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장관·유명배우 홍보 나선 해외 아트페어 사기 논란
탐사보도부
tamsa@kpinews.kr | 2023-01-19 09:10:06
정종섭 전 장관이 대회장, 구혜선은 홍보대사, MC몽은 초대작가
주최측 "우리도 손해 커…원만한 해결책 마련에 최선 다하겠다"
지난해 장관 출신 정치인, 유명 연예인을 앞세워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친 해외 아트페어가 사기 논란에 휩싸였다. 행사에 참가한 수십개 갤러리들은 주최 측의 기망과 부실한 진행으로 갤러리마다 최소 수천만 원대 피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들은 약속대로 행사가 진행되지 않은 만큼 참가비 전액을 돌려달라는 입장이다.
중견 미술 갤러리 대표 A 씨는 지난해 초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미술계 관계자로부터 "싱가포르가 아시아 미술 시장 중심으로 뜨고 있지 않느냐"면서 "2019년에 이어 올 11월에 또다시 마리나베이샌즈에서 아트페어(미술품 전시회)가 열리니 참가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받았다. (사)세종문화예술진흥협회가 주최한 '2022 글로벌 아트페어 싱가포르'는 11월3일부터 6일까지 4일간 마리나베이샌즈 엑스포컨벤션센터 C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조직위는 행사 전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을 비롯해 미국, 프랑스, 스위스, 일본, 싱가포르, 인도, 인도네시아, 콜롬비아, 쿠바 등 10개 국에서 95개 갤러리가 참가한다"고 밝혔다. 또 "하루 전인 2일에는 현지 언론인들을 상대로 한 '프레스뷰', 싱가포르 미술계 큰손들을 대상으로 한 'VIP 프리뷰'가 예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성을 높게 본 A 씨는 부스 1개를 빌리는 조건으로 조직위에 참가비 900만 원을 냈다. 작품 50점을 보내면서 물류비로는 400만 원이 나갔다. 이와는 별도로 이 갤러리는 행사에 작품을 낸 작가, 스태프 등 7명이 싱가포르 현지에 머물면서 총 1000만~1200만 원의 체류비를 썼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행사는 파행을 거듭했다. 대부분 부스는 국내 갤러리로만 채워졌다.
약속된 4일 중 제대로 행사 열린 날은 단 이틀
우선 예정된 날짜에 행사가 열리지 않았다. 행사는 개관 예정일(11월3일) 다음 날인 4일 오후 5시경 가까스로 열렸다. 1시간가량 열린 뒤 당일 행사를 마감했다. 다시 말해 제대로 행사가 진행된 것은 5, 6일 단 이틀뿐이었다. 참가 갤러리들은 나머지 이틀 동안에도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이 기대치를 크게 밑돌았다고 말한다.
조직위는 국내 갤러리들을 상대로 진행한 홍보자료를 통해 마리나베이샌즈 일일 방문객수가 40만 명임을 감안할 때 상당한 집객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행사가 열린 이틀 동안 행사 관람 인원은 100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소송을 준비 중인 한 갤러리 관계자는 "개관이 예정된 3일 행사장에 가보니, 부스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행사 관계자들이 허둥대고 있었다. 기가 찬 나머지 우리 갤러리 스태프들이 페인트 붓 등을 들고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홍보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다른 갤러리 관계자 B 씨는 "행사장 인근에 포스터 한 장 붙어 있지 않아, 마리나베이샌즈 안내센터에 물어보니 그쪽에서도 우리 행사에 대해 잘 모르는 반응이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정종섭 전 장관 "취지 좋은 행사라고 해 형식적 대회장 활동"
이 행사에는 유명인사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행사를 주관한 글로벌아트페어조직위에는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대회장으로 활동했다. 서울 법대 교수 출신인 정 전 장관은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현재는 경북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정 전 장관은 "평소 문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가까운 지인이 K-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뜻깊은 행사라며 대회장을 부탁해 수락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조직위원장에는 국내 최대 미술단체인 한국미술협회(미협) 이사장을 지낸 차대영 전 수원대 미대 교수가 활동했다. 또 행사 총감독에 유명 미술평론가 김종근 전 미협 평론·학술분과위원장이 이름을 올렸다. 주최 측은 행사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배우 구혜선이 홍보대사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가수 MC몽은 초대 작가로 나섰다. A 씨는 "행사 직전 총감독인 김종근 평론가를 모시고 국내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서 김 씨가 '2019년 1회 대회 때도 다수의 작품이 팔린 걸 볼 때 이번 행사는 그때보다 훨씬 기대된다'고 말한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이나, 차 전 교수 모두 준비 자체가 허술했음을 인정한다. 정 전 장관은 "당시 현장에 가보니 행사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다. 나에게 축사를 해달라 하길래 '이렇게 엉망으로 준비된 행사에 축사를 할 수 없다'고 거절한 바 있다"고 밝혔다.
차 전 교수도 "2019년에도 홍보가 제대로 안 돼 진행상 문제가 많았다"면서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가 됐다고 말해 조직위원장을 맡았는데 이런 구설수에 올라 안타깝다"고 답답해 했다.
배우 구혜선 소속사 아이오케이컴퍼니 관계자는 "홍보대사로 참여한 우리도 현장 부스 설치가 워낙 미흡해 당황했다"며 "부스에는 작가 이름을 표시하는 문구조차 쓰여 있지 않아서 구혜선 씨가 현장에서 직접 붓으로 자신의 이름을 써넣기도 했다"고 말했다. 행사 준비를 주도한 총감독 김종근 평론가조차 "주최 측과 현지 업체 간 이견 탓에 행사가 파행을 기록한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주최측 "우리도 행사로 손해봐…참가비 반환은 힘들어"
조직위에 따르면, 이번 행사에는 총 70여 부스 중 30여 개가 비용을 내고 참가했고, 나머지 40여 개는 초대전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 사무국장은 "행사에 총 6억 원이 들어갔는데 참가비인 부스비 명목으로 받은 것은 2억 원에 불과하다"면서 행사비 내역은 공개하지 않은 채 "되레 우리가 이번 행사로 입은 손해가 크다"고 발뺌했다.
미술계에서는 제도적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심정택 미술전문 칼럼니스트는 " 검증되지 않은 단체가 해외 진출에 목마른 국내 갤러리와 기획사를 수익원으로 삼았다. 작가들의 해외 전시 참가라는허영심도 사태를 키우는데 한 몫 했다"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술계 관계자는 "행사 파행에 따른 피해 보상 범위를 계약서에 명시하는 관행이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우리 미술계도 해외에서 열리는 아트페어라면 부실 여부를 사전에 충분히 살펴보고 참여하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PI뉴스 / 탐사보도부 송창섭·서창완 기자 realson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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