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비전 2030' 2년…TSMC와 격차는 되레 벌어져
박일경
ek.park@kpinews.kr | 2021-03-30 17:40:48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 530조원…美·中·EU, 코로나發 패권 전쟁
"韓, 메모리반도체 성공 착시 벗어나 비메모리 점유율 제고 필요"
삼성전자가 오는 2030년까지 메모리 반도체 뿐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내놓은 지 2년이 다 됐지만, 그사이 선두 업체와의 차이는 오히려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처하다가는 한국 반도체 산업 전체가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3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이 흔들린다 : 반도체 산업 패러다임과 미래' 세미나에 참석, "대만 대표기업인 TSMC는 정부와 국민들의 든든한 지원을 기반으로 시스템 반도체 부분에서 삼성전자와 격차를 벌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경련은 최근 자동차 업계를 중심으로 반도체 수급 상황이 악화되고 인텔(Intel)이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 재진출을 선언하는 등 세계 반도체 시장의 판도 변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어 대응 전략을 점검하고자 긴급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나온 반도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보유했으나 비메모리 부문 경쟁력은 취약하다"며 메모리 반도체 성공에 따른 안이함을 벗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대만의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TrendForce)에 따르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작년 1분기 TSMC가 54.6%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삼성전자로 19.4%를 기록했다. 같은 해 4분기에는 TSMC가 57.8%, 삼성전자는 17.1%를 각각 달성했다. 일 년간 TSMC가 점유율을 3.2%포인트 끌어올리는 동안 삼성전자는 2.3%포인트 급락했다. 양사 점유율 차이 역시 35.2%포인트에서 40.7%포인트로 확대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4월 24일 2030년까지 파운드리 및 시스템LSI 사업 등 시스템 반도체 부문 연구·개발(R&D)과 생산시설 확충을 위해 총 133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내 R&D에 73조 원, 최첨단 생산 인프라에는 60조 원을 각각 투입한다. 전문 인력까지 1만5000명을 직접 고용한다고도 했다.
삼성전자의 이 같은 '반도체 비전 2030' 추진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격차는 아직까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올해 1분기가 끝나가는 현재 TSMC의 파운드리 세계 시장 점유율은 56.4%다. 반면 삼성전자는 17.7%로 여전히 17%대에 머무른 실정이다. 권 부회장은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투자(Investment) △타이밍(Timing) △인재(Talent)가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美, 투자비 40% 세액공제·228억 달러 투자…中, 2025년 자급률 70% 목표
올 한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대한민국 연간 국가예산 558조 원에 버금가는 53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거대 시장을 두고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주요국들은 강력한 보조금·세제 지원을 통한 육성 정책을 앞 다퉈 실시하고 있다. 이미 코로나 발(發) 반도체 패권 전쟁은 시작된 상태다.
이번 세미나에서 '반도체 산업 동향과 발전 방향' 발제를 맡은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근래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 재원을 집중하고 있는 파운드리 부문의 경쟁 심화와 재해로 새로운 위험이 부상했다"면서 "주요국 정부의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무역 제재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데 단기적으론 성공했으나 중·장기적으로 팹리스(반도체 설계)에 편중된 반도체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를 유도, 제조 경쟁력 강화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美)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2024년까지 투자비의 40% 수준을 세액 공제하고, 반도체 인프라 및 R&D에 228억 달러(한화 약 26조 원)를 지원할 계획이다.
중국은 지난 2015년 '중국 제조 2025'를 천명하고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 목표를 설정해 투자를 지속해 왔지만, 시장조사기관 아이씨 인사이트(IC Insight)에 의하면 2019년 기준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5.7%에 불과했다. 미국의 제재에도 과거 액정표시장치(LCD) 굴기에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름)' 전략으로 대형 인수·합병(M&A)을 추진함과 동시에 반도체 국산화를 시도 중이다.
유럽 국가들마저 아시아 파운드리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자 독일·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 등이 뜻을 합쳐 최대 500억 유로(약 67조 원)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이 중 반도체 기업 투자 금액의 20~40%를 보조금 형태로 지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사장과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대표는 기조 발표에서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작고하기 직전 '우리 기술로 독자 개발한 반도체로 세계를 제패하라'고 했던 말을 되새겨본다"며 "중국이 2015년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수 백조 원을 투입해 한국 반도체를 추격하고 있으나, 미국의 강력한 제재와 낮은 기술 자급률 한계로 시간이 걸리므로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韓, 시스템 반도체 육성…파운드리 경쟁 대비 필요"
종합 토론에서는 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선임연구위원 주재로 '우리나라 반도체 미래를 위한 대응 방안' 논의가 이어졌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주요국은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에 각종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수립해 유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안 전무는 "미국·유럽·일본은 자국 내 제조시설 확충으로 공급 망 안정화를 추진하고 중국은 대대적인 투자로 반도체 굴기를 노리고 있으며, 대만은 세계 최고의 시스템 반도체 제조기술을 앞세워 국가의 국제적 위상을 더욱 높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나라도 반도체 제조시설을 신속하게 잘 구축하고 시스템 반도체가 전자산업 공급 망에서 역할이 확장되도록 민·관이 협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은 "미국은 1987년에 반도체 제조기술 연구조합 '세마테크(Sematech)'를 출범시켜 정부와 인텔 등 대기업이 투자한 덕분에 오늘날의 퀄컴이 탄생할 수 있었고, 대만도 1973년 설립한 '산업기술연구원(ITRI)'을 통한 지원 덕분에 TSMC, UMC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도체 산업은 기업 간 경쟁구도를 넘어 국가 간 경쟁에 직면한 만큼 정부와 기업은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노 센터장은 자동차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는 각국 정부 요청으로 인해 TSMC 등 대만의 파운드리 기업들이 생산 라인을 재조정해 자동차 반도체를 증산함에 따라 올해 7월께 이후로는 공급 부족이 완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KPI뉴스 / 박일경 기자 ek.par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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