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북한인권법 vs 韓 대북전단금지법 충돌하나
김당
dangk@kpinews.kr | 2021-02-04 18:39:06
바이든, '김정은 폭력배'…블링컨 국무장관, '최악의 폭군'
정 박 부차관보, "文, 대북 유화책 지지 위해 권력 휘둘러"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일 오전 정상통화를 갖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나아가 두 정상은 "가급적 조속히 포괄적 대북전략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도 이날 오전 SNS 글을 통해 "방금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통화를 했다"며 "나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공동의 가치에 기반한 한미동맹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미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한미 정상통화 소식을 전하며 "한미 동맹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핵심축(linchpin·린치핀)"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백악관은 대북 문제와 관련 "두 정상은 북한(DPRK)에 관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만 전했다.
청와대가 발표한 "가급적 조속히 포괄적 대북전략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거나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된 당사국인 한국의 노력을 평가하고 한국과 같은 입장이 중요하다는 표현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재검토에 들어간 대북 정책의 방향과 접근방식이 한국에 녹록치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바이든 대통령부터가 후보 시절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폭력배'라고 지칭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을 '사진찍기용 행사'였다고 강하게 비판해 왔다. 바이든은 "독재자와 폭군들이 찬양받는다"며 트럼프-김정은 회동 사진을 담은 정치광고를 자신의 SNS에 올리기도 했다.
정상간의 통화는 '사진찍기용 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의전 행사이다. 의전은 정해진 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이므로 내용보다는 모양새가 중요하다. 즉 이미지로 비치는 것과 실제 대화내용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접근은 정상 간의 담판 위주의 톱다운(Top Down·하향식)이 아닌 실무협상을 앞세운 버텀업(Bottom Up·상향식) 방식이 될 것임이 예고된 상황이다. 그만큼 바이든 대통령의 의중보다는 아시아전략과 한반도정책을 관장하는 참모진의 판단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 라인업의 특징은 과거 한반도 문제를 직접 다뤄봤고 대체로 북한을 신뢰하지 않는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이끌어 내고 대북 '전략적 인내' 정책에도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그는 앞서 북한을 '최악의 수용소 국가'로, 김정은은 '최악의 폭군'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웬디 셔먼 부장관은 클린턴 행정부 때 국무부 대북정책조정관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했다. 셔먼은 2018년 아시아소사이어티 강연에서 "나는 한 번도 북한 사람들을 신뢰한 적이 없었다"며 북한 당국자들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바 있다.
한국계인 성 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대행)는 대북정책특별대표와 6자회담 수석대표를 거친 '북핵통'으로 2018년 필리핀대사 시절에 1차 북-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 투입되기도 했다.
역시 한국계인 정 박(Jung H. Pak)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미 중앙정보국, CIA와 국가정보국장(DNI)실에서 북한 담당 선임분석관으로 근무했던 '김정은 전문가'이다. 그는 지난해 '비커밍 김정은(Becoming Kim Jong Un)'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부차관보로 임명되기 직전인 지난달 22일 자신이 근무한 진보적 성향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 홈페이지에 발표한 '한국의 민주주의에 드리워진 북한의 긴 그늘'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문재인 정부가 통과시킨 '대북전단 금지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해 주목을 받았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이 냉전시대의 국가보안법을 소환했던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통치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올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부패나 불평등 같은 국내 정책보다는 북한에 대한 유화 정책을 지지하기 위해 권력을 휘둘렀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톱다운식 접근으로 인해 일관성 없는 외교정책을 불러왔다며, 전 정권이 찬성했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대했고 일본과의 군사정보공유협정(지소미아)에서 탈퇴하겠다고 위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문 대통령은 인권과 탈북자 단체에 대한 접근법을 전환함으로써 장기적인 목표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며 끝을 맺었다.
그는 앞서 2018년 2월에 발표한 '김정은의 교육'이라 보고서에도 "김정은은 아직 배우는 중이다. 우리는 그가 올바른 것들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아직 김정은이 다른 길을 선택하고 비핵화로 나아갈 조치로 눈을 돌릴 의사가 있는지를 시험해 볼 수 있다. 이는 북한 문제에 대해서 한 치의 이견이 없는 지역동맹 강화를 – 특히 한국과 일본 – 통해서 할 수 있다.…(중략)…또한 북한으로의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 침투를 확대하고 북한의 인권침해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동시에 김씨 정권 이후의 시대에 대한 신뢰성 있는 대안을 보여줌으로써 탈북을 독려하는 등 북한 정권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가중시켜야 한다."
'김정은 전문가'인 그가 쓴 글을 통해 정책을 예측해 본다면, 북한에 대한 한·미·일의 '한치의 이견이 없는 압박정책'과 정보 침투, 그리고 인권 개입 등을 예상해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의전행사인 정상통화보다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북한 주민들의 정보 접근권을 강조하며 북한 인권 문제에 상당한 비중을 두겠다는 외교 원칙을 밝힌 것이 더 눈길을 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 인권 문제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아온 미국 정부가 북한의 인권 탄압 실태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기 때문이다.
VOA(미국의 소리)는 4일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가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대북 정책 검토의 일환으로 북한의 지독한 인권 기록과 폐쇄된 국가(북한)에서 인권 존중을 촉진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발언은 미국 새 행정부가 한국의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에도 불구하고 대북 정보와 영향력 캠페인을 계속 지원할 것이냐는 질문에 답하면서 나왔다고 VOA는 강조했다.
VOA에 따르면 국무부 관계자는 "우리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와 노동교화소 망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며 "북한의 인권과 노동권을 증진하고, 인권 유린과 침해를 저지른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물리기 위해 생각이 같은 파트너들과 함께 계속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와 노동교화소를 지목하며 '지독한 인권 유린을 저지른 가해자에게 책임을 추궁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가해자'로 김정은을 직접 지칭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김정은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와 정보 유입을 제한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국무부가 "우리는 세계정책으로서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호를 옹호한다"며 "북한에 정보를 자유롭게 유입하기 위한 캠페인을 계속하고 있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러면서 국무부 관계자는 "우리는 북한인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비정부기구(NGO) 커뮤니티와 다른 나라의 파트너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무부는 지난해 12월 29일 한국 국회가 대북전단금지법을 통과시킨 직후에도 같은 논평을 내놨다.
앞서 미국의 대북 인권단체 휴먼라이츠 파운데이션(HRF)은 "대북전단금지법이 북한 주민에겐 재앙이자 비극이고, 김정은 정권에는 선물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휴먼라이츠워치(HRW) 등 47개 국제인권단체는 문 대통령 앞으로 공동서한을 보내 "한국 정부가 북한의 인권 증진을 위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3일 출범한 미국 의회의 하원 외교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그레고리 믹스 의원도 최근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을 검토하고, 이 법이 미칠 부정적 영향에 관한 위원회 내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영국의 외교부도 데이비드 앨튼 영국 상원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 이행을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영국 의회 내 '북한 문제에 관한 초당파 의원 모임'(APPG-NK) 공동의장인 앨튼 의원과 한국의 태영호·지성호 의원, 미국과 한국의 민간단체들은 도미니크 라브 영국 외교장관에게 공동서한을 보내 대북전단금지법 문제에 대한 영국 정부의 관여를 요청했다.
대북전단금지법에 따르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이나 시각매개물 게시, 전단 등을 살포할 경우, 최대 3년 이하 징역 혹은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할 수 있다.
한편,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때부터 공화·민주당 합의로 시행중인 '북한인권법'에는 '북한 정부가 통제하지 않는' 정보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을 촉진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북한으로의 정보 유입 지원 조항에 따르면, 이러한 정보 전달 수단은 라디오, 이동식 디스크, 메모리카드, 음성 재생장치, 동영상 재생장치, 휴대전화, 와이파이, 무선 인터넷, 웹 페이지, 무선 통신 등을 망라한다.
미 국무부는 북한인권법을 근거로 한국의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전단을 날리고, 각종 미디어를 들여보내는 것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북한은 '외부 정보의 유입'을 김정은 체제를 위협하는 중대 요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채택했다. 이 법에 따르면 △외국 라지오(라디오) 방송 청취, 녹음 및 유포 △외국 불순녹화물·영상물·도서, 그 외 출판물 유입과 유포 △국가 미승인 음악 복제 및 유포 행위 등이 '비법'(불법)으로 처벌받는다.
미국의 북한인권법과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미국 의회는 이미 한국 정부의 대북전단금지법이 인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청문회를 예고해 놓은 상황이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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