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4개 점령지 합병투표 가결…서방, '가짜투표' 불인정
김당
dangk@kpinews.kr | 2022-09-28 11:21:24
푸틴, 30일 합병선언·상원, 4일 처리…합병절차 속전속결 예상
젤렌스키 "푸틴과 대화 무의미"…서방 "4개 지역 우크라 영토"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남부 4개 지역의 러시아 편입에 대한 주민투표가 27일(현지시간) 종료된 가운데, 4개 지역 모두에서 유권자의 90% 이상이 러시아 편입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저녁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 및 루한스크 인민공화국(LPR)과 남부 자포리자 및 헤르손 지역에서 주민투표가 종료된 가운데, 잠정 집계된 지역별 찬성률은 DPR 99.23%, LPR 98.42%, 자포리자 93.11%, 헤르손 87.05% 등 순이었다.
최종 결과는 앞으로 5일 내 확정된다.
타스 통신은 불가리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독일, 세르비아, 모잠비크, 프랑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국제 참관단은 우크라이나의 위협과 포격을 제외하고는 위반 사항이 없다고 보고했으며 유권자들의 열의에 주목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서방 언론들은 러시아군이 현지를 점령한 가운데 선관위가 주민들을 방문해 투표를 강요했으며 비밀투표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논란이 선거기간 내내 끊이지 않았다며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은 이번 선거를 '무의미한 가짜'라고 일축했다고 보도했다.
AP 통신은 이날 저녁 "수만 명의 주민들은 전쟁 때문에 이미 이 지역을 떠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공유한 이미지에는 무장한 러시아 군대가 집집마다 방문해 투표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돌격소총을 든 남자가 당신 집에 와서 투표해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냐?"라고 반문하며 "도네츠크 주민투표에서 남은 주민 10만 명 중 20%만이 투표에 참여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의 수개월 간에 걸친 포위 공격과 점령 뒤에 도시를 떠나야 했던 보이첸코 시장에 따르면, 마리우폴의 전쟁 전 인구는 54만1000명이었다.
이번 주민투표는 우크라이나 전선 전역에서 교전이 지속될 정도로 점령지 상황이 불안정한 가운데 전격적으로 치러졌다.
우크라이나가 동부 하르키우 주를 대부분 탈환하고 헤르손과 루한스크 주까지 위협하는 등 전황이 급변하면서 투표 일정이 갑작스럽게 정해진 것이다.
러시아는 주민투표를 통해 4개 지역 점령지를 러시아 영토로 공식화함으로써 영토 방어라는 전쟁 명분을 강화하고 자원 동원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합병 주민투표를 하겠다는 것은 러시아가 꾸민 것으로 러시아군이 현재 처한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려는 정보작전일 뿐"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실제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주민투표 일정이 결정된 이튿날인 지난 21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동원령을 발동해 이를 뒷받침했다.
또한 푸틴은 21일 대국민 연설에서 이번 투표를 통한 영토 합병 이후 전쟁의 성격이 바뀌게 될 것임을 예고했다.
즉 지금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주민을 보호한다는 '특별 군사 작전'을 벌여왔다면, 앞으로는 자국 영토에 대한 침공을 방어하기 위한 외부 세력과의 전쟁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특히 푸틴은 영토 보전이 위협받을 경우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자위력을 동원해 방어하겠다는 원칙도 천명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인도 27일 투표 후 "법적 관점, 국제법 관점에서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최종 개표 결과가 확정돼 영토 편입안이 가결되는 대로 후속 절차를 서두를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국방부는 "푸틴 대통령이 오는 30일 러시아 의회에서 상·하원 연설이 예정돼 있다"며 "이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점령지의 러시아 연방 가입을 공식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AP에 따르면,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 의장은 오는 10월 4일 합병 법안 처리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2014년 3월 크림반도 합병 때도 주민투표 이튿날 푸틴 대통령이 합병조약을 체결하며 영토 귀속을 기정사실화하고 이후 의회 비준과 합병 문서 서명까지 1주일만에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주민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영토 탈환 공세를 지속할 계획이다.
투표가 종료된 이날도 우크라이나군은 오스콜강 왼편에 위치한 도시형 정착촌인 쿠뱐스크-우즐로비(Kupyansk-Uzlovy)를 해방시켰다고 발표했다. 이곳은 하르키우 지역에서 가장 큰 물류 철도 인터체인지 중 하나이다.
우크라이나의 탈환 공세에 호응한 러시아 점령지에서의 저항 운동도 예상된다. AP는 헤르손 지역의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율에 주목해 "그곳의 러시아 당국이 강력한 우크라이나 지하 저항 운동에 직면했다는 것을 설명해준다"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가 사이비 투표를 정상으로 간주한 소위 '크림반도 시나리오' 실행에 이어 또다시 우크라이나 영토 합병을 시도했다"며 "이는 현 러시아 대통령과 할 이야기가 없음을 뜻한다"고 밝혔다.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장관과 회담에서 "푸틴의 이번 결정이 정치와 외교, 전장의 작전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콜로나 프랑스 외교장관은 프랑스는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지지하기로 결의했다면서 이번 투표를 "모의 국민투표(mock referendums)"라고 묘사했다.
제임스 클레벌리 영국 외무장관은 이번 투표가 푸틴 대통령의 "필사적인 조치(a desperate move)"라고 말했다.
앞서 영국 외무부는 26일 러시아가 주민투표를 벌이는 것은 명백하게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러시아 고위 관리 33명과 신흥재벌 등 55명, 푸틴 대통령의 선전 기관으로 알려진 IMA 컨설팅 회사 등을 추가로 제재 명단에 올렸다.
카린 장-피에르 미 백악관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러시아의 합병 주민투표는 국제법을 명백하게 위반한 사기 투표"라며 "러시아가 합병을 추진하면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함께 경제적 비용을 추가로 부과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서방 역시 우크라이나와 함께 이번 주민투표를 '가짜 투표'로 규정하고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모색하고 있어 전쟁의 장기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7일(현지시간) 뉴욕에서 회의를 열어 미국과 알바니아는 투표 결과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4개 지역은 우크라이나의 일부로 남아 있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상정할 계획이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그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확실하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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