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이 바이든보다 시진핑을 더 환대하는 까닭
김당
dangk@kpinews.kr | 2022-12-09 11:11:41
習, 현지매체에 "외부간섭 함께 반대"…여론도 '美보다 中 신뢰'
시진핑-빈살만, 일대일로-'비전 2030' 국책사업 연계강화 합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초청으로 사우디를 국빈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황제급' 예우를 받고 있다. '중국과 아랍은 운명 공동체'라는 표현이 시진핑의 입에서 나왔다.
중국 외교가 미국과 사우디의 불편한 관계의 틈새를 파고 든 모양새다. 시 주석에 대한 극진한 환대는 지난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문 때 사우디가 보였던 '냉대'와 대조를 이루면서 국제 관계에도 묘한 기류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사우디를 사실상 통치하는 모하메드 빈살만 왕세자는 8일(현지시간) 자신의 알 야마마 궁전에서 시진핑 주석을 맞이했다. 시 주석이 탄 승용차는 양국 국기를 든 사우디 왕실 기마 근위대가 호위했다. 상대적으로 간소했던 바이든 대통령 방문 때의 환영 행사와 대조를 이뤘다.
국영 SPA 통신과 외신 등에 따르면 빈살만 왕세자는 이날 오후 정상회담을 위해 왕궁에 온 시 주석과 환하게 웃으며 악수했다. 바이든 대통령 방문 때는 별도의 환영 행사가 없었고, 빈살만 왕세자와 바이든 대통령은 '주먹 인사'를 나눴다.
로이터 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였던 '조촐한 환영(the low-key welcome)'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최고 수준의 화려한 환영 행사였다고 평가했다. 극진한 환대는 이미 전날 시 주석이 리야드에 도착하기 전에 '하늘'에서부터 예고됐다.
시 주석을 태운 전용기가 전날 사우디 영공에 진입하자 사우디는 공군 전투기 4대로 에스코트하는 특별한 의전을 제공했다. 이어 전용기가 수도 리야드 상공에 진입하자 의전 호위기 '사우디 호크' 6대가 전용기와 동반 비행을 했다.
SPA에 따르면 시 주석은 빈살만 왕세자와 양국 관계 발전 방향을 논의한 뒤에 알사우드 국왕을 만나 '포괄적인 전략 동반자 협정'에 직접 서명했다. 시 주석이 지난 2016년 1월 사우디를 방문해 양국 관계를 '포괄적인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기로 합의한 지 거의 7년만이다.
또한 중국과 사우디는 '포괄적인 전략 동반자' 관계에 걸맞게 양국 정상이 2년마다 셔틀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중국 정부가 예고한 대로 중-사우디 관계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앞서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7일 정례 브리핑에서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에 대해 "중국-아랍 관계의 역사에 획기적인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도 앞서 사우디 언론을 통해 "이번 방문은 아랍 세계와 걸프 국가들과 관계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선구적인 여행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7일 '중국-아랍 정상회담 이정표의 의미'라는 사설에서 9일 열리는 제1차 중국-아랍 정상회의에 대해 "중국과 아랍 국가는 모두 주권, 독립, 영토 보전을 존중하고 상호 내정 불간섭을 주장한다"면서 "이는 중국-아랍 국가 관계 역사의 이정표이며 양국 협력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중국은 이미 아랍 국가들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다. 2021년 아랍 국가와 중국 간의 양자 무역 규모는 전년 대비 3분의 1 이상 증가한 3000억 달러 이상에 달했다. 올해 1~3분기 양국 교역액은 전년 동기 대비 35.28% 증가한 3190억 달러로 2021년 전체 수준에 근접해 고속 성장세를 유지했다.
또한 아랍 20개국은 중국이 제안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이니셔티브'에 따라 중국과 협력 문서에 서명했다. 중국-아랍의 협력 범위는 에너지 분야에서 농업, 디지털 경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으로 확대되고 있는데, 이번 중국-아랍 정상회담으로 양자의 협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사우디는 시 주석에게 서방이 배 아파할 '통큰 선물'을 안겼다. 아라비안 걸프 비즈니스 인사이트(AGBI)는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 첫날에 사우디와 중국 기업들은 34개의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면서 "이는 지난해 사우디가 미국 및 영국과 체결한 것을 처음으로 넘어선 양국 간의 교역을 더 강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협정들은 그린 에너지, 그린 수소, 태양광 에너지, 정보 기술, 클라우드 서비스, 운송, 물류, 의료 산업, 주택 및 건설 분야의 부문을 다루었다"고 덧붙였다. 총사업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앞서 SPA는 양국이 300억 달러(약 38조 원)에 달하는 사업을 체결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특히 이번에 사우디는 중국 통신장비 회사인 화웨이와 클라우딩 컴퓨팅과 사우디 내 첨단기술 도시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서 눈길을 끌고 있다. 화웨이는 안보상 우려와 중국의 '기술 굴기'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이 기피하는 중국 통신장비 업체다.
AGBI는 "시 주석의 방문 기간 사흘 동안 세 차례의 정상회담이 계획되어 있으며 '사우디 비전 2030'과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간의 전략적 파트너십 문서 외에도 293억 달러 이상의 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혀 주목된다.
'일대일로'는 중국 자본과 인력을 동원한 해외 철도, 항만 등 인프라 건설 협력을 통해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현대판 육·해상 '실크로드'를 만든다는 시 주석의 대표적 대외 이니셔티브다.
'사우디 비전 2030'은 빈살만 왕세자가 지난 2016년에 마련해 사우디 정부가 석유 시대 이후를 대비한 산업 다각화를 위해 추진 중인 대규모 국책 사업이다. 빈살만 왕세자가 지난 11월 방한 때 한국 기업의 참여를 요청하며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모아 화제가 된 네옴시티(NEOM City)는 비전2030의 핵심사업이다.
8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리야드 신문에 실은 기고문에서 양국의 핵심 국책 사업인 '일대일로'와 '비전 2030' 간 연계를 강화할 것을 제안하면서 "이번 방문을 계기로 사우디와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강화해 시종 서로 이해하고 지지하며, 독립·자주를 공동으로 제창하며 외부 간섭에 함께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새로운 정세 하에서 중국은 아랍 국가들과 우호 정신을 전승하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중국·아랍 운명공동체 구축에 협력할 것"이라고 '운명공동체'라는 용어를 사용해 주목된다.
시 주석은 이어 "중국은 아랍 국가들과 내정 불간섭의 기치를 계속 내걸고, 상대방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확고히 지지하며, 국제 공평과 정의를 공동으로 수호할 것"이라며 "일대일로 공동 건설을 위해 계속 협력하고 식량, 에너지, 투자 및 융자, 의료 등 영역에서 실용적인 협력을 끊임없이 확대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앞서 왕광다 상하이국제대학 교수는 지난 6일 글로벌 타임스에 기고한 '제1차 중국-아랍 정상회담은 양측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글에서 "제1차 중국-아랍 정상회담은 신시대 중국-아랍 운명공동체를 공동으로 건설하는 길을 인도할 것"이라며 '신시대 중국-아랍 운명공동체'라는 표현을 4번이나 사용했다.
왕 교수는 "아랍 국가들은 서방 국가들과의 장기적인 상호 교류에서 서방의 오만함에 지쳤다"며 "중국은 다른 나라 국민들이 자주적으로 선택한 발전 경로를 존중하며, 다른 나라에 자국의 가치를 강요하지 않을 믿음직한 파트너"라고 '운명공동체'가 양측의 전략적 선택임을 강조했다.
실제로 중국-아랍 관계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몰라보게 바뀌었다. 올해로 14번째인 지난 9월의 '아랍 청년 설문조사(Arab Youth Survey)'에 따르면 아랍 젊은이는 거의 5명 중 4명(78%)이 중국을 동맹국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MENA)의 17개 국가 50개 도시에 거두하는 18~24세 아랍인 3400명을 대상으로 한 대면 설문조사에서 중국 다음으로는 튀르키예(77%), 러시아(63%), 영국·프랑스(70%), 그리고 미국(63%) 순이었다. 반대로 아랍 청년들이 '적'으로 여기는 국가는 이스라엘(88%)과 이란(62%)에 이어 미국(37%)이 세번째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후 시작된 무슬림에 대한 그의 혐오적 내러티브와 수사로 미국을 싫어하게 된 사람들의 수가 걸프만 국가에서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고 지적한다.
걸프 스테이트 애널리틱스(GSA)의 CEO 겸 창립자인 조르지오 카피에로(Giorgio Cafiero)는 "이라크와 리비아에 대한 서구의 군사 개입은 많은 아랍 시민과 정부 관리의 관점에서 볼 때 극도의 재앙이었다"며 "이에 따라 아랍에는 서구 강대국을 넘어 관계를 다양화할 수 있는 다극 세계에 대한 상당한 지지가 생겼다"고 AGBI에 말했다.
미국 워싱턴 D.C 윌슨센터의 중동 프로그램 책임자인 메리사 쿠르마(Merissa Khurma)도 "중국은 이 지역에 군사적으로 관여한 적이 없고 지금도 하지 않으며, 대다수 사람들은 중국을 인상적인 경제 대국으로 보고 있다"며 "이것이 아랍에서 중국이 미국-영국보다 더 호의적으로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국방-외교정책을 대외 전파하는 글로벌 타임스(GT)는 "우월한 자세로 중동에 진출하고 지정학적 안보 문제에 집중하는 일부 강대국과 달리 중국은 민족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아랍 국가들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있다"면서 아랍에서 중국이 미국과 다른 대접을 받는 까닭을 에둘러 전했다.
그러면서 "인식에 한계가 있는 일부 미국과 서방 엘리트들은 중국-아랍 정상회담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며 "윙윙거리는 파리 몇 마리(a few buzzing flies)가 중국과 아랍 국가들이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중-아랍 외교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실상의 왕정국가'인 중국과 산유왕정국가들로 구성된 걸프 국가들이 각각 천안문 사태와 '아랍의 봄' 혁명의 영향으로 서로 '동병상련'과 '운명 공동체'로서 동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GT가 사설에서 "정치적 혼란을 피하면서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달성하는 것은 많은 아랍 국가들의 공통된 바람이 되었다"고 했듯이.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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