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GM 밀포드 트랙에서 '고덕 택배 사태'가 떠오른 이유
김혜란
khr@kpinews.kr | 2022-08-01 05:58:27
지난 7월 27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간주 GM 밀포드 프루빙그라운드(성능시험장). 허머EV, 리릭 등 자동차 애호가들이 수년을 기다려온 전기차를 시승했다. 유서깊은 스포츠카 '콜벳', 고성능차 'CT5-V 블랙윙' 등에 올라 폭발적 배기음을 온몸으로 느끼기도 했다.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여운이 남는 차는 따로 있었다. GM의 전기화물차 브라이트 드롭 'Zevo600'이었다. 이국 땅에서 마주한 첨단 전기화물차는 서울 고덕동 아파트 택배 갈등을 떠올리게 했다.
지난해 벌어진 '고덕 택배 사태'는 '저상차 논란'으로 비화한 사건이다. '차 없는 아파트'를 지향하는 공원형 아파트에서 주민들도, 택배 기사들도 '길'을 잃었다. 아파트 측 요구대로 지하주차장으로만 출입하려면 높이가 낮은 저상차로 개조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수용키 어려운 일이었다. 노동계는 "택배기사들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적재량이 줄고 소득이 준다"고 했다.
Zevo600이라면 그런 갈등쯤은 한방에 해결될 거 같았다. 이 전기화물차의 핵심은 '전기 수레'인 트레이스. 이 수레가 택배 집하와 배송을 도맡는다. 집하는 각 업체에서 고객에게 보내는 물건을 수거하는 작업, 배송은 이렇게 집하처에 모인 물건을 각 가구에 배달하는 일이다.
트레이스는 '비행기 기내식 카트'를 떠올리면 쉽다. 배송지별로 분류된 트레이스는 Zevo600 화물실에 적재된다. 족히 20대는 들어간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트레이스가 자동으로 하차한다. 택배 기사는 이 트레이스를 챙겨 개별 배송을 시작한다.
택배기사 소득이 줄 일도 없다. GM에 따르면 트레이스 도입으로 작업량이 기존보다 25%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집하, 배송에서 전기 수레의 도움을 얻다보니 체력적인 부담도 덜하다. 고덕의 택배 노동자들은 화물실 높이가 낮은 차에 몸을 욱여넣었다. 무거운 물건을 한꺼번에 많이 수거해야할 때는 한숨만 내쉬었다고 한다. 택배노조는 "골병드는 지상차"라며 집단 산재신청을 하기도 했다.
Zevo600은 널찍하다. 엔진과 변속기, 연료탱크 등이 차지했던 공간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내연기관과 달리 바닥도 평평하다.
밀포드 트랙엔 노루가 뛰놀고 철새 가족이 오간다. 동화같은 풍경이다. 엔진소리 사라진 Zevo600이 그곳을 달린다. 지난해 고덕의 아파트에서도 이런 차라면 '환대'받지 않았을까.
기술혁신은 인간사 갈등을 부추기기도 하지만 한방에 해결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기술혁신은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밀포드 트랙에서 Zevo600를 몰며 스친 단상이다.
KPI뉴스 / 김혜란 기자 kh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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