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차별화된 신도시 만들겠다"더니…10여년째 아파트만 '덩그러니'
김지원
kjw@kpinews.kr | 2021-12-28 17:26:42
"분양 설명과 달라...'도시처럼 만든다'는 말 믿었지만 10여년째 방치"
근린생활·의료·편의시설 용지 매각 추진 중..."개발 수익만 극대화"
"지금까지 아파트 단지와는 차별화되는 새로운 개념의 '미니신도시'를 선보이겠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2009년 경기도 수원시의 수원아이파크시티 첫 아파트 분양을 앞두고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 회장은 "국내 도시개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도 했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주민들이 "사기 분양"이라며 현산을 법정으로 끌고 간 이유다. 입주민 198명으로 구성된 수원아이파크시티 소송위원회는 지난 6월 시행·시공자 현산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해당 재판이 이제 막 시작된 터다.
입주민들은 "정몽규 회장까지 직접 나서 허위·과장 광고를 하곤 분양가를 높여 폭리를 취했다"고 주장한다. HDC현산은 대체 아파트 분양을 어떻게 했길래 '사기 분양'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재판받는 처지가 된 것인가.
동장군이 맹위를 떨친 지난 26~27일 논란의 현장을 찾았다. 단지 주변은 황량했다. 아파트를 빼곤 전무하다시피 했다. 판매시설도, 복합상업시설도, 공공도시기반시설도 보이지 않았다. 수원아이파크시티는 HDC현산이 2009년 분양을 시작한 7000세대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다.
"수원아이파크 '시티(city)'아닙니까. 분양당시 광고와 모델하우스 설명에서 아파트 단지와 함께 주변에 편의시설, 관공서와 같은 교육문화시설을 지어서 도시처럼 만든다고 했어요. 그런데 10여년째 허허벌판에 아파트만 덩그러니 있는 상태라 그저 잠자는 곳으로만 인식되고 있어요."
2010년 분양을 받아 2012년부터 거주하고 있다는 입주민 김 모(63세·남) 씨의 목소리엔 분노와 한숨이 섞였다.
수원아이파크시티는 얼핏 보기엔 최근 조성되는 다른 대단지 아파트와 비슷해 보였다. 동과 동 사이에 놀이터가 있고, 입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센터도 자리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HDC현산은 분양 당시 '판매시설·복합상업시설·공공도시기반시설' 등이 들어선다고 광고했다. 관공서, 의료시설과 복합상업시설 등을 갖춰 하나의 작은 도시로 꾸민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당초 개발계획과 달리 수익률이 높은 주거시설만 짓고, 판매·기반시설용지는 10여 년째 방치한 상태다. '차별화된 신도시'를 만든다더니, 전혀 다른 의미로 '차별화된 신도시'를 연출한 꼴이다.
소송위에 따르면 당시 수원아이파크 1~3차(1~6단지) 평균 분양가(평당 1250만 원)는 여타 수원아파트 당시 시세(평당 800만 원)보다 400여 만 원 비쌌다.
"분양가가 주변에 비해 비쌌지만, 현대산업개발이라는 우리나라 대기업 브랜드가 하는 거라 믿고 분양을 받았지. 편의시설, 교육문화시설 관공서 등을 다 구비해준다고 했는데, 현재 7000 세대가 거의 다 입주해서 살고 있음에도 주변에 개발하겠다고 했던 땅들이 그대로 방치돼있지 않나." 뒤로 갈수록 입주민 김 씨의 목청이 높아졌다.
부지별로는 소방서 등 관공서가 들어선다던 613평은 '수원시 의견 조회 후 매각'으로 바뀌었다. 8층 판매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6000여 평은 오피스텔로 용도가 바뀌었다.
단지 근처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A 씨는 "원래 순수 상업용 건물만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로 바꿨다"며 "이를 위해 원래 8층이었던 곳을 15층으로 수원시에 요청해 용적률을 완화받았다"고 설명했다.
단독주택용지, 근린생활, 의료시설, 편익시설 등이 계획됐던 곳 역시 매각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A 씨는 "현재 7000세대 정도인데, 순수상가가 아닌 아파트가 들어오면 9000세대 정도가 될 것"이라며 "인구는 늘어나는데, 상가 개발이 되지 않으면 불편만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아이파크시티 발전위원회' 관계자는 "현산은 평수가 작고 돈이 안 되는 곳은 매각을 하고, 평수가 크고 교통상황이 좋은 부지는 개발 수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원래 설명과 다르게 용도변경을 해서 개발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인중개사 A 씨는 "나머지 부지를 매각해버리면 계획도시로 개발이 안되고, 난개발이 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현산의 의료시설 유치 계획도 이뤄지지 않았다. 발전위 관계자는 "작년에도 현산측을 만나서 병원 유치에 대해 말했는데, 설립에 관심을 보이는 병원측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산 측에서는 개발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어 매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는 설명이다. 현재 발전위는 아이들을 위한 아동전문병원을 세워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입주민들은 모델하우스도 방치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입주민 김 씨는 "분양당시 복합쇼핑몰인가 짓는다고 했었는데, 10여년 째 계속 모델하우스로 있다"며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는지 모르겠다. 소문만 들려온다"고 했다.
모델하우스는 닫혀 있었다. 문의하자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델하우스 옆과 앞은 넓은 공터로 남아 있었다. 흙길에는 오랜 시간 방치된 듯 쓰레기가 바람에 나부꼈고, 낮은 담장이 둘러쳐져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 미래교육의 시작 미래형 초중통합학교 확정'이라는 낡고 작은 플래카드만 근처에 걸려 있었다.
아울러 개발 이익으로 얻은 수익을 돌려주는 개념의 '기부채납' 과정도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단지 내엔 초중통합학교가 들어선다. 해당 초중통합학교 복합화 시설 사업에 드는 비용 약 235억 원은 수원시에서 확보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산이 275억 원을 직접 시공, 건립하여 기증하는 기부채납 형식으로 바뀌었다.
발전위 관계자는 "근처 대우건설은 1600여 세대 아파트를 짓고 276억 원을 기부채납했다"며 "이곳이 7000여세대인 점을 감안한다면, 275억 원이라는 비용이 적정하냐는 의문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것도 원래 수원시 예산을 들여서 하기로 했던 것"이라며 "시에선 주민들과 협의 없이 기부채납으로 받았다"고 말했다.
수원시 측은 "감정평가를 받아서 나온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학교 환경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아이파크시티 3단지 옆엔 곡정초등학교가 있다. 운동장은 작아 보였다. 학교 앞에선 만난 이 학교 어린이 5명은 모두 단지에 살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학교가 좁은 것 같다"고 말했다.
딸이 곡정초등학교 5학년이라는 주민 최 모(40대·남) 씨는 "학급 수나 아이들이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많다"고 밝혔다. 최 씨는 "현재 5, 6학년들은 급식실이 협소해 교실에서 급식을 먹는다. 과대학급이어서 3년 전에 증축도 한 번 했지만, 여전히 좁다"고 말했다.
곡정초등학교 1학년은 총 9개, 2학년은 10개 반에 달한다. 총 재학생은 1519명. 근처 곡반 초등학교 1학년 총 학급수가 5개, 재학생 이 639명인 데 비해 2배에 달한다. 발전위 관계자는 "원래 초등학교도 2개 정도 들어설 예정이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바람은 뚜렷했다. 원안대로의 개발과 투명한 개발이익금 환수다. 올해 2월 입주민 1200여 명이 대답한 설문조사에서 '변경된 권선지구 도시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이들은 82%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산이 기부채납하기로 바뀐 복합시설물 역시 기존안대로 수원시가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 역시 65%였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수원시 내에 사각형구조로 지하철, 지상철 등 많은 노선이 들어왔는데, 여기만 안 들어왔다"며 "수원시에서 부동산에 조금만 관심있는 사람들은 다 여기만 편파적으로 개발이 안 되고 있다는 걸 알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발전위는 손배소 외에 행정소송도 적극 검토 중이다. 청구기준인원인 300여 명이 넘는 주민이 이미 모여, 수원시에 대한 공익감사청구를 할 예정이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도 찾을 계획이다.
발전위 관계자는 "저희가 새로운 요구를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원안을 지켜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KPI뉴스 / 김지원 기자 kjw@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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