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여자는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2-07-07 17:54:31
산업으로 체계화된 국가 간 입양에 대한 치밀한 비판과 울분 토로
같은 처지 입양인들과 부모, 친구 등 다양한 인물의 사연 함께 진설
"리듬과 호흡 중요하지만 인물들 따라가는 소설로도 읽어주길"
'여자는 여자가 입양되었기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가 입양되었기 때문에 기뻐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 여자는 자신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마야 리 랑그바드(42)는 덴마크로 입양된 한국계 여성이다. 그가 친부모를 찾아 한국에 왔고, 태어난 나라에 머물며 국가 간 입양에 비판적인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고 관련 공부를 해서 국가 간 입양에 관한 비판을 담은 책을 덴마크에서 펴냈다. 장시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그 안에 다양한 사람과 서사를 내포하고 있어 '소설'로도 읽힐 만하다. 이른바 '하이브리드' 장르로 분류될 법한 이 책은 최근 한국에서 '그 여자는 화가 난다-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손화수 옮김, 난다)으로 번역 출간됐다.
거의 모든 문장은 '화가 난다'로 끝나거니와 같은 구조 속에서 여러 이야기가 라임으로 출렁거린다. 김혜순 시인은 "한국인들이여, 자 이제, 우리의 진실을 마주할 준비를 하라, 우리가 전 세계에 버린 아이들이 돌아왔다"면서 "우리가 신봉하는 국가주의, 민족주의, 가족주의, 혈연주의, 순결주의, 가부장제가 어떻게 우리의 아이들을 비참의 고통에 몰아넣었는지 바라보라"고 추천사에 썼다. 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7일 서울 합정동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난 마야는 "모든 변혁의 시작에는 분노가 있었다"면서 "건강한 형태의 분노를 계속해서 모색할 때 그것이 변화의 불씨를 가져온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책을 펴내면서 화는 조금 풀렸는가?
"책을 쓰는 과정은 양면적이었다. 책을 쓰면서 그간 쌓아왔던 분노를 소화하게도 됐지만, 쓰면 쓸수록 더 알게 되는 국가 간 입양에 대해 새롭게 분노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책을 쓰는 과정이 입체적인 분노를 야기시켰고, 7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입양인으로서 우리는 일상에서 늘 감사하기를 요구받는다. 입양 인가를 받지 못했더라면 극단적인 환경에서 살아갈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강요를 받지만, 입양인으로서 우리는 건강하게 분노함으로써 자신에 대해 학습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
'여자는 자신이 수입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수출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어린이를 입양 보내는 국가는 물론 입양기관도 국가 간 입양을 통해 돈벌이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이 국가 간 입양을 통해 연간 1천5백만 달러를 벌어 들인다는 것을 깨닫고 화가 난다./ 여자는 입양기관이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는 일을 우선적으로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정체성과 뿌리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자각하게 됐는가.
"초기에는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주변은 모두 백인이었고 배운 생활 양식도 모두 백인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길거리에서 한국인 입양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점차 외면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내가 그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나에게 두 가지 정체성이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주변 한국 입양인들을 보면서 스스로 정체성을 찾기 시작하다가 한국에 오게 된 후로 작가로서도 개인으로서도 중요한 변화들이 생겼다. 양부모뿐 아니라 친부모와의 관계도 완전히 달라졌고, 동료들 사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바라보는 렌즈가 바뀌었다고 느끼는데, 그 과정이자 결과물이 이 책이다."
마야는 2006년 한국에서 친부모를 찾았고, 2007~2010년 한국에 머물러 사회운동가, 예술가, 학자들로 이루어진 입양인들과 교류했다. 2014년 덴마크어로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서울에서 쓰기 시작한 글이고 국가 간 입양을 통해 본 한국 사회를 담아낸 글이기도 해서" 마야는 줄곧 한국어로 소개되기를 바랐는데, 이번에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마야는 책 서두에 '인명 갤러리' 항목을 설정하고 같은 처지의 입양인, 홀로 자녀를 키웠던 여자들, 자녀를 입양 보냈던 여자들, 친가족, 통역사, 양가족, 연인까지 모두 거론했다.
'여자는 여자를 입양했던 양부모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곧 이혼할 부부에게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모국의 문화는 물론 친부모와의 이별까지 경험했던 아이를 입양해놓고 바로 이혼을 해버린 양부모에게 화가 난다.'
마야를 입양했던 양부모는 이혼을 했고, 그는 양모와 단둘이서 살았다. 양부는 췌장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도 그의 편지에 응답이 없었다. 양부의 아내 비베케는 어린시절 그가 양부의 집을 찾아가면 대놓고 싫은 티를 냈다.
-주어를 일인칭으로 하지 않고 '그 여자'로 내세운 이유는 무엇인가.
"길고 어려운 과정이었는데 친부모를 처음 만난 후 5년 동안 그들과 교류하지 않았다. 대화를 할 때마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느꼈다. 통역자가 동행해야 했을 뿐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어려웠다. 이 책에서 친부모에 대해 언급되는 대목은 모두 자전적인 것은 아니고, 여러 사람의 공통된 경험들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다. '나'가 아니라 '그 여자'가 주어가 되어야 했던 이유다. 쓰는 동안 화자로부터 거리가 필요했고, 여러 타인의 이야기를 빌려왔기 때문이다. 제가 입양될 때 여자라는 이유로 먼저 입양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니까 입양은 사실 성(젠더)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주목해야 하는 페미니즘 이슈와도 연결된 부분이 있다."
마야는 2003년 덴마크창작문학아카데미(Danish Academy of Creative Writing)를 졸업하고 2006년에 '덴마크인 홀게르씨를 찾아라'라는 개념시 모음집을 출간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이 시집으로 독자들의 성원과 함께 덴마크에서 보딜-외르겐뭉크크리스텐센 데뷔문학상을 받았다. 국가 간 입양, 국가적 정체성, 인종차별과 혈연관계, 음식과 질병, 그리고 문학 집필 등 여러 주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탐구하는 데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형식을 추구해왔다. 덴마크소설문학상을 수상하고 덴마크예술재단으로부터 3년간의 집필활동 보조금을 받기도 했다.
-이번 책은 같은 문장이 반복되는 독특한 구성이다.
"데뷔작은 짧은 시들과 산문, 입양 문서들을 포함시키기도 하고 덴마크에서 당시에 일어나고 있던 여러 형태의 인종 차별과 난민에 대한 이야기 들을 담았다. 첫 책을 쓰고 난 이후 '그 여자는 화가 난다'에 도입하게 될 글쓰기 스타일을 연구하고 확장해 나가고 싶어졌다. 문장들이 반복되고 같은 구조에서 그 내용이 달라지고 호흡이 달라지고 리듬이 달라질 때의 아름다움을 풍성하게 탐구하고 싶었다."
'여자는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한국계 입양인인 동시에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한국계 입양인이나 레즈비언 둘 중의 하나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던 것일까./ 여자는 자신이 한국계 입양인이나 레즈비언 둘 중의 하나였다면 삶이 더 쉬웠을 것이라 믿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정말 그럴까. 그것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일이다. 여자는 자신이 레즈비언이기에 덴마크로 입양된 것이 행운이라는 말을 듣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입양인의 이방인 처지에다 성소수자의 정체성까지 겹으로 힘들지 않은가.
"퀴어이자 레즈비언으로서 친부모와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쉽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얼굴을 몰랐던 친부모를 마주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들에게 나의 정체성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아직 쉽지 않은 자리라고 느꼈다. 부모로부터 어떤 배제의 시선을 받을 때는 내가 두 번 소수자가 되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덴마크에서는 동성혼이 합법화된 지 오래 됐기 때문에 모국의 성소수자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마야는 "덴마크나 한국에서도 항상 소수자 느낌으로 바깥에서 들여다보아야 하는 자리가 많아서 조용히 관찰하고 배우게 되는 지점들이 있다"면서 "비주류성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직면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책은 형식적으로는 장시의 형식을 따르면서 시적인 리듬과 호흡이 중요한 요소이지만, 여러 입양 인물들이 다양한 서사로 여정을 이어나가기 때문에 그 인물들을 따라가는 소설 읽기로도 체험해 주면 좋겠다"고 맺었다.
'여자는 친부모가 자신을 입양 보낸 것을 수치스러워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의 친부는 그 때문에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어쨌든 지금은 되돌리기엔 너무나 늦은 일이다./ 여자는 지금 되돌리기엔 너무나 늦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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