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로 본 남북한의 애민과 서민 코스프레

김당

dangk@kpinews.kr | 2021-05-15 14:55:52

[평양 톺아보기] 19. 북한의 첫 모내기와 대를 이은 명예농장원
원화협동조합의 김일성∙김정일 저금통과 김정은 '사랑의 뜨락또르'
北 저수지 위성영상 작년과 비교하면 올해 농사는 전년보다 나을듯

영광의 땅에서 첫 모내기 시작. 북한 노동신문 기사의 제목이다. '영광의 땅'을 인용부호로 묶지도 않는다. 그곳이 어딘지 북한 주민들은 다 알기 때문이다.

 

▲ 김일성과 김정일이 '명예농장원'으로 등록된 평안남도 평원군 원화협동농장에서 5월 10일 벼모내기가 시작되었다고 보도한 노동신문과 조선의오늘 기사 [노동신문, 조선의오늘 캡처]


노동신문을 필두로 북한 관영∙선전매체들이 올해도 일제히 평안남도 평원군 원화협동조합의 첫 모내기 소식을 전했다.

 

남한에서는 산업의 고도화와 농업 인구의 감소로 첫 모내기 소식이 지면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여전히 모내기 소식을 주요 소식으로 다룬다.

 

첫 모내기는 북한 관영매체의 '1·2·3 보도공식'이 작동하는 주요 기제이다. 이는 어떤 사건의 스토리텔링을 할 때마다 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순으로 보도하는 공식이다.

 

북한 땅은 크게 혁명사적관이 있는 곳과 없는 곳으로 구별된다. 김일성∙김정일이 현지지도 하거나 한번이라도 발길이 닿은 곳에는 당 선전선동부가 혁명사적관을 설립해 이를 기리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모내기를 한 평원군 원화리에도 '원화혁명사적관'이 있다. 첫 모내기는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애민(愛民) 일화를 소개하는 좋은 장치인 것이다.

 

북한 당국이 첫 모내기를 강조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북한은 '쌀은 곧 사회주의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노동력을 총동원해 독려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식량 사정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올해도 특파기자를 현장에 보내 11일자에 전날의 첫 모내기 소식을 전했다. 지난해와 다른 점은 첫 모내기 소식이 노동신문 1면에서 4면으로 밀린 점이다.

 

노동신문은 올해도 12일자 1면에 '모내기에 모든 역량과 수단을 총동원하여 올해 알곡고지 점령의 돌파구를 열어제끼자'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이렇게 독려했다.

 

"모두 다 모내기에 역량과 수단을 총동원하여 올해 알곡고지 점령의 돌파구를 열어제낌으로써 새로운 5개년계획의 첫해에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주타격 방향인 농업전선에서 풍요한 가을을 안아오는 데 적극 이바지하자."

 

▲ 김일성 수상(맨오른쪽)이 주민들과 함께 모내기를 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캡처]


첫 모내기 보도에는 으레 '영광의 땅'이니 '역사의 땅'이니 하는 수식어가 앞에 붙는다. '영광의 땅'인 까닭은 1952년 5월 10일 당시 전시(戰時)임에도 김일성 수상이 이곳을 찾아 농민들과 함께 포전(논밭)에 볍씨를 파종했기 때문이다.

 

대외 선전매체인 '조선의오늘'도 특파기자를 현장에 보내 첫 모내기의 의미를 연달아 보도했다. 이 르포 기사의 제목도 '역사의 땅 원화리를 찾아서'이다.

 

이 매체는 특히 "역사의 땅 원화리는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를 명예농장원으로 높이 모신 영광의 고장"이라며 "총비서(김정은) 동지를 명예농장원으로 높이 모시고 싶은 것은 원화리 농민들의 한결같은 소원"이라고 전해 눈길을 끈다.

 

북한 최고지도자들이 3대에 걸쳐 '명예농장원'이 되어주길 공개 청원한 셈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김일성 수상은 6∙25 한국전쟁이 진행 중인 1952년 5월 10일 원화리에서 모내기를 했다. 이때 "폭탄 구덩이도 메우고 곡식을 심어야 하며 빈 땅 같은 것도 잘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농민에게 땅을 한치도 묵히지 말고 경작함으로써 더 많은 알곡을 생산해야 한다는 일깨움을 줬다는 것.

 

북한은 전쟁으로 파괴된 국토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협동농장제를 채택했다. 김일성은 자신이 전시에 모내기를 했던 평원군 원화리에도 협동농장조합이 만들어지자 자신을 조합원 명단에 써넣도록 했다. 그 이후로도 수십 차례 현지지도를 한 곳으로 전해진다.

 

김일성은 1993년 가을 자신이 명예농장원이 되어 지금까지 조합원으로 분배받은 저금의 몫이 총 10만5318원 65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일성은 이 돈으로 원화리 인민들에게 자동차와 뜨락또르(트랙터) 10대를 사서 보내주었다고 한다.

 

▲ 김정일이 1971년 5월 청산리를 방문해 주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화보집 '영광의 50년' 캡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대를 이어 10여 차례 원화협동농장을 찾아 현지지도
했다. 하지만 김일성과 달리 김정일이 직접 모내기를 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별로 찾을 수 없다. 대신 1971년 5월 김정일이 청산리를 방문해 농업 근로자들과 찍은 사진과 함께 모내기에 나선 청산협동조합 포전 앞에 세운 기념비가 전해진다.

 

김정일은 1983년 3월 "수령님을 명예농장원으로 모신 원화협동농장은 다른 협동농장들보다 농사를 더 잘 지어야 한다"면서 자신도 명예농장원이 되겠다고 자청했다. 이를 계기로 원화협동농장에서는 해마다 농장원 평균 분배 몫을 기준으로 해 김일성∙김정일 명의로 현금을 저금했다. 그 저금통장과 결산 내역이 원화혁명사적관에 전시돼 있다.

 

▲ 원화협동농장에서는 해마다 농장원 평균 분배 몫을 기준으로 해 김일성∙김정일 명의로 현금을 저금했는데 그 결산 내역이 원화혁명사적관에 전시돼 있다. [조선의오늘 캡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11월 원화협동조합에서 결산분배와 관련 명예농장원인 김일성∙김정일에게 분배 몫을 올린다는 내용의 문건을 접했다. 그는 알곡과 현금 중에서 알곡은 농장원에게 그대로 나누어 주고 현금으로는 화물자동차와 뜨락또르, 그리고 비료를 마련해 보내주자고 했다. 원화리 인민들은 이를 '총비서 동지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뜨락또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간의 북한 언론 보도를 보면 김정은은 아직 원화협동농장을 현지지도 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곳 주민들이 김정은 총비서에게 명예농장원이 되기를 청하는 까닭도 아직 현지지도를 오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서는 통상 5월 초부터 중순까지 옥수수 파종을 끝내고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모내기를 하기 때문에 옥수수 파종과 모내기가 겹치는 5월이면 '밥 먹는 사람은 모두 농촌을 지원하자'라는 구호까지 등장할 만큼 총력전을 펼친다.

 

가뭄 등 기상여건에 따라서는 모내기가 6월 말~7월 초순까지 지연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이모작 모내기 전투'와 함께 '김매기 전투'에도 돌입해야 한다.

 

2020년 북한의 식량 생산은 7~8월 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저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 농업용수 저수량이 지난해보다 늘어나서 식량 상황이 다소나마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는 점이다.

 

▲ PlanetScope 위성이 지난해 4월과 올해 4월에 북한 황남 안악군 구월산저수지(맨위), 평북 정주군 봉명저수지(위)를 촬영한 해상도 3m의 위성영상. 올해 모내기를 앞두고 각각의 저수지 표면적이 지난 해보다 119㏊, 18㏊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데일리NK 캡처]


지난 4월 25일 촬영한 고해상 스카이샛(SkySat) 컬러영상에는 평양 일원의 논에 모판을 조성하고 일부 지역에 물을 대는 등 농사절기에 따라 봄철 모내기를 준비하는 동향과 저수 상황이 지난해보다 양호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위성영상에서는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주요 곡창지대인 황남 안악군, 황북 상원군과 평북 정주군 지역 저수지의 수위가 다소 높아지고 저수지 표면의 면적도 늘어난 것으로 관측되었다.

 

정성학 전 국립산림과학원 전문연구관이 북한 전문 '데일리NK'에 기고한 위성영상 분석에 따르면, 올해 4월 25일 안악군 구월산저수지 일대의 저수량 표면적은 지난해보다 119㏊ 늘었고, 정주군 봉명저수지는 저수지 표면적이 지난해보다 18㏊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올해 농업용수 공급상황이 지난해보다는 양호해 식량 상황이 다소나마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9월 태풍과 수해로 침수된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일대의 피해복구건설 현장을 찾아 근심 어린 표정으로 벼이삭을 살피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캡처]


김정은은 지난해 8~9월에 태풍과 수해가 겹친 가운데 침수된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일대의 피해복구건설 현장을 두 번이나 찾아 근심 어린 표정으로 농경지과 벼 이삭을 살피는 애민 이미지를 연출했다.

 

보여주기식 이미지 정치는 북한 지도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남한에서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와 선거에 의해 집권한 민주인사를 가리지 않고 모내기를 '농심'을 잡는 이미지 정치에 활용했다.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은 '농부의 아들'임을 강조하며 역대 어느 대통령들보다도 모내기 행사를 거르지 않고 참여했다. 실제로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모내기 하는 대통령 사진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검색되는 대통령이 박정희와 전두환이다.

 

특히 박정희의 모내기와 새참으로 먹는 막걸리는 서민 이미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전두환은 이런 박정희 이미지를 차용하려고 한 의도인지 몰라도, 밀짚모자를 쓰고 직접 이앙기를 운전하면서 7년 동안 부지런히 모내기를 했다. 어떤 때는 부인 이순자씨와 부부동반으로 모내기를 하기도 했다.

 

'보통 사람'을 표방한 노태우 대통령도 농촌일손돕기 차원에서 해마다 모내기 행사에 참여했다. 이에 비해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에는 당직자들과 함께 농촌일손돕기 모내기를 했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불편한 다리 때문에 직접 모내기를 하진 않았다.

 

쇼맨십이 강한 김영삼 대통령도 이앙기를 몰며 모내기를 했다. 하지만 임시로 설치한 나무계단을 밟고 논에 들어가다가 중심을 잃어 경호원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윤보선 대통령은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의 안내를 받으며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으로 논에 들어가 귀족 모내기를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맨위부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등 역대 대통령들은 다양한 모내기 행사와 논에 물 대기 행사를 통해 농심 잡기와 서민 코스프레를 연출했다. [국가기록원,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후보 시절부터 박정희를 흉내 낸 이명박 대통령은 모내기 행사에 길고 화려한 장화를 신고 와 국민의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장화에 흙이 묻지 않고 깨끗해 누리꾼들로부터 '모내기 하는 사진만 찍은 거냐'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유일한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도 직접 모내기를 한 적이 없다. 대신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6월 가뭄이 심해지자 강화도의 논에 소방차를 동원해 소방호스로 물을 주는 행사를 연출했다. 그러자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논에 물대기는 있지만 논에 소방호스로 물 쏘기는 처음 듣는다"고 꼬집어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에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로 낙향해 친환경 오리농법으로 벼농사를 지었다. 노 대통령은 2008년 10월 친환경 오리쌀을 수확할 때 직접 콤바인을 운전하는 모습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5월 경북 경주시 옥산마을을 방문해 직접 이앙기를 몰며 모내기를 했다.

 

오뉴월에는 부지깽이도 춤춘다는 말이 있을 만큼 남북한 모두 농촌은 일손이 부족하지만 해결 방법은 다른 것 같다.

 

남한은 대통령이 참석하는 '권농일' 행사와 '농촌일손돕기' 캠페인을 통해 모내기를 지원해 오다가 요즘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손을 빌리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오뉴월이면 전인민이 나서 '모내기 전투'를 벌일 만큼 여전히 식량 사정이 절박하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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