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흔든 13개 춤사위에 천재 무용가 최승희가 새긴 뜻은
UPI뉴스
| 2021-05-17 14:36:58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를 시대별·성별·연령별 정교하게 묘사
'천하대장군'과 '신노심불로' 등 조선 사회 비판 작품도 다수
필자는 2017년 5월 최승희의 유럽 데뷔공연 팸플릿을 발굴한 바 있었다. 파리 오페라하우스 도서관에서였고, 공연이 있은 지 거의 80년 만이었다. 당시 2700부 이상 인쇄되었을 이 팸플릿은 지금까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발견된 바 없으므로, 파리 오페라하우스 소장본이 유일본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팸플릿에는 유럽을 최초로 방문한 한국 무용가 최승희가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었고, 1939년 1월31일 파리 중심가의 살플레옐 극장에서 발표됐던 그의 창작무용 13개가 간략한 작품 설명과 함께 공연 순서대로 수록되어 있었다.
필자는 발굴 경위와 내용을 서술한 취재기를 한 인터넷 매체에 연재한 바 있다. 그러나 그때는 최승희 유럽 데뷔 공연의 레퍼토리가 확인되었다는 점에만 강조점을 두었고, 각각의 작품을 해설하는 데에 그쳤다.
최근 한 지인이 '그런데 작품이 왜 13개였을까' 하고 물었는데,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까지 개별 작품 연구에만 열중했을 뿐, 살플레옐 공연 전체를 하나의 연구대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나는 공연기획자의 시각으로 살플레옐 공연을 다시 살폈는데, 뜻밖에도 최승희와 그의 남편이자 문학평론가였던 안막이 미리 계획하고 조정했음에 틀림없는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고 추론되었다. 살플레옐 공연은 무용예술을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공시적, 통시적으로 소개하는 예술적 종합선물세트였던 것이다.
첫째, 13개 작품이 한국사의 거의 모든 시기를 망라하고 있었다. <낙랑의 벽화>와 <검무>의 시대적 배경은 삼국시대이고, <옥적곡>은 통일신라, <보살춤>과 <승무>는 고려시대, <초립동>과 <기생춤>과 <한량무>와 <봉산탈춤>은 풍요와 낙관의 조선 전기, <옥중춘향>과 <천하대장군>과 <신노심불로>와 <무당춤>은 부패하고 무력해진 조선 후기였다. 즉, 최승희와 안막은 살플레옐 공연을 통해 한국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유럽에 소개한 것이다.
시대별 작품 구성은 살플레옐 공연 이전, 즉, 미국 로스엔젤레스 이젤 극장 공연에서 더 두드러졌다. <염양춤>은 고조선 시대가 배경이고, <신라궁녀의 춤>과 <고구려의 전무>는 삼국시대의 춤이어서, 조선시대 편중 현상이 덜어졌고, 고대 배경의 작품이 더 보강되었다.
둘째, 최승희의 살플레옐 레퍼토리에 묘사된 주인공들은 각계각층의 한국인을 고루 대표했다. <옥중춘향>의 주인공은 틴에이저 소녀였고, <기생춤>과 <승무>와 <보살춤>의 주인공은 20대나 30대의 젊은 여성이다. <낙랑의 벽화>의 여인과 <무당춤>의 무당, 그리고 <옥적곡>의 천상선녀는 원숙한 중년 여성을 연상시킨다.
한편, <초립동>의 주인공은 십대이거나 혹은 열 살도 되지 않았을 소년이고, <한량무>와 <검무>의 주인공은 20대의 젊은 청년, <봉산탈춤>의 유랑예인은 30대나 40대의 남성, <천하대장군>은 중년 이후의 남성, <신노심불로>의 주인공은 노인이다.
셋째, 13개 작품의 주인공은 계층별로도 다양하다. 오프닝 <옥적곡>의 주인공은 선녀, 피날레 <무당춤>의 주인공은 무당이었다. 그 사이에 <보살춤>과 <승무>에서는 불자와 승려, <낙랑의 벽화>와 <검무>, <초립동>과 <한량무>, <천하대장군>, <신노심불로>에서는 귀족이나 양반, <옥중춘향>과 <기생춤>에서는 기생, <봉산탈춤>에서는 광대가 주인공이다. 신분과 계층과 직종이 두루 포괄되어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살플레옐 레퍼토리의 주인공들은 '여'와 '남'의 비율이 7대6, '30대 이하'와 '40대 이상'의 비율이 7대6, '귀족/양반'과 '평민/천민'의 비율이 6대7이다. 성별, 연령별, 계층별 배분이 정교하게 조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우연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서, 최승희와 안막이 이러한 균형을 미리 마음에 두고 작품을 창작하고 선별했다고 결론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성별, 연령별, 계층별 인물들의 역할을 탁월하게 소화한 최승희의 예술적 역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심한 선곡은 작품의 정조(情調)별 분류에서도 나타난다. 활발하고 우스꽝스런 작품(초립동, 한량무, 기생무, 봉산탈춤, 무당춤, 천하대장군, 신노심불로)이 대종을 차지하면서도, 힘차고 씩씩한 작품(검무)과 차분하고 우아한 작품(낙랑의 벽화, 승무, 옥적곡, 보살춤), 그리고 슬프고 비탄스런 작품(옥중춘향)을 적절하게 배분했다. 코믹한 작품이 7개, 심각한 작품이 6개였으므로 관객들의 작품 몰입과 카타르시스를 번갈아 적절하게 유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살플레옐 레퍼토리는 다양한 주인공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사회를 적절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천하대장군>은 오만하고 독선적이지만 무력하고 무능한 조선 후기 지배층에 대한 비판이었고, <승무>와 <무당춤>은 타락하거나 미신으로 변질된 종교를 고발하고 있다. <초립동>은 조혼제도의 비판이고, <옥중춘향>은 양반 중심의 신분제도의 비판이다.
이러한 사회 비판은 대개 코믹한 모습으로 이뤄졌기에 오히려 효과가 좋았을 것이다. 천대받던 <봉산탈춤>의 광대가 가장 명랑한 모습을 보이고, 거만한 <천하대장군>의 무능함이 우스꽝스럽게 폭로되는 것은 역설과 아이러니를 적절하게 사용한 예술적 장치였다.
왜 13개 작품이었을까? 비교적 꼼꼼한 리서치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대한 단정적인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역시 우연이었을 리 없다. 어쩌면 조선의 영토 '13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전통적으로 한국의 영토는 '삼천리'나 '조선8도'라는 수사로 표현되었었다. 1895년의 2차 갑오개혁으로 23부제로 바뀌었으나 번잡하고 폐단이 노출되었으므로, 1896년 8월부터 조선8도제를 부활시키되 함경, 평안, 충청, 전라, 경상의 5개도를 남,북도로 나누어 13도 체제를 확립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까지 '조선13도'는 한국의 강토를 상징하는 말이었다.
살플레옐 공연의 관객들이 최승희와 안막의 공연 기획의도를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의 유럽인들은 조선의 역사나 문화는커녕, 조선이라는 나라의 존재조차 잘 몰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파리의 일부 평론가들은 최승희의 작품을 일본 작품으로 오해했을 정도였다.
안막과 최승희는 말이나 글로 자신들의 기획의도를 설명할 수도 없었다. 일제 공관원들의 감시가 치밀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배일 행위자로 낙인찍히면 일본 본국에 보고될 것이 뻔했고, 공연이 취소되는 것은 물론 생활과 생존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승희와 안막은 포기하지 않았고, 작품으로 사회를 반영하는 예술가의 소임을 다했다. 그나마 말과 글이 필요 없는 무용예술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최승희는 세계 순회공연을 떠나기 전 여러 차례의 인터뷰에서 '조선옷을 입고 조선음악을 가지고 조선무용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열심히 조선무용을 알리고 싶었을까? 살플레옐의 레퍼토리에 답이 있었다. 조선을 알리려는 것이었다.
안막과 최승희는 13개의 조선무용 작품을 통해 조선의 역사와 사회와 문화를 유럽인들에게 소개했고, 조선13도에 사는 한국인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
조정희 PD(최승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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