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패거리'에서 자유로운 '외로운 정치인'이 보고싶다

UPI뉴스

| 2022-05-16 10:26:12

민주당의 검수완박법 '100% 찬성' 나온 이유는
개인의 외로움과는 무관한, 집단의 책임감 분산
홀로 책임질 일이라면 그렇게 쉽게 찬성했을까
한국정치의 비극은 '외로운 정치인'의 부재 탓

2018년 1월 영국에 외로움 문제를 담당하는 장관이 생겼다. 이는 외로움으로 인한 고통을 겪는 이들이 인구 6600만 중 900만 명에 달한다는 보고서가 나온 직후에 취해진 조치였다. 2021년 2월 일본 정부는 영국을 벤치마킹해 내각관방에 '고독·고립대책담당실'을 설치하고 이 업무를 지방창생 담당상에게 맡겼다. 세계 두 번째 외로움 담당 장관인 셈이다.

이게 어디 영국과 일본만의 문제이겠는가? 한국의 외로움 문제도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시복지재단의 2018년 10월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민 중 '극도로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전체의 28.8%, '극심한 외로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한 시민은 21.1%였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주민등록상 1인 가구는 2021년 9월 말 기준 936만7439가구로 전체 가구의 40.1%를 차지함으로써 사상 처음 40%를 넘어섰다. 이는 앞으로 외로움 문제가 더욱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을 말해준 걸로 보는 게 옳으리라.

외로움은 정치적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70여년 전에 출간한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전체주의는 외로움을 기반으로 삼는다"며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에 개인적 자아를 투항함으로써 목적의식과 자긍심을 되찾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오늘날엔 포퓰리즘은 외로움을 먹고 산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예컨대, 영국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 초연결 시대에 격리된 우리들>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덜 연결되어 있을수록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고, 차이를 적절히 조율하고 서로를 시민답게 협력적으로 대하는 연습이 부족해지며, 동료 시민을 좀처럼 신뢰하지 못하고, 그 결과 포퓰리스트가 제시하는 배타적이고 분열적인 형태의 공동체에 매력을 느낀다....외로운 사람은 이웃을 적대적이고 위협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하겠지만, 외로운 사람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았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동의하긴 어려운 주장이다. 아렌트와 허츠는 진실의 절반만 말한 게 아닌가 싶다. 외로움 때문에 전체주의나 포퓰리즘에 투항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외로움이 미친 영향은 거기까지일 뿐 이후 벌어지는 문제나 비극의 원인은 외로움과는 정반대인 집단적 의식이나 감정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집단의 속성에 관한 다음 명언들을 감상해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집단에게는 나를 잊고 거대한 무엇에 빠져들게 하는 능력이 있다."(조너선 하이트) "집단 속에서는 자의식이 약화되고 평소의 개인적 신념과 모순되는 행동을 저지르기가 한결 수월해진다."(로랑 베그) "어떤 사람이든 혼자 있을 때 보면 상당히 현명하고 통찰력이 있지만, 집단 속에 들어가면 당장 바보가 되어 버린다."(프리드리히 실러) "인간은 집단 안에 있을 때는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오직 천천히, 그리고 한 명씩 한 명씩 이성을 되찾을 수 있다."(찰스 매카이) "집단은 곧장 극단으로 치닫는다. 의심이 표현된다 해도 그것은 곧장 명백한 확신으로 바뀌고, 약간의 반감도 격렬한 증오로 바뀐다."(귀스타브 르 봉)

이 명언들을 하나씩 음미하면서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외로움 그 자체가 아니라 외로움과 계급적 지위의 반비례 관계로 인한 '외로움 격차'가 아닐까 싶다. 즉, 외로움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대부분 중하층 계급에 속하지만, 상층 계급은 정반대로 그 계급 내에서의 사교·연결·연대로 외로움을 느껴볼 기회조차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외로움 격차'가 초래하는 결과는 무엇인가? 나는 부동산 문제에서부터 검찰 문제에 이르기까지 문재인 정권에서 이루어진 주요 국가적 결정들을 보면서 한국정치의 비극은 '외로운 정치인'의 부재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프랑스의 샹송 가수 조르주 브라상은 "인간은 여럿이 모여 봐야 좋을 것이 없다. 인간은 네 명 이상만 돼도 멍청해진다"고 했는데, 바로 그런 멍청함이 집단의 힘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지난 4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른바 '검수완박'을 위한 두 법안 중 하나인 검찰청법 개정안이 민주당 의원 중 표결에 참석한 161명 전원이 찬성표를 던진 가운데 통과되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이 북한 노동당 닮은 조직이 돼 버린 것"이라는 말도 나왔지만, 이 논평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 뜨거운 논란의 한복판에 있던 법안에 대해 '100% 찬성'이 나오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의 외로움과는 무관한 집단의 '책임감 분산'이었다는 점이다. 두고두고 자기 홀로 책임져야 할 일이라면 그렇게 쉽게 찬성표를 던지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제는 외로움이 아니라 외로움의 결여다. 

나는 한국정치의 비극이 홀로 판단하고 책임져야 하는 '외로운 정치인'이 너무 없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금태섭과 같은 정치인이 극소수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아서 '부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희소하다. 패거리 부족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외로운 정치인'을 좀 더 많이 보고 싶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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