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브레인' 노린 자동차 폭탄…러시아 내부 소행 가능성도
김당
dangk@kpinews.kr | 2022-08-22 13:05:32
러 야당 정치인 "反푸틴 국가공화군(NRA) 소행…저항의 새로운 장"
오는 24일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6개월을 맞이한 가운데, 모스크바에서 의문의 폭발 사건이 발생해 주목된다. 이를 구실로 전쟁을 확대할 수도, 어쩌면 이것이 종전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이자 극우 철학자·정치이론가의 딸이 모스크바 외곽에서 테러로 의심되는 자동차 폭발 사고로 사망했다.
친러 측에서는 이 부녀를 노린 우크라이나의 소행으로 몰아가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전쟁에 불만을 품은 러시아 내부 소행일 가능성도 제기돼, 이 사건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칠 여파가 주목된다.
타스통신 등 러시아 매체들이 21일 보도한 데 따르면, '푸틴의 브레인'으로 알려진 알렉산드르 두긴(60)의 딸인 다리야 두기나(29)가 전날(20일) 밤 9시30분께 아버지와 동행하기로 돼 있던 차량에서 의문의 폭발 사고로 숨졌다.
모스크바 수사당국은 용의자 파악 작업을 개시하고 현장 검증에 나섰다. 당국은 "폭탄이 운전석 차량 밑에 설치돼 있었다"며 "누군가의 지시에 따른 계획적 범죄"라고 밝혔다.
폭발은 그의 딸이 그와 함께 참석한 문화 축제에서 돌아오면서 발생했다.
아버지 두긴을 노린 범행이었을 것이란 추정이 나오는 가운데, 러시아 측 인사들은 우크라이나 정권이 배후에 있는 테러 행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 러시아 야당 정치인은 푸틴 정권 전복을 전념하는 지하 그룹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친러시아 세력인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데니스 푸실린 수반은 사건 직후 "다리야 두긴이 살해당했다"고 소셜미디어에 적은 뒤 "우크라이나 정권의 테러리스트들이 알렉산드르 두긴을 제거하려 했고 그의 딸을 차량 폭발 사고로 사망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당국이 두기나의 죽음에 우크라이나가 연루돼 있다고 판단하면 우크라이나가 '국가 테러리즘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의 개입 여부는 권한 있는 당국이 판단할 일"이라며 "실제로 그렇게 확인되면 우리는 국가 테러리즘 정책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보좌관인 미하일로 포돌야크는 21일(현지시간) TV로 방영된 논평에서 "우리는 러시아와 같은 범죄 국가나 테러국이 아니다"며 "이번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두기나의 친구인 러시아 사회운동가 안드레이 크라스노프는 이번 사고가 두기나의 아버지인 두긴을 겨냥한 것이라고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크라스노프는 "폭발한 차량은 두기나의 아버지 것이었다"면서 "두기나는 다른 자동차를 주로 몰지만, 오늘은 아버지 차에 탔고, 그의 부친은 다른 길로 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긴 본인과 딸이 (함께) 표적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반체제 인사인 일리야 포노마레프 전 러시아 두마(하원) 의원은 21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푸틴의 정치적 동맹군의 딸을 살해한 자동차 폭탄은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반정부 파르티잔(partisans) 지하그룹인 국가공화군(National Republican Army)의 소행이라며 그 배후에는 러시아 정당이 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끈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에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후 러시아에서 추방된 포노마레프는 "이번 행동은 최근 몇 달 동안 러시아 영토에서 자행된 다른 당파적 행동과 마찬가지로 NRA가 수행한 것"이라며 "이번 공격은 푸틴주의에 대한 러시아의 저항에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새롭지만 마지막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입국이 금지된 이후 2019년에 우크라이나 시민이 된 포노마레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반전 행동에 관한 뉴스를 제공하는 텔레그램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전 푸틴의 연설가이자 정치 분석가인 압바스 갈랴모프는 이번 공격을 크렘린궁 충성파를 겨냥한 "위협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적대행위가 러시아 영토로 자신 있게 이양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라며 "크림반도가 폭격을 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스크바 지역에서 이미 테러 공격이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드리 유소프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 대변인은 이 사건에 대해 논평하지 않겠다면서도 워싱턴포스트(WP)에 "루스키 미르(Russky Mir·러시아 세계)의 내부 파괴 과정이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며 "러시아 세계가 내부에서 스스로를 먹어 치울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내부 분쟁의 결과임을 시사한 것이다.
한편 AP 통신에 따르면 현지 당국은 두기나가 운전하던 도요타 '랜드크루저' SUV 차량이 수도 모스크바 서쪽 약 20km 지점에 있는 볼시예 뱌제미 근처를 지날 무렵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며 부서졌다고 밝혔다. 차에 불이 붙기 전 폭발 장치가 작동했다고 당국은 설명했다.
두긴은 러시아의 초국가주의를 주장한 철학자로 푸틴 대통령에게 주요 사안에 관해 조언하면서 '푸틴의 브레인'으로 불려왔다.
1997년 출간한 저서 '지정학의 기초: 러시아의 지정학적 미래'에서는 러시아의 패권을 되찾아야 한다며 우크라이나 병합 등을 강조했다. 아울러 "러시아는 유럽·미국과는 다른 가치관을 갖는 유라시아라는 독자적인 공간"을 갖는 별도 문명이라는 내용의 '네오 유라시아주의'를 주창하며 러시아 패권주의를 강조해왔다.
이 같은 활동을 배경으로, 두긴은 지난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뒤 미국과 영국 정부의 제재 명단에 올랐다.
이번에 사망한 두기나 역시 아버지의 사상을 공유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파병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로 방송 등을 통해 활동해왔다. 특히 '유나이티드 월드 인터내셔널'이라는 매체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관련 선전전을 주도해왔다.
미 VOA 방송은 22일 "이 같은 활동을 사유로 미국 정부는 지난 3월 두기나를 제재 명단에 올렸고, 영국도 지난달 제재를 단행했다"면서 "미 재무부는 '유나이티드 월드 인터내셔널'의 웹사이트를 허위 정보 사이트로 분류했다"고 보도했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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