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폭력을 끝장낼 아름다운 총이 있을까요"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2-11-03 16:28:14
역사 속 폭력과 현재형 폭력이 만나는 반복되는 구조
'대의'라는 명분 뒤에 숨은 숙명적인 폭력과 피의 냄새
정교한 퍼즐 맞추기로 반전을 이어가는 흥미로운 소설
-장미총은 여왕벌 같아요. 모든 벌들이 여왕벌을 향해 움직이듯 우리는 장미총이라는 명분 아래 움직이는 거죠. 엄밀히 말하면 부장님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닙니다. 장미총은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대의를 위해 쓰이는 모든 총이 장미총이지요.
그 총은 아름다웠다. 황금무늬 상감 기법을 이용해 제작된 총신, 손잡이에 촘촘히 박혀 있는 보석 장식 같은 요철, 중세시대 숙련된 장인이 수공으로 제작하던 화려한 칼집 같은 총이었다. 유럽 왕비의 호신용으로 만든 그 수제총의 이름은 '장미총'. 김경순 장편 '장미총을 쏴라'(은행나무)의 문제적 인물 한옥인에게 그 총은 '살상의 위엄' 때문에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기실 아름다운 총이라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살상을 전제로 만든 무기가 아름답다는 건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작가 김경순은 이 장편 서두에 '총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살상의 위엄 때문'이라고 아예 명패를 세워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인턴기자로 입사한 잡지사 '건'에서 한옥인은 같은 수습기자 진명유와 함께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벌인다. 한옥인은 경쟁에 휩쓸려 초조한 나머지 창간 특집호 기획으로 '건 배틀'을 제안한다. 이전에 노숙자를 표적으로 은밀하게 배틀을 벌였다가, 이 사실이 발각될까봐 김수정이라는 전임 기자가 감쪽같이 살해당한 것으로 의심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제안한 배틀은 그나마 사람 대신 고양이를 표적으로 폐쇄된 놀이공원, 코끼리 다섯 마리는 수용함직한 대형 컨테이너 안에서 진행된다.
장미총에 걸맞은 손가락 구조를 지녔다는 명분으로 한옥인도 배틀에 참여한다. 장미총이란, 사장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가문의 굵직한 뼈대를 자랑하는 상징적인 물건이다. 한옥인이 배틀에서 겨누었던 이 아름다운 총은 고양이 대신 곁에 있던 사장을 쏘았고, 잇달아 자신을 겨누던 차장을 향해 응사해 결국 두 사람이 죽었다. 한옥인의 미필적 고의와 정당방위는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들은 크게는 두 번에 걸쳐 뒤통수를 잡아야 한다. 과연 사장의 가문이 독립운동은커녕 밀정 역할을 하다가 해방 후 일본인 지주가 남기고 간 토지를 자신의 명의로 돌려 떵떵거리고 살아온 것인지, 한옥인의 선대야말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모두 빼앗기고 억울하게 죽어간 것인지, 이 모든 이야기의 진실은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무엇보다도 독자들은 마지막 반전에 이르러 다시 책장을 앞으로 넘겨 처음부터 꼼꼼히 퍼즐을 맞추어야 할 터이다.
올해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돼 출간된 이 장편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찬사를 보냈다. '허구와 현실, 과거와 현재, 정의와 폭력의 경계가 모호해지기에 다양한 독법으로 읽을 수 있는 생산적인 소설'(김미현)이고, '우리 소설사는 강력한 반전(反戰)소설과 정교한 반전( 反轉)소설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류보선)고 했다. 수상자 김경순은 2004년 '문학수첩'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와 2030의 사랑과 연애 방식을 다룬 장편 '21', 김만중문학상을 받은 성장소설 '춤추는 코끼리', 질투와 권력의 관계를 천착한 '빌바오, 3월의 눈' 들을 펴내며 꾸준히 작품활동을 펼쳐왔다. 이번 소설은 다시 새롭게 '총'을 소재로 '폭력'을 거시적으로 천착한 세계를 보여준다.
"10년 전쯤 이 소설을 구상했는데 당시 국내에서도 인터넷으로 팔고 사는 이른바 '고스트 건'이라는 사제총이 이슈가 됐어요. 미국 총기 난사에 대한 뉴스들은 자주 올라오곤 했지만 그냥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넷으로 옷을 구매하듯 총을 구입하는 사태가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진 것이거든요. 전쟁터에서나 사용되는 것처럼 멀리 느껴지던 총이 굉장히 가까이 다가오면서 구체적으로 소설 작업을 시작했어요."
전화로 만난 김경순은 실제로 짧게 경험한 잡지 기자 경력을 살려 소설 속에서 '총' 관련 잡지사를 배경으로 구체적인 퍼즐을 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뱀이라고 착각한 총기를 담은 액자로부터 소설은 시작한다.
-박제된 뱀이었습니다. 독을 품은 송곳니를 긴 혀 사이에 숨기고 먹잇감을 향해 돌진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게 발밑에 있었으면 도망쳤겠지만 액자에 갇혀 있었으므로 저는 두려우면서도 호기심에 다가갔습니다. …총신이 1미터에 이르는데다 검정 벨벳 같은 표면에 황금 무늬가 양각되어 있어서 검은 뱀으로 착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장미총이라는 게 실제로는 없지만, 여러 가지 총을 조사하면서 굉장히 아름다운 수제총들을 봤어요.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도 살상을 전제로 한 총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가 싶었어요. 대의를 위한 발사라면 그런 총이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작가의 말'에 "우리 역사의 한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역사의 폭력과 폭력의 역사가 반복되고 되물림되는 지점들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역사의 폭력'과 '폭력의 역사'는 어떻게 다른가.
"역사의 폭력이라고 하면 역사에 방점이 있는 거죠. 역사 속 과거의 폭력들에서 총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이미지로만 남지만, 폭력의 역사는 폭력에 방점이 찍히면서 현재진행형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결국 역사가 된 폭력과 현재의 폭력이 자리바꿈을 하면서 계속되는 거죠."
소설을 읽어나가는 재미와는 별도로, '대의'라는 명분에 감춰진 폭력과 피의 냄새를 탐색하게 만드는 주제도 묵직하다. 장미총은 대의를 실천하기 위해 꺼내는 불가피한 폭력의 상징일까. 한옥인의 '대의'와 사장의 '대의'는 어떻게 같고 다를까. 건 배틀을 앞두고 일장연설을 하는, 한국에서도 총기 소지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장의 대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 추진하고 있는 총기 소지 허용 문제는 넉넉잡아 3, 40년 후부터는 가시적인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제 살아생전에는 빛을 못 보겠지만 도저한 역사의 흐름을 타고 제 자손들은 찬란한 빛을 볼 것입니다. 처음에야 반대를 하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만 있다면 국민들은 어떤 경우에도 인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걸 건드리기만 하면 세상은 쉽게 컨트롤되는 법이지요. 피가 누적되면 힘이 됩니다. 영광스러운 역사를 위한 피의 누적입니다. 오늘 쏘게 되는 한 발의 총알은 피의 누적이자 대한민국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지키기 위한 축하포가 되리라 믿습니다.
"크게 보면 권력이나 사람의 본성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모든 소설이 그러하겠지만 권력을 지향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 속에 깃든 선과 악, 질투와 사랑 이런 것들 말이죠. 제가 써 온 대부분 소설들을 보면 누군가 권력을 가지고 있고 주변 인물들이 그 권력에 휘둘리는 모습들이 공통으로 나오는 것 같아요. 이번 소설에도 그런 것들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현'이라는 인물이 감옥에 갇힌 한옥인을 면담해 그녀의 구술을 일인칭으로 풀어내는 형식이다. 현은 추리소설가 지망생이기도 해서, 나중에 쉽게 소설로 살을 붙이기 위해 이 형식을 채택한 것인데 그는 "누군가의 실제 이야기라 해도 소설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삶을 완벽하게 복기하기란 불가능한 것이고 모티프의 살을 붙이다 보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면서 "그게 픽션의 묘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물론 김경순의 생각이기도 할 터인데, 그는 "허구를 담는 소설 중에서도 추리소설이야말로 허구의 세계를 좀 더 완벽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활자 중독에 빠져 세계문학전집을 뜻도 모르고 읽었어요. 대학교 때도 도서관에서 살면서 전공 공부를 안 하고 소설책을 주로 읽으면서도 소설 쓸 생각을 한 번도 안 한 거죠. 서른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내일 당장 죽는다면 뭘 후회할까 생각했을 때, 왜 그동안 소설 쓸 생각을 못 해봤는지 돌아봤어요. 그때부터 소설을 시작하게 됐는데 소설을 쓰고 있는 순간 만큼은 내 현실을 잊을 수 있고,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등단 이후 줄곧 장편에 집중해온 김경순이 들여다보는 세계는 다양하다. 이 즈음에는 초고를 끝낸 역사소설에다 또하나의 추리소설을 집필하는 중이며 가상세계까지 탐험하는 중이다. 그는 "다양한 컬러를 가진 소설들을 쓰고 싶다"면서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하고 동시에 문장이 좋아야 한다는 이 두 가지가 최고의 목표"라고 했다. 덧붙이는 작가의 말.
-불안을 다독이고, 질투를 느끼지 않는, 나를 숨 쉴 수 있게 해준 유일한 것이 소설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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