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는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야 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2-12-21 08:11:46

'김지하시인추모문화제추진위원회' 김지하 추모문집 발간
내년 5월 1주기 심포지엄, 전시회, 공연, 기록영화 등 준비
"소용돌이 치듯 살아온 평생, 아주 특출한 어깃장도 있었다"
'거대한 우주적 진보와 이 설운 땅의 대변혁을 꿈꾸고…
그 기분, 그 울분, 그 애틋한 마음 포부와 슬픔을 그냥 써라!'

지난 5월 타계한 김지하 시인을 기리는 추모문집이 출간됐다. '김지하시인추모문화제추진위원회'(위원장 염무웅)는 20일 낮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추모문집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생명을 열다'(모시는사람들)에 대한 소개와 함께 내년 5월 1주기를 맞아 치러질 행사에 대해 설명했다.

▲20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김지하 추모문집 발간 간담회. 왼쪽부터 임진택 창작판소리연구원 원장, 유홍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염무웅 문학평론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김지하 시인 49재가 치러진 지난 6월 천도교 대강당에는 750여 명이 운집해 김 시인의 생전 노정을 기렸다. 추모 문집은 이 과정에서 나온 추모글들과 SNS와 각종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추가로 모아 편집한 책이다. 김봉준, 김사인, 김용옥, 김형수, 문정희, 미야타 마리에, 송철원, 염무웅, 유홍준, 이기상, 이동순, 이부영, 이청산, 임진택, 전범선, 정성헌, 정지창, 주요섭, 채희완, 최열, 최원식, 함세웅, 홍용희, 홍일선, 황석영이 필자로 참여했다.

이날 간담회 자리에는 염무웅 위원장과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유홍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임진택 창작판소리연구원 원장, 송철원 현대사기록연구원 이사장, 밴드 '양반들' 리더인 가수 전범선 씨 등이 참석했다.


염무웅 위원장은 "김지하가 시인이라는 사실이 어떤 의미에서는 핵심이겠지만, 문화운동이라든가 생명운동과 그림 등 각 분야에 걸쳐서 수많은 후배들에게 막강한 영향을 끼쳐 우리 문화의 판을 바꿨다고 할 수도 있다"면서 "여러 분야를 통틀어서 김지하가 제기한 문제가 무엇이고 앞으로 이어받아 연구하고 검증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계기로 내년 5월 추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부영 이사장은 "김지하 시인은 80평생을 소용돌이 치듯 살아왔고 그만큼 치열하게 살다 보니 부딪히는 일도 많았다"면서 "말년에 조금 어깃장을 부려서 사람들 애간장을 좀 태우고 그랬는데 독재정치에 대해서도 어깃장을 놓았던 시인 나름의 아주 특출한 어깃장이었다"고 술회했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왼쪽)과 염무웅 김지하시인추모문화제추진위원회 위원장. 이 이사장은 "김지하 시인은 치열하게 살다 보니 부딪히는 일도 많았는데 말년에는 조금 어깃장을 부려 사람들 애간장을 태웠다"고 술회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어깃장'은 추모문집의 '추도' 글에서 함세웅 신부가 "1991년 5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그의 거친 외침은 민주시민과의 결별 선언"이었다고 돌아보았듯이, 이 시기 이후 민주 진영과 사이가 틀어진 사태를 염두에 둔 말이다. 이부영 이사장은 "자기 몸처럼 아끼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많이 그냥 생명을 버리는 일에 그 성질에 입을 다물고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것"이었다면서 "그가 감옥에서 죽음을 겪고 나와서 얻은 생명 사상에 대한 깊은 확신 속에서 나온 어깃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지하 시인의 고교와 대학 후배인 유홍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은 "김지하 시인이 어깃장 부려서 많은 사람들이 떠났을 때도 그가 죽을 때까지 인연을 끊지 않고 모든 걸 다 이해했다"면서 "그 당시에는 김지하 시인의 심신이 정상이 아니었는데 살아있는 동안에 그 사실을 얘기하기가 참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49재 당시 보여준 많은 사람들의 추모 열기는 김지하 시인에 대해서 갖고 있던 마음의 빚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라면서 "김지하는 역시 우리 현대사에 귀중한 문화적 자산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고 이것이 묻혀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MZ세대는 고사하고 X세대들도 김지하가 누군지 잘 모르는데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증언을 해야 한다 하는 마음들이 모아진 것"이라면서 "한마디로 지하는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야 된다"고 덧붙였다.

▲민족문학의 밤(1985·위), 지학순 주교 석방 행진(1975·아래 왼쪽), 원주 집 서재(1984)의 김지하 시인. [모시는사람들 제공] 

1주기 추모 심포지엄은 2023년 5월 6~7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이틀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첫째 날은 김지하 시의 노래 공연으로, 둘째 날은 임진택 창작판소리, 채희완 안무 마당극 창작탈춤 공연으로 행사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와는 별도로 유홍준이 총괄하는 김지하 서화전 '꽃과 달마, 그리고 흰 그늘의 미학'과 김동원 감독의 기록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김지하 시인이 감옥에서 후배 유홍준에게 보낸 편지

아래 글은 김지하 시인의 중동고교·서울대 미학과 후배인 유홍준(미술평론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이 보내온 자료로, 두 사람이 한 감옥에 있을 때 주고받은 편지 중 일부이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이즈음 시인들에게도 자극이 될 만한 뜨거운 글이다.


문학을 시작하는 젊은 노동자에게

이 글은 1974년 12월 어느 날 김지하 시인이 민청학련 사건으로 기소가 되어 영등포 교도소에 복역하던 중 같은 교도소에 수감된 유홍준(징역 7년, 당시 서울대 미학과 4년, 미술 평론가)에게 보낸 편지의 전문이다. 이 둘은 한 교도소에 있으면서도 김지하는 인쇄 1.2공장에, 유홍준은 조화(종이꽃) 3공장에 출역하고 있어서 만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유홍준이 철창 밖으로, 운동 시간에 밖에 나와 햇볕을 쬐고 있는 김지하를 발견하고는 자신의 생각과 습작으로 써 둔 시를 교도관 몰래 비둘기로 날렸는데, 그 이튿날 되돌아온 김지하의 답신이 이 글인 것이다. (…)이 글은 그가 자신의 시에 대해 직접 말한 귀한 증언이기도 하다. 그리고 유홍준의 습작에 대한 김지하의 세심한 지적 사항들은 시를 쓰고자 하는 모든 초심자들에게 더없이 친절한 시작 강의라 생각된다. -('노동문학' 1989년 4월호) 편집자 

홍준아!

오늘 너의 글을 읽고 그 동안 좀더 네게 자주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였다. 다시 한번 말하마, 미안하다.

어둠 속에서 글을 읽고 대본을 세우며 살아가는 모습은 장하였다. 나는 바로 너희에게 그처럼 자기의 위치를 알고 하나씩 능동적으로 창조적으로 일을 해 나가는 작품을 원하였고, 네가 그런 모습을 보여 주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우선 네가 시를 쓸 때, <빈산> <황토> 등이 어른거린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 있겠으나 우선은 동시대적인 경험이나 비슷한 감수성 때문일 것이다. 너무 '절망적인 느낌'으로 의식할 필요 없고 그렇다고 자기 목소리를 발견하는 데 등한시해서도 안되겠지.

나의 시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면 첫째, 섬약하게 이것 저것에 마음이 묶여 제풀에 자꾸 자지러드는 문사 기질을 던져 버리고, 뜨겁게 살고, 건강하게 먹고, 날카롭게 싸우고, 밤새 떠들고, 미친 듯이 읽고, 비참 앞에선 이를 갈며 통곡하고, 꽃님 앞에선 다소곳해지고, 순결한 사랑을 품고, 거대한 우주적 진보와 이 설운 땅의 대변혁을 꿈꾸고, 칼을 갈며 야망의 홍소를 터뜨리고, 말술을 마시고……그리고 그 기분, 그 울분, 그 애틋한 마음과 포부와 슬픔을 그냥 써라! 형식으로 하여금 네 뜻을 따라오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드는 당당한 큰 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개방할 때-다만 허풍이 아니고-자기도 모르는, 자기도 뭐라 논리적으로 규정 못 할 자기만의 목소리가 기어나오고 마는 법이니까.

둘째, 우리가 건설해야 될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는 <힘>이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개인적으로는 바닥에 뿌리내리는 끈덕진 생명력과 확신에 찬 미래에의 집중에서 나온다. 집단적 차원에서는 민중의 조직된 힘의 무서운 창조력과 그 힘을 확고한 과학적 비전 아래 집중, 목표를 하나 하나 깨뜨려 버리는 지도력 간의 통일에서 나온다. 이것은 예술의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다 같이 적용된다. 막연한 민중이란 기만이기 쉽다. 특히 손이 흰 인텔리에게 민중과 관련된 생존이 증발해 버린, 냉냉히 그것만인 '고도의 집중'도 허망이기 십상이다. 그것은 작가 자신에게 볼모요, 미망이 된다. (…)

셋째, 다작의 습관과 그 중에서도 오직 참으로 우수한 것만을 작품으로 인정하는 자기 노작에 대한 잔인한 비평의 눈을 갖는 것. 또 형식, 기고, 처리, 다시 말해 장인으로서의 기량과 이론, 훈련, 문학사, 예술사, 미학, 그리고 민요 수집, 민속의 지식 등등에 관해서 도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 특히 앞으로 엄청난 논쟁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능숙하고 눈부신 이론가로서의 준비를 하는 것 .대체로 이상 세가지 점을 받아들이고 자기가 부딪히고 있는 내심의 가장 고민스러운 문제점과 비교, 검토, 결론이 난다면 <황토> 등이 어른거린다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내가 읽은 시를 말한다면, 작품이 담고 있는 정신이 명확히 옳고 명확히 진보적이고 민중에의 애착과 현실 모순에 비판적이다. 기본 조건이 충족되었다. 개념적 어휘들에 의해서 표백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느껴져 온다는 점도 매우 좋다. 장려해야 할 점이다. 대개의 참여시라는 것에서 느끼는 참괴감 무안스러움 억지스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호흡이 (네 체질인 듯싶은데) 퍽 길고 여유가 있어서 반갑다. 아마 시든 뭐든 써도 훗날 대성할 가장 중요한 자질로 될 것을 나는 확신한다. 다만 생래적이라면 더욱 좋겠다. (…)

욕 좀 하자. 행과 행의 이전, 말과 말의 전환 등에 의식이 없고 의미가 주어져 있지 않다. 시가 산문이 아닌 한 시행의 전환에 그만큼 필연적인 의미-음악성의 요구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점에 의식이 없었음으로 해서 언어의 강화와 약화, 의미의 양각과 음각, 즉 내용의 미묘하고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제시 및 호소력과 그에 결부된 리듬 및 행 변화의 묘한 율동의 힘이 전무하다. 따라서 감동이 느리고 둔하며 한 마디로 촌스럽다. 어미의 낡은 투 등은 그 자체로 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흠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인 것이다.

담고 있는 내용, 의미 또는 메시지 같은 것이 선명치 못하고 탁하며 구체적인 감동이 없고 미묘한 각성이나 찌르는 듯한 아픔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내용이 구체적인 실천, 투쟁, 삶의 피투성이, 절규나 결단 등 극적인 것뿐만 아니라, 은은한 인식이나 조용한 생의 용기 등과 같이 뿌리박고 결부되지 못한 데서 온다. 한마디로 해이하다. 긴장(텐션) 모순의 운동감에 의해서 발생하는 의미의 고양이나 감동의 심화 등이 없다. 때로는 너무 감상적이고 너무 설명적이다. 발라드가 아닌 한 설명은 시에 있어 최대의 금물이다.

홍준아! 열심히 써라.

지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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