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죽음의 중력에 저항하는 청춘의 힘…새롭게 만나는 카뮈의 산문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2-12-08 14:41:06

알베르 카뮈 산문집 '결혼' '여름' 새로 번역한 박해현
힘차고 아름다운 문장들…젊은 시절에 읽기 좋은 글
"청춘 시절의 독서, 오늘의 젊은이들과 나누고 싶다"

'죽음에 대한 공포의 뿌리는 삶에 대한 질투라는 걸 깨닫는다. 내가 없는 미래에 살 사람들, 꽃과 여자를 향한 욕망이 살과 피로 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만끽할 사람들을 질투한다.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기에는 삶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부러워한다. …나는 끝까지 환하게 깨어 있고 싶고, 내가 지닌 질투와 공포가 넘쳐나는 가운데 나의 최후를 응시하고 싶다.'

▲카뮈의 산문을 새롭게 번역한 박해현은 "카뮈의 언어를 오늘의 젊은이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밝혔다. [박해현 제공]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는 '제밀라의 바람'에서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는 "무궁무진한 하늘을 관조하는 대신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운명에 집착함에 따라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다면서 "우리는 스스로 의식하는 죽음을 창조함으로써 우리와 세계를 분리하는 간격을 줄이게 되고, 영원히 잃어버린 그 세계의 승화된 이미지를 의식하면서 기쁨에 들뜨지도 않은 채 완전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이어간다. 이리하여 알제리 북쪽 고대 로마 도시 유적이지인 제밀라의 바람 부는 언덕에서 "쓰디쓴 가르침을 내 영혼에 더 깊숙이 박아 넣는다"고 썼다.

카뮈가 20대에 썼던 글들을 모은 산문집 '결혼'(1938)과 각기 다른 시기에 집필한 '여름'(1954)은 프랑스에서는 같이 묶어 한 권으로 발간됐다. 국내에서는 일찍이 불문학자 김화영의 번역으로 소개돼 '이방인'이나 '페스트' 같은 카뮈의 대표 소설 외에도 산문의 매력으로 이끌었다. 이번에 이 산문집 2권 '결혼' '여름'(휴머니스트)을 각각 새롭게 번역해 내놓은 박해현도 20대에 이 번역서를 접하고 프랑스어를 공부하며 카뮈에 매료된 경우다.

그는 "스물여섯 살에 처음 읽었고, 너무 좋은 나머지 어설픈 프랑스어 실력으로 더듬더듬 원서를 읽어나가면서 젊은 날을 보냈다"면서 "이제 예순을 넘겨 청춘 시절의 독서를 회춘제라도 먹는 양 되풀이하다가 덜컥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 말았다"고 말한다. 박해현은 조선일보에서 문학전문기자로 일했고 파리 특파원도 역임했다.


'결혼'은 '티파사에서의 결혼', '제밀라의 바람', '알제의 여름', '사막'으로 꾸며졌다. 이 네 편의 에세이는 카뮈가 20대 초반에 쓴 것으로, 소설, 희곡, 철학 산문, 시사평론에 걸 쳐 다양하게 글쓰기를 시도한 카뮈의 저작 중에서 서정성이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다. 박해현은 "그가 젊어서 쓴 글이기에 순수한 관능과 감성의 발산을 주저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눈앞에 펼쳐진 세계와 삶을 차분하게 관조하며 성찰하는 지성도 빛난다"면서 "무릇 사람이 젊은 시절에 읽기 좋은 글"이라고 추천한다.

그는 '티파사에서의 결혼'을 통해 카뮈가 폐허를 거닐면서 "죽음의 축적을 뚫고 솟아나는 꽃의 색채와 향기를 만끽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물살을 가르는 청년의 초상을 자화상으로 제시하면서 자신의 삶으로 느끼는 자긍심을 드높여 죽음의 중력을 떨치는 청춘의 힘을 형상화하려고 했다"고 보았다. '죽음의 중력을 떨치는 청춘의 힘'은 카뮈의 힘차고 아름다운 문장들에 가득하다.

'이 세상에는 오직 단 하나의 사랑이 있다. 여자의 육체를 껴안는 것, 그 또한 하늘에서 바다로 내려오는 저 기묘한 환희의 빛을 온몸으로 껴안는 행동이다. 곧이어 내가 향쑥 속으로 투신해 그 향기가 내 몸속에 스미도록 할 때, 나는 모든 편견을 물리치고, 하나의 진실을 성취하고 있다는 순간을 의식하게 되리라. 태양의 진실일뿐더러 내 죽음의 진실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곳에서 나 자신의 삶을 걸고 도박한다. 내 삶은 따뜻한 돌의 풍미와 바다의 숨결과 이제 막 노래하기 시작한 매미떼로 충만하다.'

'여름'에는 카뮈가 20대 초반에 쓴 에세이를 모은 '결혼'과 달리 각기 다른 시기에 쓴 8편의 에세이가 담겼다. '미노타우로스 또는 오랑에서 멈춘 발걸음', '아몬드나무들', '저승에 간 프로메테우스', '과거가 없는 도시들을 간략하게 안내하기', '추방된 헬레네', '수수께끼', '티파사에 돌아오다', '가장 가까운 바다―항해일지'가 그것이다. 박해현은 "소설가 카뮈의 내면에 깃들어 있던 시인의 감성이 물씬 풍기는 산문의 연속"이라며 "자연 관조와 도시 산책, 폐허 순례와 항해일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문의 형식과 내용을 보여줌으로써 카뮈의 소설과 희곡, 철학 에세이에서는 맛보기 힘든 언어의 향연이 풍성하다"고 썼다.

▲청춘의 에너지를 산문에 음각한 알베르 카뮈. [위키백과]

 


'자정에, 해변에 홀로 있다. 더 기다릴 것, 그리고 나는 떠나리라. 이 시간에 세상의 모든 항구에서 어두운 물을 비추는 불빛에 감싸인 선박들처럼 하늘 그 자체는 모든 별빛과 더불어 멈춰 있다. 공간과 침묵이 한 묶음으로 가슴을 짓누른다. 어떤 돌연한 사랑, 어떤 위대한 작품, 어떤 승부수, 어떤 변혁 사상은 어느 순간 거역할 수 없는 매혹과 함께 견딜 수 없는 불안까지 안겨준다. 존재의 감미로운 고뇌, 우리가 그 이름을 모르는 위험의 미묘한 근접성, 그렇다면 산다는 것이란 제 패배를 향해 달려가는 것일 까? 새로이, 쉼 없이 우리의 패배를 향해 달려가자. 나는 언제나 난바다에서 위협에 시달리며 살면서도 으뜸가는 행복의 한복판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카뮈는 항해일지 '가장 가까운 바다'에서 "쉼 없이 패배를 향해 달려가자"면서 먼 바다 높은 파도 속 '난바다의 위협'도 으뜸가는 '실존의 행복'을 방해할 수 없다고 썼다. 황홀하게 아름다운 세계와 결혼식을 올리는 날의 행복을 노래했던 카뮈는 부조리하고 아이러니한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남긴 '죽음의 중력에 저항하는' 글의 힘은 여전하다. 오랜 생업에서 놓여나 카뮈와 더불어 청춘을 되새김한 박해현은 "젊은 날의 내 가슴에 와닿은 카뮈의 언어를 나름대로 끄적끄적 옮겨보고, 오늘의 젊은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욕심이 앞선 나머지 새 번역이라는 모험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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