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어떻게 이 야만을 끝장낼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2-03-23 19:14:52
2차대전 막바지 독일 소도시 무차별 '전략 폭격' 복기
현장, 인터뷰, 그림, 도면, 사진… '몽타주' 기법 구성
잔인함의 극을 달리는 야만, 우크라이나에서도 재연
'11시 20분에 공습경보가 울렸다. 복무 의무가 있는 여성 웨이터가 말했다. 무조건 지하실로 내려가야 한다고. 결혼식에 참석한 손님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재잘대며 문을 지나 복도를 따라서 베이지색으로 칠해진 지하실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신부, 신랑, 신부 어머니, 상대편 어머니, 신부 어머니 자매 네 명, 신부 자매 한 명, 그녀들의 오빠―그러나 그는 공습 보초를 서는 의무 때문에 지하실 입구까지만 같이 가주었다가 금방 다시 나왔다. 꽃을 뿌리러 신부 측 사람들이 데려온 아이들 네 명이 거기에 있었다. 12분 후에 그들은 모두 생매장당하고 말았다.'
1945년 4월 8일 일요일 오전, 영국에서 출발한 영미 연합군 폭격기 215대가 독일 소도시 할버슈타트로 날아와 도심을 폐허로 만들었다. 30여분 만에 도시의 80%가 파괴됐고, 2000명 가까이 죽었다. 2차대전 막바지 연합군은 독일 160개 도시를 폭격해 비전투원 60만 명 가량 사망했는데, 할버슈타트 폭격도 그중 하나였다. 뉴저먼 시네마를 표방한 독일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알렉산더 클루게(1932~)가 집필한 '1945년 4월 8일 할버슈타트 공습'(이호성 옮김, 문학과지성사)은 이날 오전 공습경보 이후 다양한 현장에서 어떻게 죽음을 피하기 위해 움직였고, 어떤 모습으로 죽어갔는지 기록한 세밀한 보고 형식을 띠고 있다.
'로스호텔 결혼식' 현장에서는 공습경보에 따라 신랑신부와 하객들을 지하실로 안내한 후 보초 임무 때문에 다시 나온 신부의 오빠 한 사람만 살아남았다. 이들이 대피한 지하실은 어린 화동들을 포함해 로맨틱한 하루를 축하하려던 이들의 무덤으로 변했다. 영화 상영을 준비하던 '카피톨' 영화관 관리인 슈라더 씨는 '구석으로 갑자기 내동댕이쳐진 채 발코니 석의 열이 오른쪽 천장과 만나는 곳에서 연기가 나는 하늘 한 조각을 막 보게 되었는데, 거기로 고폭탄 하나가 이 건물을 뚫고 지하실까지 관통해' 있었다. '지하실로 들어가는 길에는 오전 상영 관람객 여섯 명 정도가 누워 있었고, 중앙난방기와 연결된 파이프가 폭발로 터져서 죽은 자들에게 뜨거운 물을 한줄기 뿜어내며 적시고 있었다.'
영화관 인근 공공 방공호는 폭탄에 세 차례 명중 당했다. 영화관에서 살아나온 병사들은 100구쯤 되는 심하게 손상된 시신들을 파내는 데 동원했다. '몇 구는 지면에 드러나 있었고, 몇 구는 방공호였을 걸로 보이는 구덩이 속에 있었다. 파내고 분류하는 이 작업 과정이 얼마나 더 소용이 있을지 매우 의심스러웠다. 이들을 어디로 보내야 한단 말인가? 수송 수단을 이용할 수는 있으려나?' 공용 방공 벙커에 있던 여성 '게르다'는 폭격이 지나간 후 자신이 멀쩡한 사실을 깨닫고 화급히 아이들을 찾았다. '아이들은 그녀의 허벅지에, 목에, 머리에 급히 매달리며 품으로 파고들어 더 넓게 몸을 맞대려 했다. 다섯 살짜리는 머리를 그녀의 몸 아래로 들이밀었다. 게르다 일행은 적어도 사방으로 서로 멀리 흩어지지는 않았으며 몸을 더 밀착하려고 했다.'
200대가 넘는 폭격기 무리는 10분 간격으로 할버슈타트 시로 와서 방공호까지 파고드는 고폭탄을 먼저 투하했다. 두 번째 공격 파도에서는 소이탄을 떨어뜨려 불을 질렀다. 이처럼 '불 폭풍'을 일으키는 공격은 다른 도시들에서도 공통으로 이루어졌다. '폭격 후에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다양한 단계의 화상을 입은 시신으로부터 작은 잿더미가 되어버린 시신까지 수천 구가 매우 다양한 자세와 위치를 취하면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또는 단말마의 고통으로 경련하면서, 벌거벗은 채 타들어가거나 옷을 입은 채 질식사하여 도로를 덮고 있거나 방공호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 공습으로 대략 독일 시민 60만 명이 죽었다.
B-17기로 폭격을 주도한 미군 준장 로버트 B.윌리엄스는 공습 비행기에 동승한 기자가 산업시설에 대한 폭격 대신 도시 중심부를 폭격하려는 이유에 대해 묻자 답한다. "유감입니다만, 사기 저하용 폭격(moral-bombing)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기에 폭격을 합니다. 도시를 파괴함으로써 거기 사는 주민들의 저항 정신을 없애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폭탄을 사기에 명중시킬 수는 없습니다. 명백하게도 사기란 머릿속에 자리를 틀고 있거나 여기 (명치를 가리키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 사이, 다양한 도시 주민들 사이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그는 신학적인 관점과는 다르게 "심장이나 머리에는 아무것도 없다"면서 "완전히 폐허가 된 사람은 아무것도 생각하거나 느낄 수 없다"고 무차별 '사기 폭격'의 효용을 강조한다.
목표물이 군사상 목적에 사용되는 교통선이나 저장소가 아니라 도시 전체, 민간인의 전면적 살상과 파괴가 목적인 공습을 일컬어 '테러'라는 표현이 부담스러운 이들은 이른바 '전략폭격'이라는 외피로 감쌌다. 영국과 미국뿐 아니라 중일전쟁 당시 일본의 난징·충칭 무차별 폭격, 피카소가 그림으로 참상을 고발한 스페인내전 당시 게르니카에 대한 독일의 폭격, 2차대전 이후 한국을 초토화한 폭격, 베트남 전쟁, 가까이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카니스탄까지 '반성 없는' 전략폭격을 통한 '도살' 행위는 지속돼 왔다. 급기야 러시아도 '당당하게' 우크라이나에서 무차별 민간인 살상 폭격을 자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은 크림반도와 동부 돈바스 지역 사이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러시아군은 침공 초기부터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러시아군의 집요한 폭격으로 사망한 민간인이 마리우폴에서만 2500명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도시가 집단 무덤으로 변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한 세기 가까이 참담한 무차별 민간 학살 폭격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 자체에 내장된, 종의 야만과 폭력성 때문일까.
알렉산더 클루게는 연합군의 전략폭격에 대한 반성이 어려웠던 부분을 적시한다. 나치 독일이 '인종 청소'라는 이유로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학살하는 등 전쟁 기간 저지른 범죄를 감안하면 반대급부로 연합군이 민간인을 살상하는 행위 역시 정당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암묵적 기류가 흘렀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클루게는 '자기 삶의 제작자'인 사람들과 '자기 삶의 관객'인 사람들을 서로 구분한다. "'제작자'는 스스로 자기 삶을 만들고 독립적으로 자기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관객'은 그와 반대로 그들이 거의 바꿀 수 없는 사회적인 맥락들에 묶여 있다. 이런 능동과 수동 사이의 차이가 '할버슈타트 공습'에도 뚜렷하게 보인다."
알렉산더 클루게는 '서커스단의 곡예사들'(1968)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문학 작품으로도 '브레멘 시 문학상'(1979), '클라이스트 상'(1985), '게오르크 뷔히너 상'(2003년), '테오도어 W.아도르노 상'(2009) 등을 수상했다. 그는 열세 살 때 할버슈타트에서 직접 이 공습을 당했고, 도저히 현실적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우연으로 눈앞에서 폭탄이 비켜나가 살아남았다. 그는 이후 아버지 간병을 계기로 다시 이 도시를 찾은 뒤 어린시절 끔찍한 기억을 되살려 '할버슈타트 공습'을 기록했다. 다양한 현장의 구체적인 정황과 인터뷰, 사진, 그림, 도면 등을 텍스트로 끌어들여 영화처럼 '몽타주' 기법으로 전개하면서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작품을 구성했다.
클루게는 "시민들이 폭격 때문에 자기 정부에 대항해 불응하게 하든지 저항하게 한다는 목표(사기 저하용 폭격 moral bombing)는 사회심리적으로 증거를 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서 "지하실에 있는 주민들은 폭격기 사령부에 대항하여 아무런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날아다니는 대함대를 마주한 피폭격 주민들의 항복은 그래서 구체적인 이 순간에 실질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이라며 "사기 저하용 폭격이라는 생각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사기 폭격'의 유효성을 보고한 연구집단은 "불 폭풍, 도시 포기, 현실과의 접촉 상실이 야기한 모든 정신 상태의 환상적 전환은 다른 한편으로, 최후의 투쟁을 위해 비축해두었던 힘을 풀어놓아버리는, 시민적 존재 상태로부터의 파열을 불러일으킨다"면서 "왜냐하면 그저 폭탄이 터지거나 도시가 다 타버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폭탄이고 그것이 현실을 태워버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할버슈타트 공습이 끝난 후 기초적인 심리학 연구를 위한 자료를 모으기 위해 '공습에 참여한 도시'들을 방문한 '다른 별에서 온 방문객'에게 살아남은 주민은 말했다. "잔인함이 일정 정도에 이르게 되면 누가 그것을 저질렀는지는 이미 상관이 없습니다. 잔인함은 그냥 지나쳐야 합니다."
영혼과 육신이 완전히 타버린 인간에게 '복수'는 무망한 단어일 뿐이다. '전략폭격'이라는 미명 아래 여전히 아직도 테러가 자행되는 배경이지만, 실효에 비해 대가는 끔찍하다. 복수와 저항 의지는 일상이 회복되면 반드시 다시 살아난다. 반성 없는 비극의 쳇바퀴는 1945년을 지나 2022년 우크라이나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이 야만을 끝장낼까.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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