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기본소득은 소비라는 노동의 대가, 우리는 '소비노동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1-04-14 19:14:14
근미래를 배경으로 '기본소득'과 '통일한국' 성찰
지금 이곳 페미니즘과 젠더 문제도 입체적 관찰
"'나의 소설'은 되묻고 또 되묻는 끈질긴 질문"
기본소득제가 시행된 지도 30여 년이 흘렀다. 모든 국민은 만 18세가 되는 순간부터 국가로부터 기본소득을 지급받게 되었다. 국가가 최소한의 생계비를 지급한다. '최소한'은 생명의 '최소한'이 아니라, '생계 및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문화와 여가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이다. 소설가 김강이 단편모음집 '소비노동조합'(아시아)에서 상정한 근미래 상황이다.
기본소득제가 기본이 된 사회에서 '나'는 아버지의 사채업을 물려받아 살아간다. 나는 아버지가 가르쳐준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한다. 아버지는 돈을 빌려주는 원칙을 분명하게 세웠다. 첫째, 직업이 없는 사람에게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둘째, 돈을 빌리는 사람의 임금에는 손을 대지 않고 셋째, 돈의 쓰임새를 확인하고 빌려준다. 넷째, 3년 이상 빌려주지 않는다.
아무리 임금이 작은 직업이라도, 하찮아 보이는 일일지라도 직업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아버지는 '지금 세상에서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도덕성과 성실성에 대한 최소한의 지표'라고 말했다. 어차피 굶어 죽을 일은 없는 세상에서 '무엇이 되었건 일을 하겠다는 것은 사람 구실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거니와 '그런 사람이 돈도 잘 갚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임금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것은 독촉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생략하고 대신 계약기간만큼 기본소득 통장과 체크카드를 확보한다는 맥락이다. 정부가 망하거나 돈을 빌린 사람이 죽지 않는 한 싫은 소리 하지 않고 돈을 받을 수 있다.
23세 청년 '형진'이 나에게 돈을 빌려갔는데 '축복받은 시대'에 태어난 녀석의 기본소득 통장에 2개월 연속 기본소득이 입금되지 않았다. 녀석의 전화기가 꺼져 있었는데 알고 보니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 구치소나 감옥에 들어가는 순간 기본소득 지급은 중지된다. 국가가 먹여주고 재워주는 공간에 있는 동안 그 사람 통장에 나라에서 차곡차곡 돈을 쌓아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녀석은 나에게서 빌린 돈으로 '전국소비노동조합'이란 단체를 꾸려서 회장 직을 맡고, 기본소득부 장관 집무실을 점거하면서 기본소득 인상 투쟁을 벌이다 수감된 것이다.
녀석의 주장은 '우리 모두는 소비라는 노동을 기본 소득이라는 급여를 받으면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본 소득으로 받은 돈이 다시 돌고 돌아가는 곳이 결국은 가진 자들이거나 재벌들이고, 그들이 세금이라는 명분으로 내어놓은 돈으로 다시 기본소득을 받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 돈을 쓰는 것이 곧 노동이라고, 돈을 쓰는 노동의 대가로 받는 것이 기본소득이니 기본소득은 월급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구치소에 가서 녀석을 면회하면서 나는 반박한다.
'나는 정리가 안 되는데? 세금을 기업이나 부자만 내는 것은 아니잖아. 자영업자나 회사원들, 심지어 내가 담배를 사면서도 세금을 내고 있는데? 그리고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모두 가장 중요한 혜택은 소비자가 가져가잖아. 먹고 싶은 것 먹고, 입고 싶은 것 입고, 자고 싶은 데서 자고 모두 소비자가 누리는 거잖아.' 녀석의 반박이 이어진다. '누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를 한 거지요. 세금까지 내가면서 말이에요. 내 왼쪽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오른쪽에 쥐어주는 거예요. …옛날로 치면 노예, 지금 개념으로는 노동자. 소비라는 노동을 하고 기본소득이라는 임금을 받는.' 그는 '나'는 기본소득 소비 노동자이지만 동시에 '피라미드 옆 계단 틈새에 빨대 꽂아서 사는' 존재라고 비아냥거린다.
"인간의 노동이 직접 들어가는 생산 중심 사회에서는 자원을 배분하는 일이 중요했지만, 노동이 기계화되고 생산량이 많아지면서 소비 중심 사회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이 체제가 유지되려면 소비가 중요한데, 이런 맥락에서 기본소득을 좋은 의도로 주장하는 쪽과 자본의 체제가 돌아가는 걸 유지하려는 쪽이 만나는 시기가 되면 기본소득이 받아들여지리라고 봅니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결과가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고 사람의 삶이라는 게 이론적으로만 전개되는 것도 아니어서 여러 편법도 생길 겁니다. 기본소득이 만능 해결책은 아닌 거지요."
경북 포항에서 주중에는 내과 의사로 생계전선에서 복무하고, 주말에는 소설 쓰기에 매진하고 있는 김강 씨. 전화로 만난 그는 "이즈음 기본소득제 관련 논의가 많은데 반대나 찬성 어느 한 쪽으로 이 소설이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다만 소설가가 이런 상상을 해봤다는 정도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2017년 심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지난해 펴낸 첫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에서도 주로 근미래 상황을 배경으로 설정해 이야기를 펼쳤다. 그가 근미래를 자주 펼치는 이유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미래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현실에 대한 것이고 근미래는 지금 현실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배경이라는 것이다.
'와룡빌딩'은 통일된 한반도가 배경이다. 광복 100주년이 되던 해, 남북 양측이 통일을 선언했다. 벼락같은 통일이었다. 이면 합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북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핵무기의 절반을 남측에 제공하고 남한 수준의 경제 발전이 북한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발 및 투자를 하며, 남북 양측은 남북 연합국으로 외교 및 군사적 문제에서는 각각 주권 국가로 남아있지만 그 외의 내용에서는 단일한 공동체를 이루기로 했다. 이런 환경에서 k는 남쪽에서 이면도로변 '와룡빌딩'을 매입해 어설픈 임대업자로 살고 있다. 돈을 벌려는 이들이 북쪽으로 몰려가는 바람에 임대 수입에 차질이 생겨 골치 아프다.
'부자들은 평양과 개성의 땅을 통해 다시 한 번 부를 키우고 싶어 했다. 그들에게는 서울과 수도권의 집과 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짜릿한 경험이 있었다. 부자가 아닌 사람들도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며. 하지만 승리는 부자의 몫이었다. 가진 것 모두를 투자한,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여유가 없었다. 값이 조금 오르자 기다리지 못하고 팔아대기 일쑤였다. 그들이 그 돈으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서울의 땅값은 더 올라 있었다. 통일 한국의 수도가 아닌가.'
k는 부자의 욕망을 품고 있어 애가 탄다. 통일한국에서도 결국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여유가 없어서 투기 전쟁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안달한다. 모두 북쪽으로 몰려가는 바람에 월세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판에 와룡빌딩에 입주한 인근 사년제 대학 교수가 전세금마저 빼달라고 한다. 남쪽에서는 학생 수가 계속 줄어드는 데 비해 북쪽에서는 학생 수에 비해 대학 수가 적어 재단 차원에서 대학을 북쪽으로 이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k는 와룡빌딩에 입주한 술집에 들러 그 공간 사장과 임대료 인하 협상을 하면서 양주잔을 부딪치며 '조옷 같은 통일'이라고 푸념한다.
"통일이라는 게 민족국가 형성이라는 차원에서 의미는 있겠지만, 국경이 열리고 왕래만 자유로워진다면 굳이 하나의 이름으로 합쳐야 될 이유가 있는지 생각할 수 있죠. 그럼에도 굳이 통일을 외치는 것은 좋은 의미로는 한반도 내에서 민족국가 형성이라는 역사 흐름 순서를 따르는 것이겠고, 또 한편으로는 자본 입장에서는 시장을 확대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북쪽도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텐데, 통일은 그 주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거라고 봅니다. 이전처럼 '통일 대박'을 내세우며 시장 확대와 자원 확보 시각으로만 통일을 본다면, 결국 남북한 보통 사람들의 감정적 환호 말고는 사실 더 큰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김강은 소설가의 상상 차원에서 사회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많은 SF소설의 상상력이 실제로 미래 테크놀러지 발달을 추동했거니와, 현실 사회에 대한 미래 예측 또한 같은 맥락에서 참고할 만하다. 통일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졌던 와룡빌딩 입주자 김 부장은 '김씨 왕조를 인정해주는 대신 싼 임금과 풍부한 자원과 새로운 소비자들을 얻은 것'이라며 '남한 기업 단독으로 북 개발에 참여할 수 없고 무조건 국제 컨소시엄 형태로만 가능하도록 명시한 조건은, 한 마디로 우리만 먹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자조한다.
근미래가 아닌 지금 이곳 페미니즘과 젠더 문제를 남성의 시각으로 그려낸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성희롱으로 고발된 교수 이야기를 다루면서 누구나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는 남성들의 위험한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거나('옛날 옛적에'),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린 남자의 소극을 다루면서는 칼날 위를 걸어가듯 움츠러든 남성의 현실('득수')도 드러낸다. 그런가하면 '사자들'에서는 연극 무대에 오른 듯한 한없이 '찌질한' 남성들의 초상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일 년 만에 다시 소설집을 묶어낼 정도로 열정적으로 소설에 매진하고 있는 김강은 "의사라는 직업 때문에 주목을 받거나 제 소설을 평가받고 싶지는 않다"면서 "저에게 건강을 맡기는 분들의 이야기는 아무리 가명이더라도 소설로 쓰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대 대립, 다문화 상황 같은 예상 되는 갈등을 소재로 근미래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이 갈등들의 근저는 본질적으로 다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다짐하는 '나의 소설'.
'그것은 되묻는 것이고 되묻는 것이며 또 되묻는 것이다.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며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이들에게 묻고 되묻고 다짐받을 것이다. 나의 소설은 이것이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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