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클럽' 남태현, '한 손엔 기타, 다른 한 손엔 붓' 들다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2021-12-16 10:56:10

"그림 그릴 때 속박에서 벗어난 해방감과 자유 느껴"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킨 바스키아·사이 톰블리에 동질감"
"음악과 미술은 동전의 양면 같아, 평생 짊어질 운명"

국내 미술시장이 그야말로 활화산이다. 올해 열린 국내 주요 아트페어들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기존 매출고를 경신했다. 신세대 컬렉터로 불리는 MZ세대의 시장진입이 큰힘이 됐다. 특히 본업인 배우나 가수 등의 활동을 병행하며 미술작가로 나선 이른바 '아트테이너'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한때 이들의 활동은 그저 취미로 치부됐다. 하지만 이제 어엿한 작가로 대접받는 '아트테이너'가 여럿 나오자 대중의 시각도 변하고 있다. 최근 국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가수 솔비를 비롯한 배우 하정우·구혜선, 가수 나얼·이혜영 등이 그들이다. 

▲ 지난 13일 남태현 작가가 갤러리 '아트컨티뉴'에서 열린 '나눔선물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트컨티뉴 제공]

최근 이런 '아트테이너' 분야에 출사표를 던진 이가 있다.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 멤버로 데뷔해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가수 남태현이다. 지금은 밴드 '사우스클럽'에서 다양한 음악적 재능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취미로 처음 붓을 들었다. 햇수로 8년이 지난 지금 그는 자신의 생애 첫 전시회를 열며 '미술작가' 신고식을 치르는 중이다. 지난 13일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남태현 작가를 만났다. 

이날 전시장에는 국내 '추상표현주의' 액션페인팅의 대가로 불리는 이태량 작가의 현장 드로잉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 작가의 현란한 붓 사위가 허공을 가르자 관객은 일순간 숨을 멈춘다. 

관객으로 변한 남 작가는 하늘 같은 대선배의 천둥 같은 손놀림에 정신이 번뜩한다. 현장에서 그려진 이 작가의 작품은 잠시 후 즉석 이벤트 경매에 부쳐졌다. 

그 순간 남태현은 컬렉터로 변신했다. 이날 경매에서 남태현은 이 작가의 작품을 두고 여러 차례 관객과 경합을 펼쳤다. 결국엔 작품 두 점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주변 관객들은 부러운 듯 신기한 듯 남 작가를 바라본다. 전시장에서 보기 힘든 연예인이기도 하거니와 전시에 참여한 작가가 경매 경합에 참여한 것이 이채로웠나 보다.

이번 전시엔 국내 유명작가 15인과 '아트테이너'인 팝핀현준,남태현 등 17인의 작품 총 250여 점이 선보였다. 그는 이날 전시회에서 컬렉터이자 관객이기도 했지만 이는 '부캐'이고, '본캐'는 작가였다. 이번 전시회에 20점을 출품했다.

▲ 남태현 작가가 지난 13일 '나눔섬물전'에 출품된 자신의 드로잉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갤러리 아트컨티뉴 제공]

기자가 '남 작가'라 부르자 그의 볼은 한순간 달아올랐다. 경매받은 작품을 묻자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킨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와 사이 톰블리(Cy Twombly)를 좋아해요. 그들의 작품을 보면 묘한 동질감을 느껴요. 오늘 이태량 작가님의 현장 드로잉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한국에도 저런 대가가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흥분했나봐요." 

그림을 시작한 계기를 물었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필기보다는 낙서하거나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사실 단순한 낙서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체계화되고 방향성도 생겼어요."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들과의 동질감을 말한 이유일 터다.

남 작가는 그림공부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약점일 수 있지만 강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작업의 과정이나 재료사용도 거리낄 게 없다고 한다. 때론 캔버스를 바닥에 눕히고 옥상에서 물감을 떨어뜨리는 시도도 한다. 이런 작업 방식에 대한 남 작가의 부연. "전생에 청개구리였는지 정형화되거나 갇힌 방식은 싫어요. 재료도 매직·크레용·일반 물감·아크릴 유화 등을 뭐든 상관없어요." 

전향인지, 확장인지 왜 본업인 음악에서 미술로 간 걸까. "작가를 꿈꾸진 않았지만, 매년 10여 점을 그렸어요. 바쁜 음악 활동에 녹초가 되곤 했죠. 남들에게 음악은 휴식이겠지만 제겐 직업이라 때론 가슴을 옥죄기도 해요. 이럴 때 캔버스를 펴요. 그림은 제게 보약이자 휴식이거든요." 

그동안 남 작가는 자신의 SNS 계정에 이따금 팬들을 위해 작품을 공개하곤 했다. 팔리기는 했을까. "에구, 판매하려고 올린 건 아니구요. 그저 좋아서 한 일인데요···판매는 언감생심이죠." 

"작업은 주로 늦은 저녁 시간에 해요. 모두 잠든 밤, 특히 외부와의 단절된 밤은 그림에 몰입하기 좋은 시간이죠. 하지만 공간 만큼은 베란다 같은 야외가 좋아요. 베란다 너머로 불어오는 밤바람은 생명력이 있어요. 가끔 비가 와 방해도 되지만, 이럴 때는 그저 바라만 봐요. 빗물과 섞여 흘러내리는 형형색색 물감의 움직임도 작업의 한 부분이니까요." 

기자는 슬쩍 본업인 음악 이야기를 꺼냈다. 남 작가는 망설임 없이 '도어즈'와 '너바나'를 좋아한다고 했다. 단순한 코드 진행과 멜로디가 좋다고 했다. 특히 짐 모리슨의 쓴 가사 말을 사랑한다고 한다. 대중음악 가사지만 다양한 사유를 불러일으켜 좋다는 것이다. 

"제게 음악은 평생 짊어져야 할 숙명이죠. 하지만 표현 방식은 음악보다는 미술이 더 자유로워요." 인터뷰는 다시 미술 얘기로 이어졌다.

"불특정 다수가 보는 전시공간에 제 작품을 내놓는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흥분됐어요. 전시장 벽에 걸린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땐 첫 앨범을 냈을 때처럼 들뜬 맘에 밤잠을 설쳤죠."

▲ 남태현, 자화상, 2016 [갤러리 아트컨티뉴 제공]

작품 주제를 묻자 그는 오롯이 자신을 그린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고보니 전시장에 걸린 남 작가의 대형 자화상이 눈에 띈다. 자신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선 "제 자신도 아직 모르겠는데 외부로 시선을 돌릴 순 없죠"라고, 단순 명료한 답을 내놓는다. 

"앞으론 살아왔던 날들의 배신, 과거의 꺾긴 희망 등 제 안에 쌓인 것들을 그리려 해요. 어쩌면 안에 쌓인 응어리일지도 어쩌면 캔버스에 던지는 화풀이일 수도 있어요."

설명이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부연했다. "단순한 화풀이는 아니에요. 지난 시간의 엉킨 응어리를 모두 토하려 해요. 그래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죠."

남 작가는 전시 기간에 경험한 에피소드도 전했다. "하루는 제 작품을 구매한 팬이 선물이라며 구매 작품을 가져 왔어요. 작품이 온전히 제게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구매한 것이니 가져가라며 돌려보냈지만, 작품을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그래야 저도 또 다른 생명을 위해 붓을 들 수 있으니까요."

불편할 수도 있는 질문을 던졌다. 최근 권지안(가수 솔비) 작가의 국제대회 수상을 두고 벌어진 '아트테이너' 논란에 대해서였는데, 잠깐 생각에 잠긴 후 입을 열었다.

"우선 세계적 거장 요셉 보이스의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기존의 연예인 명성을 등에 지고 쉽게 미술계에 등단했다는 이유로 연예인 미술작가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솔비 누나뿐만 아니라 대다수 아트테이너들은 미술공부를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며 더 좋아지는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죠. 색안경 없이 바라봐 주신다면 더 나은 작품으로 보답할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이왕에 발을 디뎠으니 미술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하려 해요."

헤어지는 길에 남 작가는 요즘 하루하루 작업 욕심에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더 성숙한 작품으로 대중과 만나고 싶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회의 다양한 부조리도 그림에 담고 싶다고.

남태현 작가의 생애 첫 번째 전시인 '드로잉나눔+선물展'은 서울 강남의 갤러리 '아트컨티뉴'에서 열리고 있다. 이달 29일까지 이어진다. 전시회 수익금 일부는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돌보다 원 가정으로의 복귀를 돕는 (사) 땡큐(이사장 윤설희) 후원금으로 쓰인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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