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왕 이해찬, '윤석열 저격수'로 등판…속셈과 득실은

허범구 기자

hbk1004@kpinews.kr | 2021-09-08 11:36:05

野 1등 때려 與 경선 잡음 정리·'원팀 기조' 다잡기
대선서 역할하고 이재명 밀어 차기 정권 입지 강화
거친 언행으로 잇단 구설수…'이해찬 리스크' 우려
尹 관련 '사주 의혹' 판키우기…진중권 "어이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는 여권에서 막강한 위상을 지닌다. 국무총리와 당대표를 거친 친노 좌장 7선 출신 거물 정치인. '상왕'으로 불릴 만한 스펙이다.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상임고문이 지난 5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송영길 대표와의 상임고문단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이 전 대표는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총리를 지냈다. 사실상 '내치'를 위임받은 '실세형'이었다. 그가 2년 가까이 내각을 통솔하는 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일했다. 이 전 대표가 총리를 마치고 난 1년 뒤에야 문 대통령은 비서실장으로 영전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 전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도 어려워했다고 한다"며 "문 대통령에겐 더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전 대표가 뭘 한다면 당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선 당의 지침이자 가이드라인이 된다. 그동안 잠행하던 그가 최근 정치 전면에 나선 듯한 행보를 보이는 게 주목되는 이유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둘러싼 '고발 사주' 의혹이 빌미를 줬다. 이 전 대표는 판을 키우려고 팔을 걷어붙인 모양새다. '윤석열 저격수'를 자처한 셈이다. 

이 전 대표는 윤 전 총장 의혹에 대해 "우리나라 민주주의 체제를 교란시키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규정했다. 지난 7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인터뷰에서다.

그는 "(지난 총선) 당시 제가 당 대표를 할 때 세가지 정도의 공작을 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때 감사원 쪽에서 하나 준비하고 검찰에서 2개를 준비하는 것 같다고 했다"며 "2개 중 하나는 이거였고 하나는 유시민 건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4월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다스뵈이다'에서 "공작정치가 작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시민 이사장 건 하나가 아니라 제가 파악하는 것도 또 하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대선을 불과 6개월 앞두고 가장 핫한 이슈 파이팅에 나선 이 전 대표. 그것도 당내 대선후보 경선이 '이재명 대세론'으로 기우는 민감한 시점이다. 그런 만큼 대선 게임에 본격 등판한 것으로 비친다. 선거의 귀재 답게 대선판을 주도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일단 '윤석열 때리기'가 이 전 대표 등판 배경으로 풀이된다. 치열한 대야 전선을 구축함으로써 경선 과열로 쪼개진 당심을 결집해 '원팀 기조'를 다잡겠다는 전략이다. 이 전 대표는 조국·윤미향 사태, '추·윤 갈등'의 위기국면에서 강력한 '그립'으로 내부단속을 하며 정면돌파했다.

이 전 대표 등판은 '원팀 정신' 유지를 넘어 '대선 이후'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한 정치 전문가는 "대선 정국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면서 차기 정권의 '지분'을 확실히 다져놓겠다는 게 이 전 대표의 속셈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전 대표는 이재명 경기지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 지사가 황교익 경기관광공사 사장 후보자 내정 논란에 휩싸였을 때 사태 수습을 주도한 건 일례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해 1월 1일 서울 여의도 중앙 당사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신년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친문 의원들을 이재명 캠프에 속속 합류시켜 '반이재명 정서'를 희석화하는 것도 이 전 대표 공이다. 부산 친문 핵심 전재수 의원은 전날 이 지사 지지를 선언했다. 지난주말 충청 경선을 통해 '이재명 대세론'은 확인됐으나 '반이재명' 기류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 전 대표 도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여권 내 최고 선거 기획자로 꼽힌다.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 당선을 이끌며 선거마다 큰 역할을 했다. 박근혜가 '선거의 여왕'이라면 이해찬은 '선거의 제왕'으로 불린다.

그가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도 성공한다면 정당사에 남을 기록이다. 당내 상당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대선 승리 후 '상왕'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상왕'까지 참전한 만큼 민주당의 대야 공세도 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이 단일대오를 갖추고 윤석열 때리기에 주력하면서 경선 잡음은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전 대표 등판의 득과 함께 실도 불가피하다. 고발 사주 의혹이 정국의 블랙홀처럼 작용하면서 민주당 경선 흥행 참패를 우려하는 시각이 적잖다.

'이해찬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억세고 올드한 이미지와 거친 언행 탓이다. 기분 나쁘면 발끈하며 독한 말을 내뱉는 '버럭 스타일'은 유명하다. 2030세대와 중도층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월 "선천적인 장애인은 어려서부터 장애를 가지고 나와서 의지가 좀 약하다"고 말해 장애인 비하 논란에 시달렸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상가에서 취재기자를 향해 "XX자식"이라고 막말도 했다.

지난 4월 서울시장 보선 때는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를 거칠게 비난했다. "MB(이명박 전 대통령) 키즈" "내곡동 이익 다 해먹은 자영업자" 등 네거티브를 주도해 역효과를 자초했다. 재보선 판세에 대해 "거의 다 이긴 것 같다"고 자신해 '오만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여당의 선거 참패에 '이해찬 책임론'도 거론됐다.

고발 사주 의혹은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여당은 윤 전 총장 낙마를 꾀하지만 국민의힘은 가짜뉴스로 끝난 '검·언유착' 사건의 재판을 기대한다.

이 전 대표는 역풍을 우려한 듯 김어준 방송에서 "윤석열 후보가 '증거를 대라'고 하는데 이런 은밀한 일에 증거를 남기겠나"라며 "수사 자체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자 김어준은 "수사를 통해 이게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냐"며 "그렇다면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윤석열 후보 자격을 문제 삼고 있는데 이건 후보 자격 문제까지 연결되지는 않겠네요"라고 물었다.

이 전 대표는 "법적으로는 자격 문제가 아닌데 정치라고 하는 건 법적인 요소만 있는 게 아니고 도덕적인 요소가 있고 상식이 있지 않냐"라며 "그러니까 아마 이것 때문에 윤석열 후보가 정치적으로 타격을 많이 받을 것 같다"고 답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8일 페이스북에서 "어이가 없다"고 이 전 대표를 직격했다. "정치라는 게 법적인 요소만 있는 게 아니고 도덕적 요소와 상식이라는 게 있지 않느냐"는 이 전 대표 발언을 비판한 것이다. 진 전 교수는 그러면서 댓글로 "감찰에서 나온 게 없나보다"라고 꼬집었다.

KPI뉴스 / 허범구 기자 hbk1004@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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