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일본의 난징 대학살, '어머니' 훼손한 무도한 패륜"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2-06-09 20:53:10

역사의 폭력 다룬 장편 '발 없는 새' 펴낸 정찬
난징 대학살과 문화혁명을 배경으로 진실 탐색
장국영과 첸카이거 등 실재와 허구 인물 뒤섞어
스스로 세상 떠난 어머니들을 매개로 폭력 성찰
"허구의 깊이는 현실의 깊이이자 소설의 깊이"
"역사에 대한 진솔한 사과만 오랜 불행을 종식"

역사의 폭력과 인간의 구원을 천착해온 정찬(69)의 새 장편소설 '발 없는 새'(창비)가 출간됐다. 이번 장편은 일본의 '난징 대학살'을 중심에 놓고, 그 비극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문제적 인물 워이커씽의 존재론적 아픔을 시대의 폭력에 녹여낸 작품이다. 

▲일본의 난징 대학살을 중심에 놓고 구원의 서사를 펼쳐낸 소설가 정찬.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패왕별희'의 배우 장국영과 감독 첸카이거, 일본의 난징학살을 영어권에서 펴낸 아이리스 장이 실재한 인물이라면, 워이커씽과 베이징 특파원인 '나'를 포함해 일본인 아오키는 허구의 존재다. 허구가 실재와 뒤섞이고 넘나들면서 소설의 깊이는 더해진다.

난징 대학살(1937~1938)은 중일전쟁 때 중화민국의 수도인 난징을 점령한 일본이 군대를 동원해 20만 명에 이르는 중국인을 무차별 강간하고 학살한 사건이다. 끔찍한 국가적 범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사죄하지 않은 것은 물론, 중국 당국조차 철저하게 책임을 묻지 않고 미봉돼 온 것이 현실이다.

'중국 공산당과의 내전에 패해 타이완으로 도망친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1952년 일본과 수교하면서 전쟁배상 청구권을 포기했다. 서방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함이었다. 1972년 9월 중국 공산당 정부 역시 같은 이유로 일본과 수교하면서 전쟁배상청구권을 포기했다.'

워이커씽은 난징학살의 비극에서 배태된 '역사의 아이'였다. 그는 외할아버지에게 피리를 배우고 맹인악사와 함께 떠돌면서 얼후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후 전설적인 경극 배우 메이란팡과 함께 경극판을 누볐다. 만우절에 스스로 세상을 떠난 배우 장국영(1956~2003)과 문화혁명의 광풍 속에서 청소년 시절 아버지를 고발해야 했던 감독 첸카이거는 영화 '패왕별희'를 매개로, 공연예술가 일본인 아오키와 함께 역사와 시대의 폭력을 촘촘히 드러낸다.

이들 사이에는 '어머니'라는 공통의 연결고리가 있다. 워이커씽은 원치 않은 아이로 태어나 어머니가 먼저 떠났으니 버림받은 셈이고, 장국영 역시 어린시절 이혼한 어머니와는 6개월 정도밖에 함께 살지 못했다. 첸카이거는 친구 어머니의 자살을 통해 역사적인 아픔을 공유한다. 아오키만 유일하게 어머니가 스스로 떠나지 않았고 '암'으로 어린 아들을 응시하다가 죽었다. 

그 어머니는 어느 봄날 환한 표정으로 어린 아들에게 "네 몸이 한송이 꽃이라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아오키는 어머니의 물음이 없었다면 영원히 몰랐을 거라고 말한다. 자살한 어머니가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하는 존재였던 워이커씽에게는 한없이 부러운 모성일 터이다. 그가 그 슬픔을 담아 '얼후'를 연주했을 때 아오키는 자신을 응시하던 어머니의 눈빛을 떠올렸다. 

'아비정전'에서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로 거칠게 세상을 살아가는 장국영은 명대사를 남겼다.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이 새는 나는 것 이외는 알지 못해. 날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이번 소설 제목은 이 대사에서 차용한 것이다. '발 없는 새'처럼 쉼없이 소설 작업에 매진해온 정찬을 서울 대학로에서 만났다. 

▲정찬은 "소설 속 캐릭터들의 어머니 상실은 넓게 보면 인류의 비극"이라며 "어머니는 우리가 훼손시키는 자연의 상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 장편을 쓰게 된 배경은?
"문예지에 발표(2008)하고 작품집 『정결한 집』(2013)에 수록한 단편 「오래된 몽상」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워이커씽과 베이징 특파원인 '나'만 등장한 단편의 캐릭터는 단순할 수밖에 없다. 그 캐릭터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사람들을 만났을까, 태어난 것 자체가 고통인데 어떻게 견뎌 나왔을까… 지속적으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시 선보이게 돼서 설렌다."

-워이커씽은 말할 것도 없고 장국영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모두 어머니를 '상실'한다. 어머니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워이커씽이라는 사람의 어머니가 기구하지 않은가. 그 어머니가 죽는 걸 워이커씽은 자기 눈으로 보았다. 장국영도 어머니가 평생을 따라다녔다. 워이커씽 씨가 장국영의 그런 사연을 알고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동질감을 느꼈을 터이다. 결핍된 모성이 서로 두 마음들이 흘러가게 하는 큰 통로가 된 것이다."

-대학살의 끔찍한 범죄 국면에서 어머니는 어떤 상징으로 작동하는가.
"모성이라는 건 조금 더 인류학적으로 확대를 시키자면 사실 '자연'에 가깝다. 지구이자 자연인 거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자연을 학대하고 피폐하게 만들었는가. 깊게 들여다보면 어머니를 잃어버린 인류라는 말도 성립이 된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핏줄 관계로도 중요하지만, 좀 더 확장하면 여성·환경·지구 문제와 연결돼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상징이다. 이 여성들을 무참하게 강간했던 난징학살의 참상은 이런 면에서도 돌아보아야 한다."

▲정찬은 "누구나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 속에서 워이커씽은 말한다. "숭배는 마오쩌둥에게 그의 눈에만 보이는 아름다운 환상의 날개를 달아주었던 거요. 그 환상이 일으킨 문화혁명의 모습이 어땠소? 현재의 시간이 과거의 시간을 죽이는 행위가 문화혁명의 실체였소. 마오쩌둥이 부여한 절대적 자유의 희열 속에서 말이오. 난 가끔 생각해보곤 하오. 마오쩌둥의 홍위병이 느꼈던 절대적 자유와 일본 천황의 군인들이 느꼈던 절대적 자유의 차이를 말이오. 역사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이토록 서글픈 일이오." 이어서 그는 "더욱 서글픈 일은 역사가들이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는 심연"이라고 말한다. "그 심연 앞에서 역사가의 언어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소. 난징학살에는 그런 심연이 있소. 일본군이 난징에서 저질렀던 짓들 가운데 희생자들이 숨겨야 했던 것이 있었소. 강간당한 여성들의 임신이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강간을 당했는지, 정확히 숫자를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하오. 연구자들은 적게는 2만, 많게는 8만으로 추정하오."

-워이커씽은 "꿈이 아무리 순결할지라도 조직화, 집단화되는 순간 그 순결은 갈기갈기 찢기고 마는 것"이라면서 "인간이란 존재는 이토록 비극적이고, 역사란 비극적 존재가 그리는 집단적 삶의 궤적"이기에 몽상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일정 부분 동의할 수밖에 없다. 역사를 한번 돌아보라. 종교의 이름으로 얼마나 피를 많이 흘렸는지, 수많은 전쟁을 보면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우리나라도 6.25전쟁은 얼마나 끔찍했는가. 이 비극 앞에서 위로가 되는 게 바로 몽상이다. 호접몽을 꾸는 장자의 몽상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입장을 바꿔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용서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것이 요원하다."

워이커씽은 "인류사에서 천황 이데올로기만큼 불가사의한 이데올로기를 찾는다는 것은, 자신의 판단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난징학살 심포지엄에서 자신의 생각을 토로한다. "일본 퇴역군인 나가토미 하쿠토는 난징에서 목을 베거나 불태워 죽이고 산 채로 파묻은 사람이 이백명이 넘는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그가 고백하기를, 천황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목숨, 심지어 자신의 목숨조차 가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살인이 어렵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난징학살의 근원은 천황"이라고 분석한다. "천황은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에게 인간세계에서 벌어진 일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천황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천황의 신민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합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모순을 일본인은 태연히 받아 들입니다."

▲정찬은 소설에서 내내 역사의 폭력과 인간의 구원을 천착해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일본에게 역사란 '실체가 없는 그림자 놀이'일 뿐이라는 워이커씽의 지적이 인상적이다. 천황 뒤에 숨어서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모호한 안개로 가리는 행위를 잘 표현한 것 같다. 집단무의식을 '그림자'로 표현했는데, 소설 속 인물들의 무의식도 간단치 않다.
"누구나 그림자 영혼을 지니고 있다. 워이커씽은 끔찍한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 어머니의 비극을 꿈으로 환치시킨다. 그렇지만 그림자 영혼은 그를 이끌어가는 또하나의 인격이다.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 그림자가 튀어나와 무의식의 에너지가 작동한다. 워이커씽은 평생 그림자 영혼이 보통 사람과 달리 굉장히 노출돼왔고, 그림자의 슬픔이 얼후를 연주하게 했으며, 그것이 비극을 견디는 방식이었다."

워이커씽은 말한다. "일본군과 홍위병의 폭력에는 공통점이 있소. 신적 존재를 향한 숭배요. 신적 존재를 위해서라면 어떤 행위도 용납되오. 신적 존재의 품에 안긴 이들의 눈에는, 그 품에 안기지 못하는 이들이 벌레처럼 하찮게 보일 것이오. 적잖은 사람들은 벌레를 발로 뭉갰다고 해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소. 그런 신적 존재가 언젠가부터 내 눈에 다시 보이기 시작했소. 그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신이오. 새로운 신이 두려운 것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다는 점이오. 모든 국가, 모든 민족 위에 군림하면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을 벌레로 만들어버리오. 지금 세계는 새로운 아비규환으로 뒤덮이고 있소. 그 신의 정체가 무엇이겠소. 자본이오. 놀랍지 않소? 신의 실체가 물질이라는 사실이. 지금 인류는 새로운 신이 뿜어내는 휘황한 광채에 싸여 있소. 새로운 신의 시대가 절망스러운 것은 어떤 신의 시대보다 폭력의 형태가 깊고 광범위하다는 사실에 있소."

-자본이 신이 돼버렸다는 한탄은 자주 듣는 말이지만, 천황 이데올로기를 대신하거나 그것을 능가한다는 비유는 새삼 설득력이 크다. 
"난징학살 당시 일본 군인의  폭력보다 지금 더 큰 폭력이 자본이라는 건 맞다. 이제 천황의 말을 안 듣는 사람은 많아졌겠지만 돈 앞에서 굴복하는 사람은 대다수다. 이 자본주의는 인간의 긍정적 욕망이 아니라 부정적인 욕망을 닮아간다. 자본의 신이 워낙 힘이 세니까,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욕망과 사회주의는 안 맞는 거다."

▲정찬은 "일본의 솔직한 사과와 반성은 자신들은 물론 동북아시아 평화에도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미국계 중국인 아이리스 장이 난징학살을 탐구하는 이유로 "악을 이해할 수 없으면 그 악을 행한 이들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니까"라는 대목도 울림이 크다. 그는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건 그 사람에게 어떤 짓을 해도 허용이 되는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기 때문에 "난징학살의 악을 이해하는 행위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과거 이야기지만 지금,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로 독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하나라도 이루어진 게 있는가? 식민의 역사라는 것은 폭력을 기반으로 하는 역사 아닌가. 그렇게 해놓고 집단적인 차원에서 반성의 말을 했는가. 오히려 그들은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일본의 불행이기도 하지만 동북아시아의 불행이다. 동북아시아가 지정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땅인가. 중국 한국 일본 세 나라가 서로 바람직하고 조화로운 관계에 있으면 세계 평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진솔한 사과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당시의 불행을 계속 연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2018년 동의대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소설에 전념하고 있는 정찬은 '발 없는 새'처럼 한 번도 소설을 떠나서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다. 그는 "허구의 깊이가 현실의 깊이이자 소설의 깊이"라고 작가의 말에 썼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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