을 위해 훈련된 전문 부대로 수색-구조 인력과 특수 훈련된 군견 분대, 드릴링 머신, 구호 재료, 보수 및 기타 필요한 장비와 함께 투입됐다.
첫 수송 8시간 뒤에는 탐색구조팀과 개, 그리고 구조 특수차량을 실은 두번째 수송기가 튀르키예로 떠났다. 이어 선발대 출발한지 16시간 뒤에는 야전병원을 구축할 장비와 육군 의료팀 54명이 튀르키예로 떠났다. 이런 소식은 자이상카르 외교부장관과 박치 외교부 대변인의 트위터를 통해 시시각각 전해졌다.
'피를 나눈 형제국'으로 불리는 두 가지 의미
▲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에서 40시간만에 쌍둥이가 구조돼 부모의 품에 안겼다. [아나돌루 통신 캡처] 튀르키예는 우리에게 '형제국 터키'로 친숙하다. 지난해 6월 유엔은 국호를 '터키'에서 '튀르키예'로 변경해 달라는 요청을 승인했다. 터키가 영어로는 칠면조나 겁쟁이로 불리기 때문에 국가 브랜드 이미지 개선 차원에서 국호를 개명한 것이다.
튀르키예가 우리에게 '피를 나눈 형제국'으로 불리는 데는 두 가지 의미가 중첩돼 있다. 우선 국민의 절대 다수인 튀르크인들은 고대 한민족과 뿌리가 같은 것으로 간주되는 돌궐족의 후예이다.
다른 하나는 튀르키예가 6·25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한 16개 파병국 중 하나라는 점이다. 당시 터키는 북한의 남침 직후 한국에 대한 유엔의 군사원조 결의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단시일 내에 4500명 규모의 파병을 결정함으로써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곤 캐나다와 함께 여단급 육군 병력을 파병한 국가다.
터키군은 다른 어떤 군대보다 용감했다. 특히 장병들은 포로가 되는 것을 거부하며, 착검한 채 적진으로 돌격해 강한 군기를 보여 주었다. 1950년 중공군의 11월 공세 당시 미 제2사단의 우익부대로 군우리 전투를 치르면서 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럼에도 터키여단은 군우리의 손실을 보충하고 미군의 울프하운드 작전, 선더볼트 작전 중 수리산 전투와 용인 김량장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10배의 사상자를 내게 하는 전과를 올려 유엔군의 사기를 높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트윗 및 6.25 전쟁 참전 16개국을 첨부한 리트윗(왼쪽)과 비극적 인명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 국민들에게 깊은 애도와 연대를 표시한 앙카라 주재 그리스 대사관의 트윗 메시지 [트위터 캡처] 윤석열 대통령은 7일 "튀르키예는 한국전 당시 지체 없이 대규모 파병을 해준 형제의 나라"라며 신속한 구호를 지시했다. 이에 정부는 곧바로 외교부를 중심으로 민관합동 해외긴급 구조협의회를 열어 500만 달러 긴급 지원이 결정됐다.
이어 외교부와 소방청, 한국국제협력단 인력 60명과 군 수색구조 인력 50명을 더한 110명으로 된 역대 최대 규모의 대한민국 긴급 구조대도 KC-330 군 수송기를 타고 출발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역대 최대 규모'의 구조대로 '체면치레'는 한 셈이다.
재난 구호는 '골든 타임'이 생사를 좌우하기 때문에 신속한 탐색구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재난구호에 단련된 일본의 신속한 지원과 인도의 체계적인 시스템 지원이다. 튀르키예와 앙숙인 그리스도 먼저 구조의 손을 내밀었다.
굳이 대통령이 신속한 지원을 지시하지 않아도 국제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매뉴얼에 따라 신속·체계적으로 재난 대응에 나서야 더 많은 생명을 구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참된 '국격'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