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우리는 날마다 죽었다 살아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2-05-04 05:39:22

재기 넘치는 새 소설집 '스마일' 펴낸 김중혁
갇혀 있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다양한 생각
"웃지 못할, 좀 웃기기도 하는 아이러니한 죽음"
"내가 없어지는 몰입의 순간이 소설 쓰는 동력"

소설가 김중혁은 재담과 농담으로 거리두기를 열심히 하는 작가다. 심각한 것도 일정 간격을 두고 바라보면서 사태를 객관화시키려고 노력한다. 그가 최근 펴낸 다섯 번째 소설집 '스마일'(문학과지성사)에도 그런 태도가 보이는 건 맞지만,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편이다. 어딘가에 갇혀 있는 사람들, 그들이 친구처럼 죽음을 가까이 대하는 이야기들이 다섯 편에 포진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리 죽음을 가볍게 여기면서 태연하게 들여다보려고 해도, 그것은 생명에게 닥치는 가장 큰 사달인 것이다.

▲다섯 번째 소설집을 펴낸 김중혁. 그는 "이전에는 주로 인물들의 관계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심훈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휴가 중인 시체'의 '나'는 죽음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여러차례 경험하면서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첫 번째 삶이 끝났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냥 온몸으로 깨달았다. 불안과 공포와 환멸과 싫증과 권태와 무력이 액체가 되어 내부로부터 나를 익사시키기 직전이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없었고 새로운 생각을 발전시킬 배터리도 없는 상태였다.' 그 무렵 가장 큰 고민은 두 번째 삶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였다.

버스에다 전 재산을 싣고 떠돌아다니는, 나보다 몇 수는 앞서서 죽음을 고민하는 괴짜를 만났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는 문구를 버스 옆구리에 붙이고 다니며 버스를 관으로 삼아 죽을 작정이라는 '주원'이라는 인물이다. 내가 그를 만나 함께 버스를 타고 다니며 관찰하는 이야기가 이 단편인데,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나오는 문구를 대화로 활용하는 셰익스피어 학자들의 연말 파티를 흉내낸 나와 그의 대사가 흥미롭다. 이를테면 '리어왕'을 빌린 이런 대사.

'잠은 매일매일 죽음을 불러온다는 말이 맞구나. 어제의 일을 기억 못하니 너는 부활한 유령이 분명하다. 가련한 자들만 죽음과 삶을 구분하지. 생사의 구분이 없는 자에게 부활이란 말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알겠는가. 죽음과 삶의 구분이 없는 것은 오직 신뿐이다. 당신이 나의 신인가? 무슨 개소리인가. 그것은 셰익스피어를 빙자한 욕에 가까운데? 미안, 마음속 말이 갑자기 나와버렸네.'

주원은 왜 죽기로 작정하고 버스를 떠나지 않은 채 떠돌기만 하는가. 그는 '간단한' 실수 한 번으로 큰 잘못을 저질렀고, 내내 스스로 벌을 주며 죽음을 말하는 중이다. 벌을 받는다고 잘못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한다. 무슬림들이 특정 시기에 등에 피가 나도록 자발적으로 채찍질을 당하는 것처럼 스스로 뺨을 때리며 자학한다. 주원의 괴이한 주기적 '발작'을 피해 도망치듯 버스에서 내린 '나'는 생각한다.


'그때 나는 죽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첫 번째 삶을 끝내고, 두번째 삶으로 넘어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잠은 죽음과 닮았고 죽음은 잠의 끝과 같다. 우리가 여태껏 한 번도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는 존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잠들었다가 죽는 게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코를 골면서 자던 누군가 '컥, 컥, 컥' 숨을 멈추는 듯하다가 다시 숨을 쉴 때, 그는 죽었다 살아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과 삶이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중혁은 실제로 이런 생각을 늘 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의 일을 심하게 잘 기억하지 못해서 추억이 전혀 없는 느낌 같은 게 있다"면서 "억울하기도 한데 그게 나에게는 죽음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면 군대에서 있었던 일들이 실제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겪은 일 같지가 않다"면서 "다들 그런 경우가 있겠지만, 그게 어쩌면 죽었다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표제작 '스마일'도 죽음이 화두다. 스스로를 벌주면서 죽음을 향해 떠도는 인물이 상대적으로 무거운 편이라면, 헤로인을 삼켜 운반하는 '스왈로어'가 비행기 안에서 헤로인중독으로 죽으면서 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보여주는 표제작의 죽음은 아이러니하다. 김중혁은 "어떻게 사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음으로 갈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 선택이 어쩌면 마지막 표정에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웃지 못할, 좀 웃기기도 한 죽음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에 이르면 죽음은 조금 다른 용도로 쓰인다. 이 단편에는 소설가 '수진'의 창작을 도와주는 인공지능 '헤밍웨이'가 등장한다. 수진은 '플라스틱 섬'에 조난당했다가 살아돌아온 조이에 관해 헤밍웨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시적인 순간은 있지만 소설적으로 감동적인 순간은 없는 것 같아' 소설로 만들기를 포기한다. '도무지 이야기의 뾰족한 부분이 없다'는 수진과 헤밍웨이의 판단은 다르다. 인공지능의 소설관.

'내가 알기로 소설가는 이야기를 칼로 자르고 분해한 다음 처음부터 다시 조립하는 사람들이다. 분해와 조립을 반복하다 보면 이야기의 원래 형체는 없어지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탄생하게 된다. 이야기도 피곤해지고, 소설가도 피곤해진다. 어떤 이야기는 분해와 조립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는 게 의미 있을 때도 있다. 내가 수진 대신 조이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도 그 때문이다.'

▲김중혁은 "시궁창 같은 비참한 현실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 살아갈 힘을 주는 건 그 순간에도 농담을 떠올릴 수 있는 유머 감각"이라며 "무거운 주제를 풀다 보니 제 스타일의 농담이 줄었지만 다음 장편에서는 기대해도 좋다"고 말한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인공지능 헤밍웨이의 생각은 곧 김중혁의 생각이기도 할 터인데, 그가 판단하는 '이야기의 뾰족한 부분'과 '소설적인 감동의 순간'이란 어떤 것일까. 그는 자신이 창작한 인물에 깊이 공감하는 희열이 생기느냐의 여부가 판단 기준이라고 했다. 헤밍웨이는 뒤늦게 조이가 급작스럽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수진에게는 그 정보를 차단하고 알려주지 않는다. '조이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되면 해피 엔딩은 곧바로 새드 엔딩이 될 것'이기 때문이고,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사건이 개입됐을 뿐인데 기쁨이 슬픔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라고 헤밍웨이는 판단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삶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결국 해피 엔딩과 새드 엔딩뿐인 것일까'라는 문제에 봉착한다.

'차오'에서도 인공지능은 이질감 없이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위험성 평가위원으로 일하는 '차시한'이라는 인물이 자율주행차를 타고 가면서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는데, 이를 해킹한 누군가가 자율주행차를 장악하고 위협하며 금전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시종 차 안에서 인공지능 '차오'와 나누는 대사만으로 이루어진 이 단편은 가독성이 높다. 김중혁은 "요즘 자율주행 자동차에 관심이 많다"면서 "앞으로 자동차 해킹이 우려된다는 자료를 접하면서 사람과 인공지능과 대화만으로 끝장을 보자고 시작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왼'은 지배적인 힘이나 제도에 의해 인위적으로 순치되기 전 순수한 상태를 떠올리게 만드는 단편이다. '신은 왼손잡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박사를 찾아가 '우주가 왼손잡이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검증하는 이야기다. 이 단편에 등장하는 인도네시아의 왼손잡이 부족에게는 오른손잡이가 문제여서, 몇 남지 않은 오른손잡이는 그 사실을 숨기다가 죽음에 이른다. 살아남기 위해, 바깥 세상에서는 대세인 오른손잡이라는 사실을 감추어야 하는 역설이다.

우주를 만든 신이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가 중요한 건 아니다. 오른손과 왼손 중 어느 하나에 힘을 실어 우주를 편벽되게 색칠하려는 인간이 문제다. 김중혁은 굳이 사회적으로 의미를 확장하자면 "타자를 자신들의 선 안에 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말한다. 왼손끼리 나누는 '왼'의 이런 악수는 김중혁이 이 단편을 구상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린 대목이다.

▲소설에 구체적인 곡명을 적시한 음악을 자주 인용하는 김중혁은 "음악이 멈추고도 이야기가 지속되는 몰입의 순간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루스와 기하는 손을 놓지 않았다. 계속 악수했다. 세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게 식물이 식물을 껴안는 것처럼 부러진 것을 보듬어 안을 때처럼 깨지기 쉬운 것을 받쳐줄 때처럼 호의와 호의가 만날 때처럼 왼쪽의 커튼과 오른쪽의 커튼이 슬며시 엇갈릴 때처럼 손을 놓치지는 않되 상대방이 아프지는 않게, 오랫동안 악수했다.'

김중혁은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음악을 재생시켰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음악이 꺼져 있을 때가 있다"면서 "음악이 멈추고 이야기가 지속되는 순간을 맞닥뜨리기 위해, 나는 음악을 듣고 소설을 쓴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그는 "모든 소설에서 한 번씩은 그런 순간이 있는 것 같다"면서 "인물들을 따라가면서 같이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몰입되면서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내가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가짜 감동이고 가짜 몰입일 수도 있지만,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쓰고 있는 것 같다"고 맺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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