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 다시 '원인불명' 호흡기질환 사망자 속출
김당
dangk@kpinews.kr | 2021-11-08 09:49:38
"8군단서 코로나 의심증세 사망…해당지역 봉쇄, 외출∙이동금지 '비상'"
지방은 식량난∙강제노역…군인들, 평양 보낼 밤 30kg 따느라 부상 속출
사진 이미지로 보는 평양의 가을은 여유롭고 평화롭다. 대외 선전매체인 '조선의오늘'은 주말인 6일 '사진으로 보는 평양의 가을풍경'이란 제목으로 화보 기사를 실었다.
평양 시내의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길과 그 너머로 보이는 보통문, 그리고 마스크를 썼지만 가을 정취를 누리는 시민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호수가에 앉아 평양의 만추를 캔버스에 담는 한 시민의 모습은 여유롭다.
조선의오늘은 지난 3일 "오늘도 수도 평양의 곳곳에서는 군밤, 군고구마 향기가 차 넘치고 있다"며 '류(類)다른 향취, 이채로운 가을풍경'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사진과 함께 실었다.
이 매체는 "김정은 동지께서 평양시 중심구역에 있는 기본도로 주변에 군밤∙군고구마 매대를 비롯한 야외매대들을 설치할 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다"면서 "바로 그런 뜨거운 사랑에 떠받들려 수도의 거리마다에 군밤, 군고구마 향기가 차 넘치게 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평양의 군밤, 군고구마는 인민을 위하여 국가가 많은 자금을 투자하여 특별히 봉사하여 주는 인민적인 혜택이며 사회주의 향기"라며 "진정 민족의 향취가 넘쳐나는 수도의 이채로운 가을풍경, 이것은 무심히 바라볼 수 없는 인민사랑의 화폭이며 인민이 주인된 사회주의 우리 조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밤 먹는 평양 벗어나면 식량난 심각…"두 달분 86만 톤 부족"
하지만 평양을 벗어나면 북한 매체가 자주 쓰는 표현대로 '화폭'이 달라진다.
같은 날 노동신문의 '결사관철의 의지를 백배하며 연일 분투' 기사에 따르면, 황해제철연합기업소, 흥남비료연합기업소, 2.8비날론연합기업소, 북창화력발전연합기업소, 수풍발전소 등의 기간공업 부문 노동자들은 '올해 전투목표를 무조건 수행하기 위한 총돌격전'을 벌이느라 연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남한의 대기업 노동자에 해당하는 이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방의 주민들은 거듭된 식량난으로 인해 사실상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강요당하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6일 "비료를 사용하지 못해 올해 농사 수확량은 작년보다 더 나빠져 농민들이 제대로 된 배급 식량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주민과 전문가들을 인용해 "빈약한 수확은 수백만 명의 시민들을 죽게 만든 1990년대에 겪었던 엄청난 기근의 반복에 직면할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료가 부족한 것은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될 때 북한과 중국이 국경을 폐쇄하고 모든 무역을 중단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함경북도의 한 집단농장 주민은 "대부분의 경우 군대는 수확량의 60%를, 농민들은 40%를 얻게 될 것"이라며 "군을 위해 남겨둔 쌀(비축 군량미)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농장의 배급량이 한두 달 정도 부족할 것"이라고 RFA에 말했다.
RFA의 인터뷰에 응한 주민들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최근 추수 기간에 농장 노동에 동원된 주민들이 쌀알을 옷에 숨기지 않도록 몸수색을 할 정도로 집단농장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국가정보원도 지난달 28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군대의 식량을 유지하는 것은 정권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 추산에 따르면 인구의 40%가 영양실조에 빠졌고 올해 이미 기아 사망자가 보고된 상황에서 가을 수확은 차질 없이 시작됐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면서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식량난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앞서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북한이 올해 식량 86만 톤, 또는 인구 2500만명이 약 두세 달 동안 소비하는 양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했다. 미 농무부도 '국제 식량안보 평가 2021~2031' 보고서에서 올해 북한 인구 2590만 명 가운데 63%인 1630만 명이 식량부족에 노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평양 근교 부대들, 매일 병사 1인당 밤 30kg(2500~3000개) 수거해야
평양 특별시민들을 위한 희생의 대열에는 군인들도 빠지지 않는다.
지난 3일 평안남도 송천군에서 군복무 중에 나무에 올라가 밤을 따다가 떨어져 팔이 부러진 병사의 아버지를 인터뷰한 RFA에 따르면, 평양 근교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의 군인들은 매일 1인당 밤 30kg, 대략 2500~3000개를 모으기 위해 동원되고 있지만 이들은 단 한 개의 밤도 먹을 수 없다.
군인들이 수확한 밤은 김정은과 평양의 선전 계획에 사용되며, 정치적 신뢰성을 검증받고 시골 주민들이 얻을 수 없는 특권과 생활 방식을 누리는 수도 시민들에게 시장 가치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기 때문이다.
이 주민은 "수도 평양의 특권층에 대한 김정은의 사랑을 과시하기 위해 당국이 부대 전체를 동원해 평양으로 보낼 밤을 수확하는 과정에서 아들이 나무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졌다"면서 "식량이 부족한 군인들에게 더 많은 특권을 가진 시민들을 위해 음식을 모으도록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 주민은 "군 총참모부의 동원령에는 매일 30kg씩 김정은의 이름으로 평양에 보내질 밤을 수거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면서 "평양에 업무차 출장 갔을 때 한 노점에서 군밤을 샀는데 200g짜리 군밤 한 봉지가 국내 시장의 절반 가격인 2000원(0.39달러, 한화로 약 5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평양의 삼석지구의 군부대에서 근무한 탈북자는 "2016년 제대할 때까지 매년 가을이면 부대 전체가 밤을 따기 위해 동원됐다"면서 "밤나무는 다른 종류의 나무보다 약해서 매년 많은 군인들이 나무에서 떨어져 다쳤다"고 말했다.
그는 "평양의 밤 판매대를 관리하는 채소도매센터에 밤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과수원이 있지만 생산량은 충분치 않다"면서 "그래서 해마다 가을이면 평양 주변의 군부대가 동원돼 과수원을 보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매년 그렇게 많은 밤을 주웠지만, 평양에서 10년 동안 군복무를 하는 동안, 나는 군밤 판매대에서 밤을 살 수 없었다"면서 그 까닭을 이렇게 밝혔다.
"평양에서만 볼 수 있는 군밤 매대가 인민을 향한 당의 사랑의 본보기라고 TV와 신문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당의 사랑이 아니라 수많은 장병들의 땀과 희생이다."
식량난과 강제노역보다 더 심각한, 지방의 코로나 의심환자들
식량난과 강제노역보다 심각한 것은 최근 지방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그로 인한 사망이 의심되는 호흡기질환자들이 발생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는 점이다.
RFA는 지난 5일 복수의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당국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폐와 호흡기 질환에 의한 사망자는 늘고 있는 실정이라고 보도했다.
평안남도 문덕군의 한 주민 소식통은 지난 3일 "우리 동네에서도 결핵으로 3명이 죽었는데 주민들이 발열과 기침증세로 병원을 찾아가면 코로나가 아닌 독감이나 폐렴, 결핵이나 영양실조로 진단을 내린다"면서 "중앙의 간부나 직접 담당했던 의사 외에는 환자가 코로나로 사망했는지, 다른 병으로 사망했는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함경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도 같은 날 "청진시 청암구역의 한 지역에서 며칠 사이에 10여명의 결핵환자가 독감 진단을 받고 사망해 충격을 주고 있다"면서 "병원측은 영양실조에 따른 건강 악화로 사망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발열증세를 호소하다가 독감에 의한 폐렴으로 진단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병원측에서는 환자들의 사망소식만을 가족에게 알리고 정확한 사인에 대해서는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시신을 곧바로 인근 산에 매장했다"면서 "환자의 가족과 주민들은 '정확한 사망원인이라도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당국을 원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도 지난 3일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9월 중순경 당시 8군단 지휘부(평안북도 염주군 룡산리) 군의소에 경비 중대 2소대 1분대 부분대장 하사 조씨가 실려와 열흘 후 돌연 사망했는데, 그가 접촉한 사람들도 코로나 의심 증세를 보여 그 지역 일대가 전면 봉쇄되는 초유의 사건이 터졌다고 보도했다.
군 당국은 '외부와의 접촉'과 '발열' 때문에 코로나 비루스(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8군단으로 통하는 모든 출입구와 통로에 8군단 자체 위생방역 단속초소가 증강 배치됐고, 지난 9월 29일부터는 군인 사택 구역 전체 봉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또한 이 지역 주민들은 유동(流動)은 물론 외출까지 전면 금지됐고, 외부 인원 유입도 차단됐다. 이어 "군 당국은 다른 의진자 동태를 지켜보면서 이달 18일까지 봉쇄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라며 "그만큼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에서 코로나 의심증세의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다만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발표한 코로나19 주간 상황보고에서 지난달 21일까지 북한 주민 약 4만3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코로나 19 검사 결과, 북한 당국의 통보를 기반으로 여전히 확진자는 한명도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15일부터 21일까지 새로 검사를 받은 사람 중 109명은 독감과 유사한 질환이나 중증 급성 호흡기 감염 환자였고, 582명은 의료 종사자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제공하는 자료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북한의 감염병 예방의학 및 보건의료 수준은 국제 기준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 미국 '존스 홉킨스대 보건안보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2019 글로벌 보건안보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보건안보 역량은 전체 195개국 중 193위로 가장 취약한 국가로 분류된다.
우리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북한 보건성은 '인민보건'이라는 이름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홈페이지만 살펴봐도 북한의 보건의료의 수준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다.
명색이 보건성 홈페이지인데도 코로나19에 관한 변변한 논문이나 예방정책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기껏해야 '방역사업을 보다 강도높게' 제목의 화보에 실린 사진 12장과 "자기자신과 사랑하는 자식들의 생명을 지키고 조국과 인민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해 모두가 날로 심각해지는 세계적인 보건위기에 대처하여 방역사업을 빈틈없이 해나가고 있다"는 사진설명뿐이다.
관련 사진을 봐도 공공 시설이나 식당, 사무실 등지에서 소독수를 뿌리고 체온을 재는 정도일 뿐이다. 방호복을 입고 소독수를 뿌리는 방역 성원들 뒤로 보이는 '과학중시'라는 표어가 무색할 지경이다.
탈북민들은 "북한 내부에서는 코로나의 '코'자만 꺼내도 잡아갈 정도로 방역수칙 위반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며 "코로나 의심증상 환자들은 급성폐렴이나 열병으로 처리한다"고 전했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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