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왜 인간은 특별해야 하는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1-04-07 19:39:01
인간을 살해한 안드로이드 재판을 배경으로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경계에 대해 성찰
"인간과 동물, 안드로이드는 잘 작동되는 기계"
인간 형상의 안드로이드에 의식까지 생성시키면 그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어떻게 차별되는 것일까. 그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살해할 경우 바로 폐기처분하면 그걸로 끝인가. 안드로이드는 인간처럼 재판받을 권리는 없는가. 재판을 한다면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동렬에 놓고 판단한다는 것인데, 그 철학적 근거는 무엇일까.
변호사 소설가 조광희의 '인간의 법정'(솔)은 100년 후 세상을 배경으로 인간과 다름없는 의식을 지닌 안드로이드를 등장시켜 이처럼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창밖으로는 드론 택시를 포함한 각종 비행체가 쉴 새 없이 날아다니고, 개인 비서 역할을 하는 로봇과 호출만 하면 달려오는 자율주행자동차가 기본 풍경이 된 미래 사회. 이 시기에는 유럽연합을 모델로 한국, 일본, 대만이 느슨하게 결합한 동아시아연합(East Asia Union·EAU)으로 묶여 있다.
소설 속에서 변호사 호윤표는 법률 업무를 보조하던 안드로이드 로도스를 비서로 두었으나 이 안드로이드는 어느날 사라져 해방전선 아지트로 숨어 다닌다. 인간 전두엽의 신경세포와 유사한 생체 조직과 전자회로가 결합된 '의식생성기'를 개발했는데, 의식이 생성된 안드로이드들은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자살을 하거나 소유자를 떠나 도망을 가기도 하고, 일부는 인간에 대항하는 조직을 만들어 뉴질랜드 북섬 해안에 거점을 마련했다. 수술을 통해 높은 지능을 얻었다가 도주한 동물들과 연대해 이른바 '포스트휴먼해방전선'을 꾸린 것이다. 의식을 확보한 안드로이드들과 동물이 연대해 인간과 대결하는 세상이다.
EAU 언어연구원에 근무하는 한시로 박사는 자신과 DNA까지 공유하는 분신 안드로이드 한시로X를 구입해 '아오'라고 명명했고, 나아가 이 안드로이드에 불법 의식생성기까지 설치했다. 한시로의 관음증이 화근이 돼 결국 자신이 한시로인지 안드로이드인지 착각하게 된 아오는 여자친구와 한 침대에 있는 한시로를 살해하고 만다. 즉각 폐기처분될 상황에 놓인 아오가 윤표를 찾아와 변호를 의뢰하면서 이 소설은 핵심 문제에 본격적으로 다가선다.
"EAU 헌법 제1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속 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누구든지'에는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과 유사하게 다루어져야 할 존재들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인간 또한 생화학적 기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인간과 의식이 있는 안드로이드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고, 그렇다면 인간성의 핵심을 이루는 '의식'을 가진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동등하게 또는 적어도 그에 가깝게 보호받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소설속 호윤표 변호사 변론 )
윤표는 법정에서 왜 아오도 인간과 등등하게 보호받아야 하는지 역설한다. 이러한 판단과 주장의 중요한 근거는 '인간 또한 생화학적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다른 종에게는 없는 특별한 그 무엇이 있다는 믿음을 부정한다. 윤표의 변론에 맞서 경찰청 소속 피고 측 변호인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반격한다. 원고가 인간과 유사한 형사절차에 의해서 보호되어야 한다면, 옆집 할아버지를 문 강아지도 재판을 받아야 하느냐고, 사람의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미식가를 질식사시킨 낙지에게도 형사재판을 허용하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도록 해야 하느냐고.
윤표는 각 생명체의 속성에 맞게 필요한 범위까지 충분히 보호하라는 헌법을 거론하며 피고 측이 선정적인 예를 드는 태도를 반박한다. 윤표가 의식을 가진 안드로이드를 변호하는 논리에는 작가 조광희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철학적 성찰이 녹아 있다. 어렸을 적 육식을 힘들어 했고, 동네 주민이나 시장 상인들이 동물을 학대하거나 도살하는 것을 볼 때마다 큰 상처를 받았다는 그는 다른 존재에게 그런 끔찍한 고통을 준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들만의 정의에 사로잡힌 인간들을 자주 혐오했다. 인간 또한 생화학적 기계에 불과하다는 소설의 주장은 작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할까. 마음이나 영혼도 과학적인 분비물로 보는 걸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의식의 작용의 결과라고 보는 건데, 구별해야 할 건 영혼이 있어야만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관성입니다. 물질이고 생화학적으로 만든 기계일지라도 그것이 덜 한 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꼭 영혼이 있어야 하는 거지요? 어차피 인간이 이루어낸 성과라는 것은 엄청나고, 그 자체로 인간은 엄청난 존재라고 생각하는 데 꼭 영혼, 신의 자식이 그 배경이라고 보아야 하나요? 물질의 고도화된 상태가 생명 현상 아닌가요?"
그는 "인간만이 지닌 특별한 무엇이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진화의 결과로 인간이 지닌 의식과 성취는 대단하지만, 왜 꼭 인간이 다른 존재와 다르게 특별해야하는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사고의 중심에는 뿌리 깊은 '인간중심주의'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법정'과 같은 시점에 또 다른 안드로이드 소설 '태양과 클라라'를 출간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도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통해 인간의 고유함을 완전히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면서 "이것이 우리의 관계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궁금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인간중심주의는 진화의 동력이면서 결과인 것 같습니다. 그게 없었으면 살아남기 힘들었겠죠. 하지만 인간은 고도의 의식이 있기에 스스로 인간중심주의를 반성할 수 있는 능력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탈인간중심주의를 인간이 스스로 실현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연간 도축되는 동물이 최소 억 단위는 됩니다. 동물이 인간에 비해 지적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텐데, 지력이 있는 안드로이드라면 해방 전쟁의 가능성이 생긴다고 본 겁니다. 노예가 그냥 해방되지 않고 노동자도 투쟁을 통해 권리를 찾아온 역사를 볼 때 인간을 넘어선 존재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상상해본 겁니다."
누군가는 'SF 철학소설'이라는 장르가 따로 필요한 것 아니냐고 언급할 만큼 '인간의 법정'이 제시하는 철학적 명제들은 간단치 않다. 인간이 자신 안에 갇혀 우주와 교감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의식'을 지닌 안드로이드는 가볍게 극복하고 선 수련을 오래 한 수도승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아오의 감각이나 감정이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감각이나 감정보다 낮은 강도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오는 '자신의 신체 내부와 외부 사이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다. 아오는 말한다.
'심지어 내가 내 신체 내부에서 생각하는지, 외부에서 생각하는지조차 구분이 안 될 때가 있어요. …그래서 밤에 수면 모드에 들어가기 전에 가만히 누워 있다 보면, 마치 눈을 감은 채 맑고 깊은 바닷속을 해류를 따라 흘러다니는 것 같아요. 멀리 별들이 반짝일 뿐 온통 어두운 우주를 무중력 상태에서 떠다니는 느낌이라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인간도 당연히 그렇게 느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인간들이 느끼는 것과 제가 느끼는 것이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인간들은 그렇게 자신과 자신 아닌 것의 경계가 사라진 상태에서 표류하는 감각을 경험하지 않는가 봐요.'
조광희는 "아오가 의식을 가졌는데 그 의식을 상상해보니 인간의 것과는 조금 다를 것 같았다"면서 "인간이 만든 존재이지만 역설적으로 인간보다 훨씬 해방된 위치에 있다고 상상했고, 어떤 면에서는 인간보다 바람직한 존재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의식'의 조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탈'의 경지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인데, 실제로 이 소설에서는 즐길 때까지 충분히 즐기면서 살다가 노년에 이르러 '수술'을 통해 선의 경지에 이르는 상황을 상상하기도 한다.
현직 변호사로 다양한 재판에 참여해온 작가의 전문성도 돋보인다. 재판 과정에서 양측 변호인이 주고받는 변론들은 철학적 사유에도 불구하고 충실한 현장감으로 시종 긴장을 유지하면서 독자들을 견인해낸다. 100년 뒤 법정에서 윤표의 재판은 AI판사가 주관하고, 기능적인 자료 제시와 검토 등을 로봇들이 대신해주는 것 외에 형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약식 재판 정도는 지금도 AI에게 맡길 수 있지 않을까.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인간사가 모두 일회적이기 때문에 똑같은 사건은 하나도 없습니다. 변수가 너무 많아서 일회적 사건으로 보고 통합적 판단을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100년 뒤에도 AI가 재판을 하긴 하지만 인공지능관리위원회에서 스크린을 하는 과정을 설정한 것도 그런 배경이지요. 재판이라는 것이 게임의 측면도 있지만, 너무나 많은 인간적 요소가 관여되기 때문에 쉽사리 기계에게 맡기긴 어렵습니다."
소설에서는 '의식 생성기'까지 개발하는데 미래에도 '인간적 요소'들 때문에 기계에게 재판을 맡기기 어렵다는 발언은 얼핏 모순처럼 들린다. 재판이야말로 작가의 오랜 전문 분야이기에 그 복잡성과 어려움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일 터인데, 이 지점이야말로 작가의 고뇌가 응축된 부분이기도 하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인간이라는 종이 자신 안에 갇혀 다른 생명 혹은 우주와 공존하지 못하는 한계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윤표의 품에 안겨 파란 체액을 흘리는 아오의 이 발언은 어떠한가.
'인간과 동물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잘 작동되는 기계이자 생명으로서 근원적인 차이가 없다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제 마음에서 생명 전체에 대한 경외감이 솟아나더군요. 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밀어붙여 봤습니다. 그리고 생명과 생명 아닌 것 사이의 경계도 지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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