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 분양가가 굴린 '스노우볼'…파국 맞은 둔촌주공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2-04-19 16:31:56
새 집행부, 전 집행부가 맺은 공사비 증액 계약 불인정…시공단과 갈등
"공사 지연될수록 조합원들에 더 불리…빠르고 원만한 타협이 최선"
일반분양 4786가구 포함 총 1만2032가구 규모,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으로 일컬어지던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이 공사를 중단하자 재건축 조합은 '공사비 증액 계약' 취소로 맞섰다. 공정률 50%를 넘긴 공사는 중단됐다.
둔촌주공은 본래 2020년 일반분양을 하고, 2023년 완공될 예정이었다. 현재로서는 올해에도 일반분양이 어려워 보이며, 완공은 언제일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상태다.
HUG 3.3㎡당 분양가 2978만 원 제시…조합원 거부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이 왜 이리 꼬였을까. 표면적인 원인은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조합과 시공단의 갈등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핵심 원인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였다. 재건축 사업에서 선분양을 하려면 HUG의 보증이 필수라 분양가 결정에도 HUG의 의향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HUG가 2020년 6월 둔촌주공의 분양가를 3.3㎡당 3000만 원 이하로 제시하면서 '스노우볼'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조합의 전임 집행부는 2019년 12월 임시총회를 열어 기존 2조7049억 원이던 공사비를 3조2293억 원으로 5244억 원 증액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분양 세대 수 926가구 추가, 단지 내 상가 건립, 물가상승분 등이 포함된 증액이었다.
전임 집행부는 분양가를 3550만 원으로 예측하면서 "추가분담금이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합원들을 설득했다.
그런데 2020년 6월 HUG는 조합원들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3.3㎡당 2978만 원의 분양가를 제시했다. 졸지에 가구당 1억 원 가량의 추가분담금을 내야 하는 처지가 된 조합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전임 집행부는 그 해 7월부터 분양가 상한제 시행 예정이란 점에 주목했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면 더 불리할 테니 HUG의 분양가를 수용해 공사를 서두르자고 주장했다. 시공단과도 2020년 6월 본래 안대로 공사비를 증액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 주장에 반대하는 세력이 나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비대위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 후의 분양가가 오히려 HUG가 제시한 가격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합원들은 비대위를 지지했다. 그들은 HUG 분양가를 거부하고, 같은 해 8월 집행부를 해임했다. 둔촌주공의 2020년 일반분양은 어그러졌다.
총회를 거쳐 비대위 관계자들이 새 집행부로 등극했다. 새 조합 집행부는 일반분양을 미루면서 되도록 분양가를 높이기 위해 후분양도 검토했다. 아울러 전임 집행부가 체결한 공사비 증액 계약은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불인정했다.
"5244억 증액이 조합원들에게 가장 유리한 계약"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새 조합 집행부와 시공단 사이의 갈등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서울시까지 나서서 여러 차례 중재했지만, 별무소용이었다.
끝내 공사 중단이라는 파국을 맞았다. 사태는 앞으로 어떻게 흐를까. 조합 측에서는 시공사 교체 이야기도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시공사 교체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우선 시공단은 공사 현장에 유치권을 행사했다. 유치권을 풀려면 새로운 시공사가 시공단에게 기존 공사비와 조합에 빌려준 사업비 등 약 2조5000억 원을 지불해야 한다. 현금 2조5000억 원을 지급하고 공사를 시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년 새 인건비와 자재비 등이 크게 오른 부분도 문제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둔촌주공의 공사비 3조2293억 원은 3.3㎡당 493만 원으로 계산한 금액"이라며 "요즘 공사비 시세는 3.3㎡당 600만 원 정도라 새로운 시공사도 비슷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시공사 교체가 조합에게 더 불리하다는 지적이다.
양측은 현재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지만,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나는 지연 비용이 두통거리다. 이 비용을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시간을 끄는 것은 조합과 시공단 모두에게 손해"라면서 "금융기관과 변호사만 돈을 벌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연구소장은 "공사가 지연될수록 조합원 손해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5244억 증액이 조합원들에게 가장 유리한 계약"이라며 "향후 공사비 증액분이 1조 원 혹은 그 이상으로도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소송전으로 번져서 몇 년의 시간이 소요될 경우 조합원들에게 악몽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시한폭탄'은 시공단이 보유하고 있는 공사비와 사업비 채권 약 2조5000억 원, 그리고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이주비 채권 약 1조2800억 원이다. 이들이 채무자인 조합에게 당장 빚을 상환하라고 요구할 경우 현금이 없는 조합은 응하기 어렵다.
한 부동산 경매사는 "최악의 경우 채권자들이 소송을 거쳐 조합원의 자산인 사업부지를 경매에 붙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매까지 가면, 사업부지는 시공사에게 넘어가고 조합원들 손에는 몇 푼의 현금만 남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모두 빠른 타협이 최선이라고 강조한다. 김제경 소장은 "원만하게 합의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양측은 아직 타협의 여지는 열어두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공사비 증액 자체를 거부하는 건 아니다"며 "증액분이 합당하게 책정된 것인지 검증하자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시공단 관계자도 "일단 조합과의 협상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도 다시 중재에 나섰다. 서울시 관계자는 19일 "더 이상의 파국으로 가선 안된다"며 "양측이 접점을 찾도록 중재 중"이라고 말했다. 1만2000세대의 분양 물량이 증발할 경우 서울시 부동산시장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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