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마약에 빠진 탈북민④] 중국에서 동남아로 활동무대 옮기는 탈북 마약사범

특별취재팀

realsong@kpinews.kr | 2022-11-10 14:41:33

처음 생활고 탓에 손대…교도소서 인적 네트워크 쌓아
국제특송 활용한 '던지기' 등 수법 갈수록 교묘해져
동남아 생산된 필로폰, 대림동 등 국내서 버젓이 판매

▲ 베트남 호치민에서 최고급이자 초고층 주거시설로 유명한 랜드마크81. 탈북민 최정옥 씨는 사람들 눈을 피해 여기서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채원 기자]

올 4월 최정옥 씨 검거는 국내 탈북민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소문만 무성하던 '탈북민 마약상' 실체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검거 전까지 최 씨는 수사당국 추적을 따돌리며 동남아 일대에서 활약했다.

최 씨가 이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게 된 배경은 복합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마약수사관은 "종종 수사당국이 체포된 마약사범에게 '또 다른 조직책을 불면 형을 감해주겠다'는 이른바 '플리바게닝(유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증언을 하는 대가로 검찰 측이 형을 낮추거나 가벼운 죄목으로 다루기로 거래하는 것)을 제안하는데, 최 씨는 그걸 잘 이용했다. 나중에는 이를 경쟁자 검거에 악용했다. 그랬기에 금세 거물급으로 클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감옥생활은 그가 거물 마약상이 되는데 날개를 달아줬다. 수차례 교도소를 오가면서 최 씨는 그곳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쌓았다.

▲ 11월3일 베트남 호치민 랜드마크81에서 직원이 전망대 티켓을 판매하고 있다. [서창완 기자] 

"이 세계에서 '최정옥' 같은 사람이 또 나오긴 힘들어요. 언론이 제발 소설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필로폰 불법 유통으로 실형(3년)을 살고 나온 후, 지금은 서울 방배동에서 작은 배달음식점을 운영하는 정상용(가명·52) 씨는 최 씨 이름이 나오자 손사래부터 쳤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최 씨 사례는 여러가지 상황이 맞물렸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마약왕'이라는 별칭도 과분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팬데믹 이후 북·중 교역이 중단된 점, 중국 내 마약 단속이 강해지면서 중국 조직이 대거 동남아로 옮겨간 것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탈북민과 조선족이 손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탈북민 김철수(가명·48) 씨도 "베트남에서 1~2명의 탈북민이 현지 조직과 결탁해 대량의 필로폰을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으로 팔고 있다는 소리는 들었다"면서도 "그들이 어디 출신이고 이름이 누군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던지기 수법으로 유통…지난해 검거 과정에서 경찰 부상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중국-인천은 북한산 빙두(氷豆·필로폰)의 '주 판매루트'였다. 수화물에 숨기는 등 수법은 갈수록 다양해졌다. 중국 대신 동남아, 화물선 대신 항공기 국제특송으로 수법은 더욱 교묘해지는 추세다. '던지기'도 그중 하나다. 예전에는 사람이 직접 물건을 가져다 줬다면 지금은 인터넷으로 물건을 보내거나, 사전에 약속된 모처로 물건을 보내주면 국내 판매자가 찾아가는 방식이다. 돈은 미리 해외계좌로 보내준다.

경찰은 몇 해 전부터 전북 전주의 모 아파트로 마약이 해외배송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잠복 수사 과정에서 국내 판매책으로 보이는 이가 노인에게 물건을 받아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경찰 수사에서 이 노인은 "아는 사람이 해외에서 온 물건만 받아주면 된다길래 열어보지도 않고 오는 사람에게 물건을 전해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3월 국내 판매책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여러 마약수사대 수사관들이 다쳤다. 

수사당국은 최 씨 빈자리가 누군가로 채웠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그 대상이 꼭 탈북민이라고 단정지을 순 없다.

수사당국은 현재 최 씨 뒤에 중국 마약상이 있고, 그 뒤에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대형 마약상 김 모 씨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씨는 국내 마약 세계에서 '부산 노인네'로 통하는 인물이다. 이들에게 건너간 마약은 대만 죽련방, 일본 야쿠자 등 대형 폭력조직 자금원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2021년 3월11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의 한 아파트에서 마약사범을 검거하던 전북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소속 경찰이 승용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북소방본부 제공]

2010년대 만 해도 국내 마약 사범들은 주로 북한산 마약을 취급했다. 1998년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 전신) 자료에 따르면, 1990년대 북한산 빙두 순도는 98%였다.

소위 '약쟁이'로 불리는 마약 사범들 사이 북한산은 그야말로 최상급이다. 한 마약수사팀 관계자는 "과거 0.03g당 순도가 98~100%로 판정될 경우 무조건 '북한산'으로 통했다. 마약사범들에 따르면, 북한산은 경험해보면 특유의 깔끔함이 단번에 느껴진다"고 밝혔다. 얼마 전까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0년대 북한은 동북아 마약 생산기지였다. 북한은 지리적으로 러시아, 중국과 접해 있다. 그중 나진·선봉 특구 건너편인 러시아쪽 국경은 경비가 삼엄해 밀무역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수사당국은 북한산 마약 상당수가 중국으로 흘러들어가 우리나라와 일본, 동남아 등지로 퍼졌던 것으로 본다.

코로나에 강화된 단속으로 북·중 거래 막히자 동남아로 이동

중국 당국도 201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 마약 통로가 자국 랴오닝성, 지린성 등 북·중 국경지역으로 파악했다. 동북지역이 국제 밀매조직 환승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곳은 3명의 북한주민이 마약을 생산하면 3명의 조선족 또는 중국인이 이를 운반하고, 3명의 일본, 한국인 등 외국인이 물건을 가져가는 이른바 '3-3-3'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탈북민 최정옥 씨는 지난해 4월 태국에서 현지경찰에 검거됐다가 법원에 보석 신청을 해 풀려났다. 11월2일 태국 방콕 구도심지 라차담넌 클랑 거리. [서창완 기자]

2018년 함경북도 무산에서 살다 탈출한 태성길(가명·41) 씨는 북한에 있을 때 '투잡(Two-Job)'을 뛰었다. 낮에는 공무원 일, 밤에는 밀무역을 했다. 중국에서 물건을 떼어와 장마당에 내다파는 일이 주 수입원이었던 그가 당시 주로 판 품목이 빙두다.

태 씨는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 정부 단속이 심해진데다 최근 코로나19로 대외교역이 막히면서 북한산이 크게 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에서 활동한 무국적 탈북민들이 동남아로 속속 모이고 있다고 한다. 한 수사당국 관계자는 "최근 검거된 한 탈북민은 중국 공안에 잡히자 뒷돈을 주고 빠져나온 뒤, 베트남으로 밀입국해 활동했다"고 말했다.

국내 탈북민들 이야기를 종합하면, 베트남 북부 꽝닌성 접경도시 몽까이, 뚱신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주요 밀입국 루트였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 단속이 심해지자 최근 태국, 라오스쪽으로 바뀌고 있다.

이수진(동작을) 민주당 의원실이 관세청으로부터 받은 '적출국별 마약밀수 단속현황'에 따르면, 2017년은 미국(34.5%), 중국(24.9%), 태국(10.9%), 캐나다(5.8%) 순이었다. 이랬던 것이 올 8월말 미국(25.3%), 중국(19.1%), 태국(14.9%), 라오스(13.7%)순으로 바뀐다. 미국과 중국의 경우 순위는 1~2위였지만 양이 준 반면, 태국과 라오스는 압수량이 늘었다.

지난해 대검은 관련 자료를 펴내면서 "메콩강 유역 골든트라이앵글 지역, 베트남, 캄보디아 지역에서의 필로폰 생산이 늘어났는데 이는 국제마약조직이 수사기관의 단속을 피해 중국 내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영향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019년 동남아산 필로폰 압수량은 141t으로 10년 보다 12배나 늘었다.

▲ 동남아 마약 밀수입 조직의 총책인 탈북민 최정옥 씨가 경찰-국정원 공조로 검거돼 4월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강제송환되고 있다. [뉴시스]

최 씨를 비롯해 동남아 마약상들의 생활은 호화롭다. 최 씨는 베트남 호치민 초고층 주거지 랜드마크81을 은신처로 삼았다.  이곳 주변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상업용 빌딩, 국제 학교, 국제 병원 등이 있어 외국인들도 많이 산다. 외국인의 존재가 어색하지 않은 이곳에 최 씨가 자연스레 섞여들었으리라 짐작케 하는 환경이다. 

장단기 숙박을 알선하는 현지 한인 사업가 A 씨는 기자에게 "이곳엔 베트남 최고위층이 많이 산다"며 "안팎 경비도 삼엄하지만 공안(경찰) 단속도 뜸한 곳"이라고 전했다. 일반 거주지처럼 공안이 단속을 벌였다간 '고위층 입주자'의 민원이 빗발칠 것이란 얘기다.

태국에선 수사당국에 붙잡혔다 거액을 보석금으로 내고 풀려나왔다. 그가 캄보디아에서 붙잡힌 것도 마약을 판 돈으로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던 중 환전을 위해 자신의 여권사진을 외부로 유출시켜서 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마약수사관은 "다른 마약사범들의 생활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대림동 등지에서 중국으로 역수출되는 상황

동남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사이 상대적으로 북한산 위세는 시들해졌다. 품질도 많이 떨어졌다. 태 씨 설명이다. "빙두에도 A, B, C급이 있습니다. C급은 머리가 띵해요. 해본 사람은 다 알지요. 예전에는 순도가 100%에 육박했는데. 지금은 있는 재료를 재탕, 삼탕해 쓰니 순도가 1%대라고 합니다."

값도 많이 뛰었다. 2000년대 중국 단둥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했다는 한 탈북민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바로 중국 현지와 전화통화를 한 후, "2017년까지만 해도 미화 100달러면 30g 정도 샀는데, 지금은 100달러 주면 1g 정도 산다고 하니, 엄청나게 비싸진 것"이라며 치솟은 값에 혀를 내둘렀다. 

▲2018년 9월9일 북한 양강도 혜산시 장마당 모습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제공]

지난해 3년형을 살고 나왔다는 한 60대 탈북민은 "최근에는 동남아에서 생산된 마약이 국내로 들어와 중국으로 역수출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현재 서울 대림동에서 거래되는 빙두가 0.7g에 1200위안(23만 원)인데 중국 다롄에서 거래되는 시세가 4000위안(78만 원), 내륙으로 가면 6000위안(118만 원)이다. 이제는 동남아 빙두가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가는 세상이며 그 과정에서 탈북민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탈북민 사회는 우리 사회의 또다른 그림자다. 우리사회는 자유를 찾아온 이들에게 따뜻함 만을 주지는 않았다. 최 씨가 마약왕이 된 것은 작금 사회구조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탈북민 마약왕 최정옥 씨 체포로 끝일 리 없다. 정부가 탈북민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지 않는한 마약에 빠져드는 탈북민들은 계속 꼬리를 물 것이다. 그 중 누군가는 마약을 공급하며 떼돈을 버는 제2의 최정옥이 될 터다.

KPI뉴스 / 베트남(호치민)·태국(방콕)=특별취재팀 송창섭·서창완·조채원 기자 realson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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