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사는 건 시시하지만은 않겠지, 그렇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1-08-10 14:31:08

작가 8인 단편 모음집 '여덟 편의 안부 인사'
아픈 기억 소환하고 곤고한 삶을 돌아보는
'팬데믹 시대' 느슨하게 공유하는 이야기들
"그 시간이 문장으로 남을 수만 있다면…"

여성 작가 8인이 단편소설을 써서 단행본으로 묶어냈다. 표제는 '여덟 편의 안부'(강). 팬데믹 시대를 건너가는, 굳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헤쳐나갈 수밖에 없는 곤고한 삶들을 돌아보고 다독이면서 그 훈향을 읽는 이들에게도 전해주는 이야기들이다. 50대(권여선 강영숙 오수연)에서부터 40대(조해진 하명희 이승은)와 30대(박서련 임솔아) 작가들이 고루 섞인 필진이다.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고통의 모양과 크기는 각기 다르지만, 그 이야기들을 진설함으로써 발산하는 위로의 숨결은 따스하다. 이들은 대체로 지나간 아픈 기억을 들추어내 곱씹어가며 현재의 삶을 돌아보는 방식을 취한다. 소설로 행하는 치유의 의식이다.

 ▲여성작가 8인 단편모음집에 참여한 소설가 오수연, 권여선, 강영숙(왼쪽부터). [도서출판 강 제공]


'오래전 젊은 날에, 걸리는 족족 희망을 절망으로, 삶을 죽음으로 바꾸며 살아가던 잿빛 거미 같은 나를 읽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니, 그런 사람을, 나를 알아본 사람을, 내게 그러지 마, 그러지 마, 하던 사람을 내가 마주 알아보고 인사하고 빙글 돌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 사람은 나와 춤추면서 넌 거미가 아니라고, 너는 지금 너에게 덫을 치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작고 딱딱한 결정체로 만족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는 더 풍성하고 생동적인 삶을 욕망할 수 있다고, 이 그물에서 도망치라고 말해주었을까.'

 

이 소설집을 강영숙과 함께 제안한 맏언니 권여선은 '기억의 왈츠'에서, 젊은 날 자신을 스스로를 황폐하게 내몰았던 행태를 떠올리며 그녀가 예의를 갖추지 못했던 남자에 대한 회한을 고백한다. 대학원 동기였던 그 남자 '경서'는 중학교 때부터 썼던 일기를 그녀에게 보내왔지만, 그 의미를 무시한 채 읽지 않다가 우편으로 돌려보내고 잊었다. 그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고, 숫자 1 2 3이 겹치는, 드물게 음력 12월 3일과 숫자가 겹치는 그 해 양력 1월 23일 숲속의 식당에 가서 하나 둘 셋, 왈츠의 리듬으로 같이 춤을 추자는, 뒤늦게 발견했던 그 남자의 편지를 기억의 회로에서 건져낸다. '하나 둘 셋. 둘이 함께 왈츠의 스텝을 밟는 날. 두 겹의 차원이 동일한 무늬로 만나는 날. 그날 우리 숲속 식당에 가자.' 이 기억은 코로나로 인해 수능을 12월 3일로 연기한다는 뉴스가 촉발시켰다. 현재의 재난이 먼 과거의 일을 떠오르게 했고, 그 기억은 회한으로 딱딱해져 아프다. 아프지만, 다시 생의 좌표를 입력한다.

 

'아직 희망은 있다. 내가 팔십오 세까지 산다면 육십 년마다 돌아오는 진정한 왈츠의 날을 다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나는 숲속 식당의 마당에 홀로 서 있지 않을 것이다. …어둠이 내리고 잿빛 삼베 거미줄이 내 위에 수의처럼 덮여도 나는 더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 나를 타인처럼, 관객처럼 만든 게 아니라 비로소 나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는 걸 아니까.'

 

강영숙은 '남산식물원'에서 남산에 있는 여중·여고에 같이 다녔던 '은수'의 동창 '종규'를 떠올린다. 스무 살이 지나면 개명할 거라던 종규는 서울역 인근 도심 판자촌 도동에 살던 친구다. 은수는 예술대학 사진과에 들어가 유복한 집안의 다이앤과 급속히 가까워지면서 셋이서 함께 어울리지만 종규는 끝내 섞이지 못한 채, 스스로 삶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은수는 도동을 찾아와 홀로 사는 종규의 모친을 만나고, 도동 골목을 서성거리며 가난을 오브제로 사진 찍기를 즐기는 이들과 비좁은 돼지우리를 촬영하는 자신을 오버랩시키며 무심한 삶을 관찰하고 드러낸다. 은수는 종규가 자주 찾던 남산 도서관 인근, 지금은 사라진 남산식물원을 떠올리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그때처럼 녹색 이파리들을 얼굴 가까이 대고 마음껏 숨 쉬고 호흡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강영숙에게 그 기억들은 권여선과는 달리 딱히 희망의 좌표로 다시 설정되진 않는다. 오래 지난 종규의 카메라 속 필름들처럼 '사진은 무심하게 아무것도 말해주는 것이 없어 오히려 우리의 생을 닮아' 있을 따름이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우리의 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목적지를 다시 입력하는 건 읽는 이의 몫이다.


'이별 후에 알게 되는 것들. 비밀들. 비밀을 넣으면 풀리는 생의 조각들. 비밀을 알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그것이 이별이지만, 그래도 아픔이 뭔지 알게 되는 생의 비밀이 거기 있다고. 엄마는 세상의 폭력을 기억하는 것으로 맞선 게 아니었을까.' 

 

하명희가 '십일월이 오면'에서 되살려내는 엄마에 대한 기억은 권여선이 시도한 화해와 닮았다. 십일월의 마지막 날, 일흔여섯 번째 생일 다음날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둔 엄마는 어린 자식들을 놓아두고 쪽지 하나 남긴 채 가출했었다. 아빠가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있는 동안 엄마는 돈을 빌리러 갔다가 사채업자들에게 '아픈 일'을 당했다고 했다. 역시 어린시절 '아픈 일'을 당해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다 출가한, 승복을 입고 중환자실 엄마를 찾아온 이모에게 들은 이야기다. 모두 외면했을 때 뒤늦게라도 자신에게 찾아와 맺힌 걸 풀어준 이가 엄마였다고, '세월이 지나긴 했지만 그때라도 내게 손을 내밀어서 이모가 거기서 풀려나온 거'라고, '이만큼 살아보니까 지나쳤던 일을 되돌아가서 풀어내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고, 이모는 말했다. 이미 흘러와버렸지만 뒤늦게라도 돌아가 지켜내는 일, 엄마는 그 일을 '아픈 일'을 겪고 지울 수밖에 없었던 '막내'를 끝까지 기억하는 방식으로 치러냈다.
     

▲왼쪽부터 소설가 하명희, 조해진, 이승은. [도서출판 강 제공]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근사하고도 날카로운 문장으로 가득한, 마지막 문장 너머로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최종적으로는 읽는 이의 삶으로 흡수되는 소설을 간절히 쓰고 싶었고 그런 소설만 쓸 수 있다면 한 인간으로서의 삶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고 혜영은 자신했다. …슬픔은 구체적이라고, 그날 혜영은 생각했다. 자신의 습작 소설에 등장했던 환멸이나 절망 같은 추상명사는 그 구체적인 슬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도.'

 

이번 소설집 표제로 차용한 조해진의 '혜영의 안부 인사'는 '쓰는 자'들이 현재의 고단한 삶을 견디는 방식을 보여준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혜영의 부모 집에는 수년 전부터 언니가 들어가 살고 있고, 언니는 9급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다.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콜센터에 취업한 혜영은 억지를 부리는 고객의 취소 수수료를 대신 입금하고도 '그러니까 댁이 고작 그런 데서 일하는 거'라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혜영은 아픈 기억이 떠오르면 슬퍼지는 대신 속이 더부룩해진다. 휴대전화 매장에서 일하는 문창과 동기 주원을 만나서는 오랜만에 '현재에 대한 부끄러움을 검열하다가 결국 문학에서 멀어졌다는 걸 의식하게 되는, 자격지심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혜원은 선배의 시 낭독회장에 가서 시집의 여백에 주원에게 하려던 말을 쓰다가 펜을 내려놓는다.

'우리가 어떤 과정 속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 맞느냐고, 혜영은 그렇게 묻고 싶었다. 주원이 곁에 있었다면 무슨 과정을 말하는 거냐고 되물었을 테고, 혜영은 바로 대답하지 못한 채 허공 속에서 열망의 형태가 천천히 윤곽을 드러내길 기다렸을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내는 과정.  …어떤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그 시간이 문장으로 남을 수만 있다면 사는 건 시시하지만은 않겠지, 그렇지?'

 

현재의 삶이 아무리 곤고해도, 그 과정이 문장으로 바뀔 수 있다면, 쓸 수 있다면, 쓰는 자들은 수도하듯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쓰는 행위는 아픈 기억이나 당면한 고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승화시켜낼 수 있기 때문일 터인데, 이러한 행위는 최면이나 마취와 어떻게 다른가. 혜영도 안다. '슬픔은 구체적이라고, 자신의 습작 소설에 등장했던 환멸이나 절망 같은 추상명사는 그 구체적인 슬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동시에 혜영은 안다, 그 추상명사는 구체적인 슬픔을 극복할 쓰는 자의 운명이자 도구임을. 


한갓 팬데믹 시대의 죽음이 아닌, 죽음의 원천을 파고든 오수연은 '정사를 내팽개치고 오로지 불로장생에만 매달린 미친 여왕'으로 알려진 '장광제'를 내세워 "우주의 원기가 분화되어 잠시 형체로 뭉친 것이 만물이니, 변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라고 '솥'에서 일갈한다. 이승은의 '피서본능'은 재난영화처럼 몰입돼 단숨에 읽히는 단편이다. 코로나로 인해 희망퇴직을 권고당한 경호와 아내 지희는 어린 딸과 함께 해발 사백 미터 산중 별장에 머물다가 돌아가는 길에 이들이 탄 은색 승용차가 산중 빗길 낙석에 부딪쳐 멈추고 만다. 폭우 속에서 모르는 이들을 태워준 검은색 SUV 차량에는 요양병원에서 모시고 나온 치매 걸린 여자와 운전하는 아들이 타고 있다. 이들과 폭우 속에서 벌이는 시종 긴장감 넘치는 해프닝은 코로나 시절의 축도로도 읽힌다. 

▲8인 소설집에 참여한 30대 작가 임솔아(왼쪽), 박서련. [도서출판 강 제공]


박서련의 'A Queen Sized Hole'은 발칙하고 발랄하다. 승희가 열세 살, 리라가 여덟 살이던 때 아버지들이 같은 곳에서 일하며 친해지면서 가족끼리도 가까이 지냈다. 당장 친구에게 돈을 빌리지 않으면 신용등급이 떨어질 처지로 지내는 승희에게 뜬금없이 리라가 찾아온다. 그 시절 리라의 엄마는 승희에게 '혈액형도 자기랑 같고 띠동갑이라 잘 맞는다'고 했다. '그 미친년 우리 아빠랑 떡 치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했지. 우리 가족을 박살 낼 짓을 하면서 어떻게 나한테 잘 맞는다는 말을.' 리라에게 안부를 묻자 불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죽었다고, 부부싸움 끝에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렸다고 무심히 전한다. 

 

박서련은 "영어 관용어 표현 중에 'God-sized hole'이라는, 신으로 밖에 채울 수 없는 우주적 크기의 공허가 있다"면서 "이 소설을 쓸 동안에는 나의 구멍은 어느 정도의 사이즈일까? 그걸 잴 수 있을까? 재는 데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공허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계속 품고 있었다고, 각 단편마다 뒤에 붙인 '작가노트'에 밝혔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바뀌어가는 현실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천착한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를 쓴, 같은 30대 작가 임솔아는 "가끔은 친구들과 자꾸만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또 가끔은 아무리 멀어지더라도 함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이 소설을 쓰는 동안은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 같았다"고 썼다. 권여선의 '작가 노트'는 코로나 시절을 넘어선다. 

"코로나 이후에 조용하고 변화 없는 삶을 살다 보니 나는 점점 현실이 아닌 기억 속에서 더 새로운 경험을 하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어쩌면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시끌벅적한 소란 속에 있다 잠깐 몸을 돌렸는데 강물이 흐르고 있고 강 저편과 이편을 잇는 것은 끝도 없이 놓인 기억의 징검돌들뿐입니다. …그런 건 내게 하나도 놀랍지 않습니다만, 다만 그 징검돌을 하나씩 밟을 때마다 과거의 소란과 현재의 적요가 순식간에 달라붙어, 동전의 앞뒷면처럼 내 안에 공존하게 되는 동시성이 종종 나를 혼란에 빠트립니다. 그 찰나마다 다른 삶들이, 이제는 살아낼 수 없는 삶들이 자꾸 태어나니까요."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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