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시로 위무하고 전하는 아픈 삶의 이야기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1-08-26 15:01:37

김영진 첫 시집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문의'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접한 아픈 사연들과
평범한 사람들 유머와 생각 시로 녹여내
"동정 받을 대상 아닌, 사회가 만든 고통"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백 일간 여섯 분 돌아가셨다// 스스로 목숨 끊었다// 아흔 살 넘은 노인 잠든 손자 두고 자신 지탱하던 보행기 밟고 뛰어내렸다// 아픈 손자도 할아버지께서 사라진 어둠 속으로 아슬아슬한 삶 맡겼다// 밥 먹을 때라도 패지 말라며 울부짖던 장애인, 아버지가 음주 폭력으로 경찰에게 잡혀가자 집 밖으로 뛰어내렸다// 아파트 복도 울음소리 멈췄다// 가계 빚 쪼들리던 아주머니는 희망보다 절망이 익숙하고 죽음은 삶보다 두렵지 않았다// 여섯 분 돌아가신 뒤 자리가 빈 영구임대아파트 들어갈 수 있느냐 문의 이어졌다// 당장 들어가시기는 힘들고 신청자 많아 일 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답 드렸다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문의')

 

김영진(48) 시인이 펴낸 첫 시집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문의'(시인동네) 표제작이다. 더 보태고 뺄 것도 없다. 사실을 담담하게 전할 뿐이지만 여운은 만만치 않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인 만큼 좋지 않은 일도 자주 생긴다. 가난한 이들이 영구히 살 수 있는 이 집들은 주인이 영원히 떠나야 빈자리가 생긴다. '영구임대아파트'에 일어나는 비극이 다른 누군가의 희망이 되는 뼈아픈 역설이다.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현장에서 일하며 많은 아픈 사연을 접해온 김영진 시인. 그는 첫 시집에 이들의 이야기를 선명하게 담아냈다. [김영진 제공]


김 시인은 사회복지사로 살면서 동사무소와 구청에서 가정방문부터 시작해 기초수급 관련 신청 받는 일을 비롯한 다양한 현장 업무를 해왔다. 이 과정에서 만난 이들의 사연은 그냥 묻어두기 안타까운 경우가 많아 짬짬이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이 기록들은 물론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작금 한국 사회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첫 시집에 함께 담겼다. 지금은 사회복지 업무를 떠나 광주시 남구청에서 남북협력팀장 직책을 맡고 있는 그를 전화로 만났다.

 

"실제로 사연을 들어보면 더 가슴 아픈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이 힘들고 싶어서 힘든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에 놓인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을 단순히 가엽다든가, 도와줘야 될 대상으로만 여기기에는 그분들 한 생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더라구요. 그래서 조금씩 기록해놓은 이야기들입니다."

 

비스듬히 누운 낮달, 미끄러져 내릴 것 같다// 할머니께 가족 묻자// "소양강가 신혼집에 젖먹이 딸 두고 신랑 주먹 피해 뛰쳐나왔어."/ 담담한 답이 돌아왔다// 다시 이어진 초기 상담, 무등산 자락까지 흘러온 시간 따라가다 어두워진 눈빛 뒤따랐다// 그저 하루를 살아야 했고 불빛 보고 달려든 사내와 하루살이도 했다// 자녀와 연락이 닿는지 묻는 말에// "다 자랐을 딸 볼이라도 만지고 싶어, 가진 거라곤 손가락에 낀 금반지가 전부인데 이것이라고 끼워주고 싶어."// 그 뒤 할머니 말이 지퍼처럼 잠겼다// 시멘트 바닥에 낮달, 웅크린 채 주저앉았다.('낮달')

 

신혼의 아내는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휘두르는 남편의 폭행을 피해 젖먹이 딸을 두고 뛰쳐나와야만 했다. 이후 남도 땅 광주까지 흘러와서 독거노인으로 살아간다. 그 할머니, 다 자랐을 딸 볼이라도 만지고 싶다고, 가진 거라곤 손가락에 낀 금반지가 전부인데 이것이라도 끼워주고 싶다고 웅얼거리다 침묵에 잠긴다. 그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다행히 남동생이 나타나 장례를 치러주었다고 시인은 전한다.  

 

어릴 적 넝마 덮고 자란 그의 뼈마디는 철근마냥 굵고 단단하다//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게 굳은 등// 문맹인 그에게 술은 말의 시작, 신청서 쓰는 일도 남의 손 빌려야 했다// 막걸리 마셨나 보다 낯빛이 흙빛으로 변했다// "목숨 끊지 못해 오늘도 찾아왔다"로 시작한 술주정, 그의 목에서 이따금 쇳소리가 섞여 나왔다// 행정복지센터에 가득 찬 술 냄새// 소파에 드러누워 누군가에 말하듯 읊조리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철근 옮기고 공중에 매달려 철사 조이는 일은 아내와 아들딸마저 사고로 떠난 그의 삶보다 아슬아슬하지 않다// 술기운 빌어 기초연금 신청하러 온 그는 쇠보다 강한 자존심 바닥에 내려놓았다 ('철근 인생')

 

'철근 인생' 노인은 65세를 넘겨서도 고공에서 철사를 조이며 일을 했다고 한다. 위험도가 높은 만큼 임금도 높아 실제 소득으로 잡힌 금액이 기초수급자 신청을 하는데 장애가 됐다. 늙어서도 위험한 막노동을 해서 번 돈은 아내 병수발에 다 들어가니 막막할 따름이다. 그는 술기운을 빌어 동사무소에 찾아와 형편을 하소연하곤 하지만 실무자는 난감하다. 시인은 술 취해 쓰러진 이 노인을 집까지 모셔다 드리는 일을 반복했고, 그 인생을 시에 담았다. 시인은 "제가 어떻게 이 분들을 대해야 하는지 생각들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그 분들 마음을 헤아리려고 쓴 것"이라면서 "사실은 저를 위해 쓰는 셈"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분들은 동정 받아야 될 대상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을 헤치고 나온 분들"이라며 "이런 분들 이야기를 알려드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옆 환자에게 문병 온 아주머니들// 이불이랑 옛 애인은 들추는 게 아니야, 여기서 말해도 되나, 바람? 사랑은 다 실수라니까 깔깔깔// 실수라는 대목에 끼어들고 싶다// 맞아요, 악기도 원목 잘 다듬어 멋진 소리가 나는 게 아니라 어쩌다 실수로 기막힌 소리가 나오는 거래요// 아무 말 잔치에 말 섞고 싶다// 무통주사 놓아 달라 외치고 병실 이곳저곳 앓는 소리 이어지던 곳이 수다 탓일까 신음조차 들리지 않는다// 다들 눈 감고 있어도 사랑 이야기 담은 링거 바늘, 귓속에 꽂아둔 눈치다// 환자에게 오래 머무는 게 아니라는 왕언니 손짓에 아주머니들이 모두 뒤따른다// 다시 신음이 흐르는 병실, 나 역시 무통주사가 필요했다 ('6인실')

 

아주머니들이 6인실에 문병 와서 한바탕 왁자하게 웃다 떠난다. '사랑은 실수'라고? 옆에서 듣는 시인도 한자리 끼어들고 싶다. 맞다고, 악기도 어쩌다 실수로 기막힌 소리를 내는 명기로 태어난다고. 아프다고 신음소리 높이던 옆 병상 환자들도 가만히 수다에 귀 기울이느라 잠시 조용해진다. 힘든 상황에서도 유쾌한 농담 한 마디가 '무통주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번 시집에는 아프고 힘든 이야기들만 진설된 건 아니다. 시인 특유의 유머 감각이 해학으로 깔린 시편들도 눈에 띈다. 이를테면 동사무소를 찾은 할머니들의 넉살 좋은 농담, '영감을 팔러 장에 간다'는 한마디가 귀에 꽂혀 이런 시도 썼다.

 

목욕탕에 다녀오시나, 두 분 할머니/ 껍질 벗긴 삶은 계란마냥/ 하얗고 말간 얼굴로/ 서로 정담 나누시며 걷는다// 동생, 이제 집에 가면 뭐 할랑가?/ 뭐 하긴요, 시장에나 갈라요/ 장에는 뭐 하러 갈라고 그런가?/ 영감 팔러 갈라 그라요/ 엥, 얼마에 팔라고 그란디?/ 오천만 원만 주면 팔라고 그라요/ 오메야, 팔릴랑가 모르것네/ 그란디 그 돈 받으면 어디따 쓸라고?/ 천만 원짜리 영감 있음 바꿀라고 그라요// 목욕바구니 나란히 든 두 분/ 구부러진 등 위로 햇살이/ 깔깔깔 빛난다 ('할머니 듀오')

▲평범한 이들의 농담도 해학으로 녹여낸 김영진 시인. 그는 "유쾌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웃었다. [김영진 제공]


할머니들 입담에, 동사무소 사회복지사 시인은 배꼽을 잡은 모양이다. '오천만 원'이나 받고 팔았으면 그만이지, 또 굳이 '천만 원' 짜리 영감으로 바꿀 건 무언가. 사실은 영감을 팔기 싫다는 뜻이었을 거라고, 시인은 웃는다. 이 시는 라디오에서도 소개돼 화제가 됐다. 삶의 깊은 애환에서 우러나는 해학은 애잔한 위로로 다가온다. 이번 시집에서 자신의 정서를 가장 근접하게 표현한 시일 거라고 추천하는 '서글픈 농담' 하나는 이렇게 흘러간다.

 

저녁달이 굶주린 배처럼 푹 꺼졌다/ 한잔할까/ 주월주꾸미, 거문도횟집, 삼순이전집/ 술집 늘어선 사무실 부근/ 거리 불빛이 옷깃 끌어당긴다/ 뱃속은 이미 탁자 위에 놓인 빈 소주잔/ 갑자기 나오라 말할 이 마땅치 않고/ 홀로 마시자니 처량한 노릇/ 그러고 보니 자꾸 할까만 는다/ 물어볼 말 있어도 놓치고/ 그리운 이 떠올라도 연락 미룬다/ 만날까 먼저 말한 친구와 약속 잊고/ 태안화력에서 일하다 숨진/ 스무 살 청년의 빈소라도 가야지/ 생각하다 분향도 못한다/ 집으로 말짱하게 돌아오니/ 아내보다 키 큰 두 딸이/ 연예인 보는지 공부를 하는지/ 노트북 앞에 앉아 바쁘다/ 치우지 않은 그릇 씻고/ 일 마치고 한밤중 돌아와/ 화장 지우는 아내에게 묻는다/ 할까? ('할까') 

 

"이 시가 제 마음인 거 같습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적인 한계 때문에 답답하거든요. 이 세계에서는 참아야 될 일들이 많고, 하고 싶어도 못하는 행동들도 많습니다. 각종 규정으로 제한된 범위 내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에 할까 말까 망설이는… 어찌 보면 이 시가 제 모습을 잘 드러낸 거죠."

 

1부는 주로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 2부는 가족을 비롯한 일상의 사람들, 3부는 사회를 향한 그의 생각들 중심으로 구성했다. 광주대 문예창작과에서 조태일을 스승으로 모셨던 그는 청춘 시절에는 열심히 시를 써서 여러 상도 받았지만, 스무 살에 만난 아내와 일찌감치 결혼해 가족 부양 의무를 앞세우다 2017년 계간 '시와사람' 신인상을 받으며 늦깎이로 등단했다. 그는 "사람들 사는 모습을 선명하게 잘 보여주기만 해도 충분한 울림을 줄 수 있다"면서 "앞으로도 평범한 삶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그려가겠다"고 말했다. 시인은 '사는 동안 웃고 떠들고 뒤엉킨 하루, 그 모서리들이 모여 한순간 시로 태어날 것을 믿었다'고 시집 뒤에 썼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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