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당한 실미도 공작원 4명 암매장지 '오류동' 유력"

탐사보도팀

tamsa@kpinews.kr | 2021-06-25 10:47:43

[연재] 실미도 사건 50주기- ④ 안김정애 전 국방부 과거사위 조사2과장
"'오류동 암매장' 뒷받침하는 진술 있었다"
"진실화해위, 법적 강제력 동원해 조사해야"

최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조사활동을 개시하면서 무려 50년 동안 진실을 묵살당한 '실미도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실미도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뤄지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2005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과거사위)가 발족하면서 실미도 사건을 2호 조사대상 사건으로 선정해 수개월간 조사를 벌인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혹이 많다. 1971년 8월 23일 벌어진 실미도 사건 이후인 1972년 3월 10일 사형당한 4명의 공작원이 어느 곳에 묻혀 있는지도 오리무중이다. 2기 진실화해위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 안김정애 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2과장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UPI뉴스 본사 회의실에서 실미도 사건에 대한 2005년 당시 조사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지난 23일 오후, 안김정애 전 국방부 과거사위 조사2과장을 서울 여의도 UPI뉴스 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2005년 9월부터 2006년 6월까지 공군 실미도전우회, 실미도 공작원 유족, 실미도 부대 간부와 민간인 목격자, 주민 등을 만나며 조사활동을 했던 인물이다. 오는 8월 당시의 조사활동과 기록을 담은 저서 <실미도의 아이히만들(가제)>을 출간할 예정이다.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은 세계 2차 대전 때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한 독일 전범이다.

- 2기 진실화해위에서 실미도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2005년 국방부 과거사위가 실미도 사건을 조사했는데 당시 조사과장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참여하게 된 것인가.

"대학에서 한국 현대사를 전공하면서 의혹이 많았던 과거사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2000년 초반까지는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그러다 2005년에 국방부 과거사위가 꾸려지면서 민간인 출신 조사관을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지원했다. 문서로만 접했던 과거사를 현장에서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방부 과거사위의 조사과장이 2명이었는데 모두 민간인 출신이었다. 당시 조사2과장을 맡아 실미도 사건을 포함해 총 4개 사건 조사를 진행했다."

 

- 과거사위에서 조사할 때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다.

"그렇다. 조사2과에서 1호 사건으로 실미도 사건을 채택했는데 내가 합류했을 때엔 이미 국방부에서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서 실미도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TF와 과거사위의 활동이 겹치는 부분이 꽤 있었다. 어떤 면에선 과거사위 조사에 대한 국방부의 조직적 방해가 있었다고 느낄 때도 많았다."

 

- 어떤 지점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나.

"실미도 공작원 유해 발굴 작업에 나설 때, 공문을 보내서 작업일시까지 확정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중령급들이 '협조 못 하겠다'면서 보이콧 선언을 했다. 그럼 다시 과거사위 부위원장인 국방부 차관을 통해 집행명령을 내려서 겨우겨우 작업을 진행시키는 등 조사활동에 어려움이 컸다.

사실 과거사위가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걸림돌이 많았다. 예를 들면 국방부 과거사위 조사1과에선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진압과정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그런데 국방부 과거사위의 부위원장 자리에 유효일 국방부 차관이 왔다. 그는 5·18 당시 광주 진압 작전을 맡은 대대장이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선 제대로 조사가 이뤄질 수 없다고 청와대에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이에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해결에 나섰고 결국 부위원장 자리에 (유효일 차관 후임으로 임명된) 황규식 차관이 오게 됐다. 과거사위 활동에 대해서 국방부가 어떤 입장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 그래서인지 국방부 과거사위 조사로도 풀지 못한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우선 실미도 공작원 중 사형집행을 당한 4명의 시신은 아직까지도 찾지 못했다. 당시 유해 발굴 작업을 여러 차례 진행하지 않았나.

 

"2005년 11월엔 경기도 고양시 벽제지역에서, 2006년 3월엔 서울 오류동 지역의 옛 공군부대 일대에서 유해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벽제묘지는 무연고묘로 쓰이던 곳이었는데 이곳에서 실미도 사건 당시 사망한 공작원들 유해를 발견했다. 하지만 당시 발굴한 유해 20구 중에서 단 8구만 공작원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형당한 4구를 포함해 나머지 16구는 아직 찾지 못했다.

 

게다가 벽제묘지는 1998년 큰 수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실미도 공작원들이 이곳에 다함께 묻혔다고 하더라도 수해로 인해 유실됐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유전자 검사 결과 벽제지역에서 발굴된 유해 중엔 사형당한 공작원 4명과 일치하는 게 없었다. 이들은 벽제지역에 매장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안김 전 과장은 사형당한 실미도 공작원 4명이 암매장된 곳으로 공군 2325부대 인근지역(서울 오류동 일대)을 꼽고 있다. 사형집행과 암매장에 관여한 이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진술을 근거로 추론한 장소다.

 

▲ 안김정애 전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2과장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구로구 오류동 개웅산에서 당시 실미도 공작원 암매장 추정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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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시신 암매장지로 서울 구로구 오류동을 꼽는 이유가 있나.

"비밀 유지와 사건을 은닉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사형을 집행했던 장소 즉 공군 2325부대 인근 지역인 오류동이다. 오류동에서 사형을 집행한 뒤에 시신을 벽제묘지까지 가져가려면 시간이 걸리지 않나. 또 당시 사형집행 관련자 중 '(시신을) 오류동에 암매장했을 것'이라는 진술을 들은 자가 있었다."

- 암매장지로 오류동을 지목한 인물은 누구인가.

"국방부 실미도사건 진상조사 TF가 작성한 비공개 문서에 사형현장 책임자였던 김OO 당시 고등검찰관이 사형집행 관계자로부터 공작원 4명을 암매장한 장소로 서울 오류동을 보고받은 대목이 나온다. 이 문서에 따르면 김 고등검찰관은 당시 사형 집행지휘자에게 '사체를 어떻게 처리했느냐'고 물었고 집행지휘자 김모 씨는 '오류동 안에서 처리하겠다'라고 답을 했다. 하지만 김 고등검찰관이나 집행지휘자 모두 국방부 과거사위의 조사엔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진술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다."

 

- 2기 진실화해위가 실미도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했다. 기대하는 점은 무엇인가.

"4명 사형수를 암매장한 곳을 찾아내는 게 가장 절대적인 미션이라고 생각한다. 실미도 사건에 대해 책임지려는 자가 전혀 없기 때문에 여러 각도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사형집행에 연루된 이들은 보안각서를 쓴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진술하기를 꺼리고 과거사위의 조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오류동 유해발굴 작업의 경우 관계자의 구체적 진술이 없어서 결과적으로 발굴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다.

법적 강제력이 동원되지 않으면 이번 조사도 힘들다고 본다. 진실화해위는 법적기구이기 때문에 과거 국방부 과거사위 조사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KPI뉴스 / 탐사보도팀 = 조현주·김지영·남경식 기자 tamsa@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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