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개딸'들은 왜 '불꽃대장'에 등돌리고, 페미니즘을 외면했나
UPI뉴스
| 2022-06-20 09:54:44
처럼회·최강욱 위해 '불꽃대장' 박지현 추방 요구
"소속사보다 다루기 쉽다" 실적·효능감 집착하는 팬덤
박지현에 보낼 감사와 존경, 폄하·모욕으로 대체 말아야
매일 뉴스를 조금이라도 보는 사람이라면 이제 '개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개딸(개혁의 딸)은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이재명을 지지하는 젊은 여성들의 팬덤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간 활동한 다른 정치팬덤들과는 좀 다른 면이 있어 그 정체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팬덤 현상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건 개딸들이 페미니즘을 외면하는 이유다. 물론 개딸을 페미니즘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없는 건 아니다. "개딸의 정신세계를 이루는 중심축은 페미니즘"(황교익)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실 개딸의 탄생 과정은 페미니즘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페미니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는 하다.
<한겨레>(4월 14일) 기사에 따르면, 2030 여성들은 대선 당시 국민의힘 후보 윤석열과 대표 이준석이 노골적으로 '이대남'(20대 남성) 표심을 공략하며, '여성가족부 폐지' 등의 공약을 내걸고 성별 갈라치기에 나서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이재명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개딸들 중엔 "처음에는 이준석을 막기 위해 이재명을 찍기로 했으나 이제는 이재명 자체에 '입덕(팬이 됨)'해 버렸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다 '텔레그램 n번방'을 추적해온 '불꽃'의 활동가 출신 박지현이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에 합류하면서, 이재명 지지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선 마지막까지 2030세대 여성들을 설득하려 해도 잘 안 됐는데 박지현 씨가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박지현은 개딸들 사이에서 '불꽃대장'으로 불리며 영웅처럼 여겨졌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겨지는 것으로 믿었으며,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래서 박지현이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민주당 의원 최강욱의 성비위 의혹에 대해 조사를 명하고 공개 사과에 나섰을 때 개딸들이 박지현을 즉시 비토하는 걸 보고서 나는 깜짝 놀랐다. 5월 20일 개딸 수십명은 여의도 민주당사 앞을 찾아 "박 위원장은 '내부 총질'로 지방선거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며 사퇴를 요구하는 어이 없는 일마저 벌어졌다. 이날 박지현은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돌아선 개딸'들에 대해 "그들이 정말 개딸분들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는데,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박지현의 n번방 추적 활동을 매우 높게 평가해온 나로서는 도무지 그런 개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세 명의 개딸 활동가를 인터뷰한 <중앙일보>(6월 9일) 기사를 보고서야 개딸의 정체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개딸들의 성향은 다양하기에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개딸은 페미니스트로 인식되는 측면도 있는데"라는 질문에 26세 대학생 개딸이 다음과 같이 답한 게 놀라웠다.
"연관이 없다. 현재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은 자신이 불리할 때 성추행당했다고 미투 운동하는 사람을 페미니스트로 간주하는 것 같다. 민주당은 페미니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어야만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n번방 추적의 영웅도 얼마든지 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무섭다. 자신의 생각이 승리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어떻게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페미니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는 건 개딸이 비판하는 이준석의 주장과 얼마나 다른가? 이는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발상이 아닌가.
작가 임명묵은 개딸 현상을 아이돌 팬덤의 문법이 정치 팬덤에 전면 이식된 것으로 보았는데, 이 진단이 의미심장하다. 아이돌 팬덤의 주요 행동강령은 '절대적 비타협주의'이기 때문이다. 오직 오빠를 위하는 일에 타협을 해야 할 게 무엇이 있겠는가. 개딸은 오직 이재명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검찰개혁을 외쳤다. 검찰개혁의 여러 방법론 가운데 '절대적 비타협주의'를 내세우는 민주당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와 그 리더인 최강욱을 위해서라면 페미니즘에 등을 돌리고 그 영웅인 박지현을 내쫓아야 한다는 게 개딸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개딸은 '절대적 비타협주의'를 내세우는 아이돌 팬덤 중에서도 실적과 자기효능감에 집착하는 유형의 팬덤이 아닌가 싶다. 대표적 여초 커뮤니티 중 하나인 '여성시대' 카페엔 지난 3월 "남자 아이돌 덕질보다 이재명 덕질이 재밌다. (아이돌) 소속사가 잘못할 땐 팩스 총공세를 벌여도 말을 듣지 않지만, 일주일만에 10만명 당원 가입하고 문자 총 공세하니 민주당이 벌벌 떤다. 소속사보다 다루기 쉽다"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바로 이 글이 개딸의 '눈부신 활약'의 비결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게다.
개딸들의 그런 정치적 활동에 대해 논평할 생각은 없지만, 박지현의 n번방 추적 활동은 감사와 존경을 보내 마땅한 일이었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다. 어떤 정치적 주장이나 노선을 절대 진리로 간주해선 안되며, 다른 의견을 존중하면서 토론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녕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박지현에게 보내야 할 감사와 존경을 폄하와 모욕으로 대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개딸이 부디 2년 전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저지른 '피해호소인' 사건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