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마약에 빠진 탈북민②] 치료약 부족하다고 마약?…밑천 드러난 '의료천국' 민낯

특별취재팀

realsong@kpinews.kr | 2022-10-19 14:33:17

함흥 화학공장 출신 근로자가 시작…장마당 성행 이후 약물 오남용도 심각
마약 성분 함유 중국산 거통편도 거래돼…국내 탈북민도 중국에서 밀수
의료 시스템 못 미치는 오지에선 진통제 대체 목적으로 양귀비 재배

▲ 9월13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 바라본 북한 신의주. 왼쪽 다리가 북한과 중국을 잇는 철교이며, 오른쪽이 끊어진 조중우호교다. [백종범 전 단둥한인회장 제공]

"얼마나 걱정했게요. 이제야 한 시름 놨습니다."

평안북도 용천에서 살다 2011년 탈북한 김경만(42·가명)씨는 최근 북한에 있는 어머니와 통화했다. 직통은 아니다. 중국의 북한 접경지역 브로커에게 전화를 걸면 중국 브로커가 북한 브로커에게 전화를 걸어 전화기 두 대를 맞대 통화하는 방식이다.

휴대전화(북한에선 손전화라고 불림) 보급이 늘면서 이런 방식의 화상 상봉이 이뤄진지는 꽤 됐다. 주로 안부를 묻고, 브로커를 통해 보낸 생활비가 제대로 전달됐는지 확인한다.

"최근 북한에서 코로나 변이가 퍼진다고 하니 단번에 엄마부터 생각나더군요. 제가 큰아들이라서 더 그런 거 같아요. '여기도 이제 마스크 안 쓰고 다닌다. 너무 걱정마라'고 말씀하시니 안심이 됐지요."

김 씨는 "북한 의료시스템이 엉망인 건 여기(남한) 사람들도 다 알텐데, 우리 엄마가 올해로 80이니 어찌 걱정이 안 되겠냐"고 했다.

북한의 마약은 엉망이 된 북한 의료시스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의료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보니,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이 부실하다보니 장마당 등을 통해 마약이 널리 퍼지고, '인민'들의 경계심도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북한 보건의료시스템은 사회주의국가답게 무상이다. 1946년 사회보험법으로 만들어진 의료시스템이다.

北, 1946년 사회보험법 제정하면서 지역별 주치의제 도입

호(戶)담당의사제도 시행 중이다. 의사 한 명이 지정된 200~300개 호를 돌아다니며 환자를 돌보는 구조다. 지역별 주치의 시스템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고려의학'이라고 불리는 한의학을 일반의학과 같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특이점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합리적이며, 이상적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시스템은 붕괴됐다. 1990년대 김정일 집권 시기 발생한 대규모 식량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은 북한 사회를 180도 바꿔놓았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전 북한으로 의료지원사업을 벌인 한 국내 민간 지원단체 관계자는 "북한 의료시설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전력난으로 기본적인 수술조차 하기 힘들다. 창밖에서 거울로 햇빛을 반사시켜 수술실을 밝히는 일도 다반사라고 한다. 수술 중 전기가 중단된 일도 여러 차례였다.

약품도 제 때 공급되지 못한다. 사이다병, 맥주병을 소독해 링거 병으로 쓴다. 청진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하다 2000년대 초반 남한에 들어와 한의사로 활동 중인 김지은 씨는 "다른 의사가 갖고 있는 병을 훔쳐오기도 했다. 병 10개를 가져가야 소독된 병 10개를 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장마당에서 구입이 가능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사기는 소독해 다시 썼다.

▲ 2006년 11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창바이현 조선족들과 북한 함경남도 혜산시 주민(오른쪽)이 대화하는 모습.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 제공]

2011년 김정은 집권 이후 의료시스템이 나아지긴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전인 2018년 북한을 다녀온 이주성 탈북민간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2000년대 초반 만 해도 맥주병 링거 같은 것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4년 전 방북 때는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자신이 본 것이 평양 일부 시설이기 때문에 전체 실태를 파악할 수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평양거리 야경이 달라진 것만 해도 최악의 전력난은 벗어난 것으로 볼 때 의료시설 전력상황도 나아졌을 거라고 본다"고 밝혔다.

서구사회와 같은 의료수준이 아닌 것은 북한도 시인하는 바다. 북한은 지난해 6월 국제 보고서(VNR·Voluntary National Review)에서 기초 공중보건 시스템은 매우 취약하다고 시인했다. 특히 의료기기를 만드는 제조시설과 필수 의약품 공급 상황이 세계보건기구(WHO) 의약품 제조·품질관리(GMP)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국가 차원 공급은 꿈꾸기 힘들다. 나머지는 민간에서 알아서 해결하는 구조다. 한마디로 각자도생이다. 한의사 김 씨는 "최근 탈북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부 호 담당 의사가 장마당에서 구입한 의약품으로 치료하고 수고비를 받는 자본주의식 시스템도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 처방 없이 항생제 장마당에서 구입해 식염수 섞어 사용

되레 장마당 체제가 자리잡은 후부터는 약물 오남용이 큰 문제다.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제 가루를 장마당에서 구입해 식염수에 타서 주사를 맞는 식이다. 김 씨는 "중국산 가짜가 범람하면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 도움 없이 마음대로 맞다보니 약품 오남용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 마약이 탈북민들의 고된 삶에 똬리틀고 있다. 사진은 UPI뉴스가 굵은 소금으로 연출한 빙두(필로폰) 이미지. [이상훈 선임기자] 

일부 지역 장마당에선 빙두(필로폰·氷豆)가 버젓이 거래되고 있다. 탈북자 다수 이야기를 종합하면 2000년대 중반부터 국가주도로 제조된 빙두는 민간으로 급속도로 퍼졌다. 이 과정에서 '소분집' '두부집'이라고 불리는 판매처도 생겨났다. 빙두는 제조 시 악취가 난다. 이런 이유로 인적이 뜸한 오지에 생산시설이 갖춰져 있다.

한 탈북자는 "함흥에 있던 흥남화학공장과 같은 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먹고 살 방법이 없어지다 보니 뭘 했겠는가. 원료만 있으면 설비 갖추기도 쉽다. 이들이 민간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빙두가 빠르게 퍼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탈북자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3일장을 해야 하는데 큰 형이 '이거 한번 해보라'고 내밀었다. 대략 2001년도로 기억되는데. 그 땐 그게 약인 줄 알았다"고 설명했다.

당 간부이거나 무역상 등 고위층 사회에서도 쉬쉬하는 분위기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의 마약 중독자들은 암암리에 '49호'로 불리는 정신병원에 격리돼 치료받는다고 한다.

유사 약품도 버젓이 팔린다. 거통편이 대표적이다. 마약 성분이 함유된 거통편은 북한에서 만병통치약처럼 쓰인다. 어떤 부위를 막론하고 몸에 통증이 있으면 대부분 북한 주민들은 이 약을 복용한다. 상당수가 무역상을 통해 중국에서 수입된 것들이다. 가짜도 넘쳐난다.

거통편은 마약성분이 함유돼 있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선 수입금지 품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탈북자는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 중 중국에서 국제우편을 통해 사오는 경우가 다수 있다"고 말했다. 이 탈북자는 "마약 성분이 들어가 있는 걸 알면서도 여기에 길들어져 있어 중국산 거통편을 쓴다"고 밝혔다.

"대마 씨로 국수 만들 정도로 마약에 대해 몰랐다"

마약성분이 들어 있어 북한에서도 양귀비는 국가주도로 관리된다. 은어로 '백도라지'다. 탈북자들 다수 이야기를 종합하면, 200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은 양강도 천수리 대규모 협동농장에서 양귀비를 재배했다.

청진의과대학을 졸업한 김 씨는 "고산지대에 위치한 천수협동농장에는 전국 12개 의과대학 별로 관리지역이 나뉘어 있었다"면서 "수확기엔 학생들이 직접 현장으로 가 양귀비 수액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양귀비에서 추출한 아편은 진통제를 만드는 데 쓰였다.

하지만 지금은 집집마다 2~3송이씩 양귀비를 재배하는 일이 흔하다. 이 과정에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마약류를 접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북한에서 대마는 '역삼'으로 불린다. 씨를 갈아 콩국수를 만들어 먹을 정도로 대마 심각성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 양강도 출신으로 남한에 정착한지 6년이 다 돼가는 김미정(가명) 씨는 "여기 사람들이 여름에 즐겨 먹는 콩국수랑 맛이 똑같다. 얼마나 고소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인민학교(초등학교) 시절 학급마다 할당량이 있어 역삼을 수확해 학교에 내곤 했다"고 한다.

대마씨 국수가 환각작용까지 일으키는 건 아닌 모양이다. 김 씨는 "조금 자극적이다. 입안이 '화'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역삼 씨앗에서 짜낸 기름은 공장 등에서 많이 쓴다. 다수 탈북민들은 "역삼이 마약류라는 것을 남한에 와서 처음 알았다"고 말한다. 그만큼 남한과 북한 사이 마약류에 대한 인식 차는 상당하다.

KPI뉴스 / 특별취재팀 송창섭·김해욱 기자 realson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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